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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 유럽 최고봉 허리를 한 바퀴 도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

bthong 2014. 10. 15. 08:57

유럽 최고봉 허리를 한 바퀴 도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


	가이드를 따라 일렬로 걷고 있는 한국트레킹학교 동문들 모습.
▲ 가이드를 따라 일렬로 걷고 있는 한국트레킹학교 동문들 모습.

나는 ‘서울에 사는 62세 여자 박순희’입니다. 보통사람이지요. 특별히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산을 잘 오르기 위해서 운동을 따로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겐 아주 특별함이 있지요. 마음이 젊다는 것이고 정말 좋아하는 산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 ‘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암벽을, 빙벽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산길 걷기의 가장 기초적인 등산화 끈 안 풀리게 묶기, 배낭 제대로 메기, 효율적인 걸음걸이, 더불어 등산스틱을 제대로 사용하기 등등. 이렇듯 저는 산을 배운(?) 여자입니다.

산 때문에 저는 늘 젊지요. 인생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꿈의 결핍으로 늙는다고 하잖아요? 산은 마르지 않는 제 꿈입니다. 2008년 산을 수줍게 만난 후 북한산, 지리산, 백두산, 히말라야, 알프스를 저는 늘 꿈꾸듯 걸어왔고 저 너머 미지의 산을 그리움으로 또 걷고 걸을 것입니다.



	호수에 비친 눈 덮인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의 장관.
▲ 호수에 비친 눈 덮인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의 장관.
아! 몽블랑 트레킹 160km

이름만 떠 올려도 가슴이 설레는 곳.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평생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고, 또 걸어 보고 싶은 길. 나는 지난해 회갑을 맞아 샤모니 몽블랑에서 체르마트 마터호른까지 이어지는 오트루트(Haute Route) 트레킹을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아직 국내에는 TMB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곳을 다녀온 후 줄곧 알프스의 여운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는데, 한국트레킹학교 동문 카페에 올린 알프스 산행기와 사진을 본 동문들의 성화로 금년 7월엔 몽블랑 일주 트레킹(TMB : Tour du MontBlanc)을 다시 다녀오게 되었다.

TMB는 몽블랑을 중심으로 프랑스 샤모니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샤모니로 돌아오는 트레킹으로 약 160km에 이르는 길고 긴 여정이다. 이번 트레킹은 부부 3쌍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동문회 시작 때부터 꾸준히 산행을 함께해 온 터라 체력도 서로 비슷하고 믿음감이 있는 환상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냥 산을 다닌 것이 아니라 모두 배우고 다녔다는 것이다.

동문들 사이에 유명한 말이 있다. “물놀이 그냥 하면 헤엄이고, 배우고 하면 수영이다”라는. 그리고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질 않던가?


	1 트레킹 중 알프스를 배경으로 풀밭 위의 여유로운 점심시간. 2 트레킹 중에 만난 꽃들과 산군이 어우러진 멋진 경치.
▲ 1 트레킹 중 알프스를 배경으로 풀밭 위의 여유로운 점심시간. 2 트레킹 중에 만난 꽃들과 산군이 어우러진 멋진 경치.
우리는 국내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작년에 함께했던 알파인인터페이스(Alpineinterface)사의 외국인 트레킹가이드 루이(Louis)와 샤모니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울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스위스 제네바로 들어갔다. 제네바 공항에 내리니 시끌벅적했다. 때마침 독일과 브라질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교통편을 이용해 약 1시간 10분 정도를 달려 샤모니로 갔다. 늦은 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짐을 풀고 잠이 들었지만 청아한 새 울음소리에 새벽녘 잠이 깨었다.

지난밤 내리던 비가 걱정되어 커튼을 걷어 보니 호텔 베란다 가까이로 보송(Bossom)빙하와 웅장한 몽블랑 정상이 구름 속에 간간이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또다시 보아도 장관이었다. 꼭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샤모니는 고향에 온 것 마냥 시내 곳곳이 낯이 익고 정겨웠다. TMB나 오트루트를 트레킹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작은 산간마을 샤모니는 건물이나 거리를 예쁜 꽃들로 장식해서 피곤하게 달려온 여행자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믿음직하고 성실한 가이드 루이는 작년에 이어 다시 찾아 주었다고 무척 반가워하면서 시차적응을 위해서 공식일정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우리에게 몸도 풀 겸 일정에 없는 락블랑(Lac Blanc·2,352m)이란 곳을 안내해 주었다. 샤모니 계곡을 건너 몽블랑과 에귀디미디 전망대를 마주 볼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한국 트레커 일행을 만났는데 그들 말인즉, 지난주에는 트레킹 내내 비가 내려 몽블랑과 주변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몹시 서운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우리도 그런 불행을 당할까봐.


