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

알프스 정상에서 과학의 앞날을 보다

bthong 2014. 10. 15. 09:30

[문갑식의 세상읽기] 알프스 정상에서 과학의 앞날을 보다

  • 문갑식

    발행일 : 2012.10.16 / 여론/독자 A3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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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뮌헨에서 아우토반을 따라 두 시간을 달리면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이란 마을이 나온다. 목가적인 낭만이 넘치는 이곳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국경을 막아선 산이 있다. 해발 2662m의 추크슈피체(Zugspitze)다. '기차로 갈 수 있는 최정상'이란 뜻이라고 한다.

    독일 알프스 최고봉을 향해 케이블카가 움직이자 승객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옥빛 물을 머금은 아입제(Eibsee) 호수가 원시림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방에 운무(雲霧)가 뒤덮인 준봉(峻峰)을 감상하는 사이에 어느덧 여행객들은 만년설이 희끗한 종착역에 닿았다.

    정상에서 산악열차로 몇분간을 하산한 지점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왕복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라는데 언뜻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걸음 내딛기 무섭게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눈덮인 사면(斜面)이 바로 이어지더니 미니 크레바스처럼 푹 파인 곳도 있었다. 막바지에 네 발로 기듯 험한 바윗덩어리를 잡고 올라서 반대편을 내려다보니 영화 속 장면처럼 '짠~' 하며 오스트리아 쪽 초원이 황홀하게 펼쳐졌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줄리 앤드루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동네 산에 히말라야 원정대 차림들이 득실대지만 그것은 무지한 이들의 호사일 뿐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철저한 준비를 탓할 순 없다. 이번에도 한국노르딕협회 박상신 회장이 준비한 스틱 한 벌과 강풍을 막아준 고어텍스 재킷이 없었다면 낭패를 봤을 것이다. 하산해 목으로 감로수(甘露水) 같은 아이스바인을 넘기면서 '과학은 위대하며 천재(天才)는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사실임을 새삼 절감했다. 아웃도어 회사들의 거품가격 정책 탓에 원단(原緞)만 제공할 뿐이면서 도매금으로 비판받는 고어텍스가 그런 존재다.

    1958년 빌 고어는 세계적인 화학회사 듀폰에 있었다. 그의 관심은 절연체(絶緣體), 즉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지 않는 물체로 케이블을 만드는 데 있었지만 회사는 이 엔지니어의 생각을 황당하다고 여겼다. 고어는 승진을 앞두고 17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뒀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아내 비브와 함께 고어사(社)를 차린 그는 마침내 불소(弗素)수지막을 이용해 PTFE라는 절연 케이블을 개발해냈다. 그 기술력은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들 밥 고어가 우연히 PTFE를 팽창시키다 1평방인치당 90억개의 구멍으로 이뤄진 멤브레인 원단을 만든 것이다. 구멍 하나의 크기가 물방울 입자보다 2만배 이상 작고 수증기 분자보다는 700배 큰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 비나 눈은 막고 땀은 밖으로 배출된다.

    2007년 영국 인디펜던트지(紙)가 '세계를 바꾼 101가지 발명품'으로 꼽은 고어텍스가 탄생한 것이다. 고어텍스의 용도는 옷뿐 아니라 광섬유 케이블, 연료전지 부품, 전자산업용 필터, 광물·석유탐사, 외과용 제품, 건축재료 등 안 쓰이는 데가 없을 정도다. 연간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고어텍스는 회사 구조에서도 기적을 이뤘다. 계급과 직함이 없는 회사, 보스 대신 리더가 많은 회사, 직원에게 1년에 1주일의 '장난시간'을 부여하는 회사로 혁신을 부추겨 가장 일하기 좋은 세계 100대 회사에 뽑힌 것이다.

    고어에게 혁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켜준 듀폰은 세계 100대 기업이 못 됐으니 삶의 아이러니가 이런 것이다. 자유롭게 연구에 몰두하는 뮌헨연구실의 고어텍스 직원들을 보며 독일에 오기 얼마 전 서울 홍릉 KIST에서 만난 젊은 과학두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970년대 한국 근대화의 동력(動力)으로 수많은 '산업의 쌀'을 만들어낸 이곳을 비롯해 과학분야는 이제 찬밥신세다. 지금이야 선거철이니 대권 후보들이 앞다퉈 현장을 찾고 공약도 내세우지만 그 약효가 얼마나 갈지는 국민도, 과학도들도, 대권후보들도 다 안다. 일본에서 과학 분야에서만 15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기초과학의 부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반짝 높아지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졌다. 그게 수십 년 동안 투자를 묵묵히 집행해온 일본과 한국의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추크슈피체를 뒤로 하고 옥토버페스트 축제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혁신과 창의와 자유를 만끽하며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누가 우리의 젊은 과학도들을 춤추게 할 것인가' '왜 우리는 세계를 바꿀 천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상념(想念)을 안주 삼아 맥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뮌헨의 밤이 어느덧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