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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전우여" 이윤 상사의 '戰場 일기'

bthong 2010. 3. 11. 22:30

 

"아… 전우여" 이윤 상사의 '戰場 일기'

6·25 전장(戰場)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기록한 한 국군 장병의 일기(日記)를 가족이 본지에 보내왔다. 이윤(李潤·1924~2007) 예비역 상사(6사단 2연대 소속)는 강원도 인제군에 주둔하던 중 전쟁을 맞았다. 그는 부상을 입고 1951년 8월 의병 제대할 때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낙동강 전선까지 퇴각했다가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과정도 겪었다. 적에 밀려 퇴각할 때의 비통한 심경, 압록강을 처음 봤을 때의 짜릿함 등 전쟁 중의 소회도 적었다. 그는 1951년 3월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씨는 전역 후 고향인
충남 서산에 돌아왔고, 1968년부터 12년간 서산군 부석면 예비군 중대장을 지냈다. 1980년부터는 자녀들이 정착한 제주도에 살다 2007년 별세했다. 그의 조카들은 2002년 이 일기를 기록으로 남기자며 책으로 엮어 친·인척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6월 25일 새벽의 포성

새벽 4시. 쾅!쾅!우루룽! 대포 소리가 들려왔다. 항시있는 놈들의 장난이겠지 했다. 통신병 박 하사가 "큰일났습니다. 아무리 호출을 해도 본부가 응답이 없습니다"고 했다. 오전 6시에야 겨우 무전 교신을 했다. 정 소위님은 "지금 38선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대대와도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황혼이 깃들 무렵 10중대원들이 달려왔다. 나는 "너희 소대장님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일병 한 명이 "조금 전에 전사했습니다"라며 그의 총과 시계를 보여주면서 울었다
.

  
▲    1950년 8월쯤 국군이 행진하는 모습을 담은 정부의 6·25 기록 사진.
    생전의 이윤 상사는 원 속의 인물이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고 이 상사의
        유가족들은 밝혔다.   / 조카 이성이씨 제공

▲6월 27일 행동준비

철수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부락에 나가 공포에 떨고 있는 주민들한테 부탁해 정부보관 곡(벼)을 물방아에 도정(搗精)했다. 쌀을 중대로 운반해 각자 일주일 이상씩 소지하도록 배분했다. 항상 이북군대보다 용감하고 무기도 북괴군보다 월등하다고 자랑하여 우리를 태산같이 믿고 있던 주민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놈들에게 패하여 도망가는 꼴을 보일 생각을 하자 한없이 낯이 뜨거워진다.

▲7월 14일 적의 탱크에 육박전

이화령(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에 배치됐다. 적 탱크 5대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연대장께서 "탱크를 파괴할 특공대원 나오라"고 고함을 쳤다. 이거 야단났다. 나가도 큰 일, 안 나가도 큰 일이다. 정 소위님과 나를 포함해 7명이 연대장 앞에 정렬했다. 연대장께서 권총을 들어 출발신호를 하셨다.

선두 탱크에 정 소위님이 뛰어 들어 포열에 매달려 포열구에 수류탄을 넣으려고 애썼다. 그 찰나 2번 탱크는 최 중사가 뛰어올라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집어넣은 후 발로 뚜껑을 밟았다. 2번 탱크는 폭음과 함께 움직이지 못했다. 3번 탱크에서 쏜 직사포탄이 1번 탱크에 명중해 폭음이 작렬했다. 정 소위님의 다리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 3번 탱크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고, 4·5번 탱크는 간신히 도망쳤다. 연대장께서는 우리 특공대원들에게 1계급 특진을 상신했다.

 

 

 

1950년 8월 5일
사과 먹다 목에 걸려 토하러 나온 사이 '쾅' 전우들 모두 피범벅으로

 

▲8월 5일 사과 한 개 덕에 살아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이 모여 무용담을 즐기며 휴식중이었다. 다가가 "그게 뭐요? 맛 좀 봅시다"라며 사과 한 개를 집어 씹었다. 삼킨 사과 한 쪽이 목구멍에 콱 막혔다. 허둥지둥 대여섯 발자국 내려가 사과를 토하려고 캭캭거리고 있을 때 엄청난 폭음이 울리고 철모가 벗겨졌다. 정신차려보니 방금 전 무용담을 늘어놓던 전우들이 붉은 선혈을 흘리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김 상사, 박 상사, 손 상사! 이놈들아!"라고 끌어안고 소리쳤으나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갔다.

