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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걸 봤어도 사람마다 기억은 왜 다를까?

bthong 2007. 4. 15. 15:11
  • 김이준 박사

     

    차를 타고 가다가 방금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듯한 멋진 여성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몇 초에 불과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멋진 그녀. 그런데 내 머리엔 쭉 뻗은 다리만 선명히 남았는데 친구는 눈에 멋진 허리선밖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왜 똑같이 봤는데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일까. 또 왜 어떤 광고는 한눈에 들어오고 어떤 광고는 늘 봐도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생존 위해 정보 선택

    같은 사물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부분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뇌가 기계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디오 카메라라면 길에서 본 여성의 모든 부분을 다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시각은 주의를 기울인 부분만 뇌로 전달해 선명하게 기억하게 한다. 친구는 허리선에, 나는 종아리에 주의를 집중한 것이다. 동물의 뇌는 외부 자극을 모두 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극만 골라서 처리하도록 진화했다. 예를 들어 생쥐에게는 눈으로 본 풀이나 나무 하나하나까지 다 인식하기보다는 뱀의 꼬리 끝이나 매의 깃털 하나를 포착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된다. 인간의 뇌 역시 그런 진화의 결과로 주의를 기울인 자극만 처리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늘 주변에 있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 번만 봐도 뇌리에 박히는 사물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주의를 기울이면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최근 한국인 과학자가 주의(attention)와 뇌 신경세포(neuron) 사이에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새롭게 밝혀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

    미 노스웨스턴대의 김이준(金利峻·33) 박사는 어떤 물체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물체는 더 눈에 띄고 더 밝아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 주목했다. 반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엇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영상만 남는다.

    연구팀은 64개의 전극을 실험 대상자의 머리에 붙여 놓고 컴퓨터 모니터로 주기적으로 반짝거리는 동심원 모양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뇌파의 변화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시각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 경우에는 뇌세포들의 활동이 더욱더 정확하게 자극의 주파수에 일치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교향악단 단원들이 자신들의 악기를 조율하느라 서로 박자가 다르게 소리를 내고 있다가 지휘자가 지휘봉으로 신호를 주자마자 박자에 맞춰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김 박사는 “지금까지 연구는 주의와 개별 신경세포의 작용에만 집중했다”며 “이번 연구는 주의를 기울일 때 신경세포 전체가 반응하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주의를 기울일 때 뇌의 시각중추가 더욱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같은 자극이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모든 뉴런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더 강한 자극을 받은 것처럼 뇌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김 박사가 제1 저자로 등재된 연구논문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1월호에 게재됐다.

    모터쇼 장면을 보고 나서 당신의 머리엔 무엇이 남았을까. 자동차, 아니면 늘씬한 미녀, 그도 아니면 뒤에 서 있는 음악가들일까. 과학자들은 같은 영상을 보아도 주의를 기울인 부분만 선명하게 뇌에 남게 된다고 본다. 최근 한국인 과학자가, 주의를 집중하면 뇌세포들이 동시에 활동해 같은 자극이라도 훨씬 강한 자극처럼 뇌에서 처리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질병 치료에서 광고까지 응용 가능

    KAIST 김대수 교수(생명과학과)는 “주의를 집중하면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신경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주의와 뇌 정보 처리 사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주의력 결핍증의 치료에서부터 기업의 마케팅에까지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畵素)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지만 인간의 눈으로 본 영상은 전체로 보면 100만 화소에 불과하다. 그런 눈으로 400만 화소와 800만 화소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주의를 기울인 영상에 대해서는 어느 카메라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집중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마치 흔들리는 비디오카메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게 된다. 이런 아동들은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무시해도 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학습장애를 겪게 된다. 주의와 뇌 정보처리 간의 관계를 이해하면 선천성 주의결핍도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광고와 마케팅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상품이 나오고 광고가 넘쳐나지만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과 광고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기업들이 출혈 마케팅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소비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만약 어떤 자극이 주의를 집중시키는지 알게 되면 효과적인 광고와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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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준 박사, 신경세포 반응 메카니즘 첫 규명
    주의 집중땐 같은 자극도 더 강하게 腦서 처리
    광고 마케팅·주의력 결핍증 치료 등에 응용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