	본옴므로 올라가는 도중에 기념촬영을 한 필자 부부.
▲ 본옴므로 올라가는 도중에 기념촬영을 한 필자 부부.
배우는 산, 느끼는 산

제발 우리에게는 좋은 날씨가 이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트레킹 첫날 날씨는 걱정과는 달리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청명했다. 이번 여정에 어떤 장관이 눈앞에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으로 마냥 좋았다. 들머리는 레콩타민(Les Contamines·1,263m)으로 고대 로마로 통하는 옛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산길을 따라 푸르고개(Col des Fours·2,665m)까지 오른다. 그래서 개인차가 있지만 고소를 느끼고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등 높은 산에 대한 경험이 있는 나도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련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보폭을 줄여라’, ‘천천히 걸어라’, ‘들숨 날숨을 편안하게 쉬어라’ 등. 힘든 산을 오르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섭취하는 음식 중 어떤 음식물이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지, 경사를 오를 때와 능선을 걸을 때, 또한 쉴 때 어떻게 체온조절을 하는지 등 한국트레킹학교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 학교의 교훈인 배우는 산, 느끼는 산에서 말해 주듯이 산길 걷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알프스에 펼쳐진 자연의 신비로움은 신이 마음먹고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인 것 같다. 수많은 야생화 무리와 저 멀리 몽블랑과 함께 솟아 있는 산군들과 푸른 하늘에 쉼 없이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걷고 있는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천국이 이렇게 아름다울까?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인 페레고개(2,537m)를 향해 오르는 길.
▲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인 페레고개(2,537m)를 향해 오르는 길.
하루 일정이 끝나면 호텔에서 쉬었다. 다인실로 운영하는 도미토리나 산장도 있지만 나이와 체력을 감안해 좀 더 편안한 호텔을 숙소로 이용했다. 보통 하루에 7~8시간은 기본으로 걷기 때문에 피로를 확실히 풀고 다음날 트레킹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맛있는 양질의 에너지를 공급해 줘야 하는데 알프스 트레킹 중 또 하나의 즐거움은 현지 음식이 아닌가 싶다. 본래 토종입맛인 나는 현지 음식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모든 음식이 왜 이리 맛있지 스스로 놀랐다. 트레킹이 끝나면 갈증과 더위를 씻어 주는 시원한 맥주 맛이 일품이었고, 와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지친 육체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 주었다. 아마도 현지의 청정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고기나 치즈와 야채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프도 우리 입맛에 너무 잘 맞았는데 오죽하면 셰프가 우리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아예 수프를 큰 그릇째로 가져다 주었다. 동양인들이 자기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니 셰프도 덩달아 즐거웠던 것 같다.

식사를 하면서 예전에 어렸을 때 밥알 하나라도 남기거나 버리면 어른들에게 혼났듯이 서양에서도 빵에 대한 소중함이 생활 속에 그대로 있음을 알았다. 빵을 뒤집어놓아도 안 되고 절대로 남겨서도 안 된다. 그래서 그런지 오트루트 때도 보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메인 접시에 남은 음식 국물이나 수프 등도 빵으로 깨끗이 닦아 먹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도 그래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정 내내 마냥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우리 팀을 보고 한국에 대해서는 신문으로만 어렴풋이 알던 가이드는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밝은 사람들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가이드 일정이 끝나면 빨리 헤어지고 싶은 팀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 더하고 싶은 팀이 있는데 우리 팀이 후자라고 했다. 참으로 기분 좋은 말이다.