▲9월 2일 총상을 입은 순간

대원들을 격려하면서 고지를 향하여 올라갔다. 적진 50m 앞에 이르자 적은 따발총을 난사했다. 적탄(敵彈)이 내 다리를 관통했다. 바로 옆의 연락병한테만 내 상황을 알리고 호각신호로 돌격명령을 내렸다. 저녁에 열차 편으로 부산으로 후송돼 제5육군병원 제10병동에 입원했다. 마룻바닥에 가마니를 놓고 담요를 깔아놓았다.

▲9월 12일 아내의 신기루

병원에 온 지 열흘째다. 창문을 열고 시내 구경을 하다 깜짝 놀랐다. 병실 너머 피란민 수용소에서 한 여인을 보고 집식구(아내)의 얼굴과 같아서 정신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람을 시켜 확인해봤더니 서울에서 피란 온 여자이며 아직 처녀라고 했다. 공연히 가슴만 설레고 실망하고 말았다.



 

                1948년에 찍은 고(故) 이윤 상사의 모습(사진 왼쪽)과 고(故) 이윤 상사가
                         쓴 1950년 11월 1일자 일기의 육필 원본. / 조카 이성이씨 제공
 

▲10월 20일 평양 입성

(부상에서 복귀해 다른 연대에 배치된 뒤) 원산~평양 간 도로는 포장이 훌륭했다. 평양 시내에선 대형 수송기들이 낙하산 부대를 투하하고 있어 하늘에는 마치 눈꽃송이가 장관을 이룬 듯 했다. 평양 거리 이름은 '스―타린 거리' '레―닌거리' '주은래거리' 등이었다. 인민교화장(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풀려나 춤을 추고 있었고, 대신 평양을 방위하던 놈들이 형무소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세상은 요지경 속이구나'하고 통쾌한 웃음을 지었다.

▲10월 26일 압록강에 다다르다

구룡동(九龍洞) 고개를 넘어서니 압록강이 멀리 보이며 희미하게 만주 땅이 건너다 보였다. 전 장병이 환호성을 올려 승리의 만세소리가 만주 건너까지 메아리쳤다. 초산군청 게양대에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애국가를 부른 후, 부대장의 선창(先唱)에 따라 "압록강 제1착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저녁에 압록강 물에 세수를 하고 강물을 실컷 마셨다. 산골짝에서 죽어가던 전우들이 "물 좀 다오"라며 소리치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탱크와 피난민



1951년 2월 12일
아버님 별세 전해 듣고 건빵·술잔 놓고 울었다


▲1951년 2월 12일 아버님 별세 소식을 듣고

동향(충남 서산)인 성수산 중사가 열흘짜리 특별휴가를 다녀왔다. 성 중사 편에 모아둔 월급 2만6000원과 편지를 보냈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아버지가 별세하셨다고 했다. 충격을 받아 그저 멍했다가, 고향식구가 보낸 편지를 보다가 흐느껴 울었다. 대대장님이 상황실 옆방에다 간소하게 빈소를 차려주셨다. 나는 무릎 꿇고 건빵과 술잔을 아버님 영혼 앞에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8월 15일 군 생활을 마치고

(4월 차량 바퀴에 오른쪽 다리가 깔려 마산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중대장 이상만 대위가 "오래 있어줬으면 한다"며 제대 연기를 타진해왔다. 그러나 나는 (제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제대증서에는 전쟁을 겪은 자들에게 복무기간 2년이 추가돼, 1953년 8월 15일자로 제대 특명을 받았다.
     이윤(2007년 작고) 예비역 상사·참전용사
 
 
 
방향이 다른 두 행렬  
 
 

 
 
 
 

 

 

전우야 잘자라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먹던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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