보나티산장, 한여름 밤의 꿈

매번 숙소로 짐을 운반해 주지만 이번 트레킹 중 하루는 짐 운반이 안 되는 보니티(Bonatti)산장(2,022m)에서 묵었다. 우뚝 솟은 그랑드조라스(4,208m)의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곳으로 전망이 대단했다. 산장이지만 다인실과 더블베드로 구분되었는데 가이드는 우리 팀을 널찍한 2인실의 편안한 잠자리로 마련해 주었다. 산장은 워낙 깊은 곳에 있어서 일손이 부족해 가이드가 산장주인과 가족처럼 지내며 서빙하고 치우는 등 허드렛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스위스와 이탈이아의 국경을 이루는 페레고개. 국경표지석이 서 있다.
▲ 스위스와 이탈이아의 국경을 이루는 페레고개. 국경표지석이 서 있다.
샤워실은 공동으로 이용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코인 하나를 넣으면 2분 동안만 더운 물이 나와 그 안에 재빨리 씻어야 한다. 아마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려면 시간도 절약되고 자연보호도 되니 일석이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산장에서 저녁 식사는 그곳에 묵는 일행들과 정해진 테이블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같은 음식을 먹었다. 참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된다. 산장이지만 음식 맛이 일품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도 이런 것들이 도입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부러운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이곳은 한여름에 해가 길어 저녁 9시 반이 넘어도 훤하다. 알프스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보고파서 ‘오늘은 기필코 이 높은 산장에서 별을 보고야 말리라’ 다짐했지만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내 몸은 에델바이스 아름다운 알프스 초원에서 카우벨 울리며 풀을 뜯는 소 꿈과 함께 한여름 밤이 깊어졌고 이내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산행하면서 산을 대하는 자세와 지켜야 할 에티켓을 배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젊어서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나는 노후에 취미 생활로 산행을 시작하게 되다 보니 산에서의 행동이 안타까울 때가 너무 많다.


	1 샤모니 시내 발머광장의 발머 동상. 2 산행을 마치고 즐기는 고소한 퐁듀 맛은 최고였다.
▲ 1 샤모니 시내 발머광장의 발머 동상. 2 산행을 마치고 즐기는 고소한 퐁듀 맛은 최고였다.
다음엔 어느 곳 향해 배낭 꾸려야 할지 행복한 고민

산행이나 여행을 할 때 내가 좋아서 선택한 곳보다 남이 좋다고 하면 함께 따라 가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려는 목적지가 정해지면 인터넷 등을 검색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난이도와 준비물을 매우 꼼꼼히 챙기는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이러한 조사와 준비과정 또한 ‘Before Trekking’으로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다녀 온 후에는 산행기를 쓰고, 멋진 사진들을 골라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동영상으로 만들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돌려 보면 이것 또한 ‘After Trekking’으로 일 년 내내 여운이 남아 다음 트레킹을 떠날 때까지 그리움으로 내내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물건엔 가격이 있고, 사람에게는 품격과 인격이 있다. 그렇다면 트레커에게는 산격(山格)이란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산을 바라보는 눈, 산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산격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확 바뀌어질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트레킹학교를 알게 되어 인생의 이모작인 환갑을 넘어서도 남편과 함께 이런 멋진 산행을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다. 내 나이에 쉽지 않은 160km의 기나긴 산길과 고도 1,100~2,600m를 오르내리는 큰 산을 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트레킹 교육과 체계적이고도 과학적인 등산스틱 사용법인 마더스틱워킹(Mother-Stick Walking)의 힘이 매우 컸다.

마음 설레게 하는 새하얀 만년설과 웅장한 빙하, 순수로 빛나는 고고한 봉우리들, 걸음걸음마다에 경이를 느끼게 하는 산길, 씩씩하게 걸어가는 이순(耳順)의 내 모습을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 회화기법)로 담아내는 쪽빛 호수, 속삭이듯 이름을 불러 주고 싶은 낮게 자리한 이름 모를 수많은 야생화, 셀 수 없이 빼앗긴 내 눈길에 머무는 포근하며 거칠 것 없는 산록, “봉주르”라는 짧은 인사말로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버리는 유쾌한 트레커들, 배려와 사랑으로 행복한 여정을 만들어 낸 우리 동문들에게도 큰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은 또 그 어느 곳을 향해 배낭을 꾸려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며 몇 번이고 몽블랑을 다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