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카테고리

진하해물탕

bthong 2009. 3. 17. 22:46

▲ 해물탕 싱싱한 해산물을 듬뿍 담아 내놓은 진하해물탕

해물탕, 그저 듣기만 해도 입안이 얼큰해진다. 바다 가까운 데 살아 어렸을 적부터 해물과 친숙하게 지냈다. 매끼 식사 때마다 밥상이 비리지 않으면 어른들이 역정을 낼 정도였다. 미리 시장을 보지 않았을 때는 풋고추 한 접시에다 멸치젓갈이라도 내놓아야했다. 새우젓갈만 먹는 서울사람들이 갓 숙성된 젓갈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집어먹는 것을 본다면 '으악!' 소리치고도 남을 게다.
 

부산을 거쳐 마산, 삼천포와 통영, 남해를 아우르는 바다를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 부른다. 그만큼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물빛이 맑다.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발을 딛고 사는 땅덩어리보다 배 띄우고 다니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모든 삶이 바다와 직결되어있다. 때문에 먹을거리 자체도 주식은 알곡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바다에서 얻는 게 대부분이다. 생선은 물론이고, 미역, 다시마, 김을 비롯한 각종 해조류가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육지 어느 곳보다 해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가 크게 발달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삼는 게 생선회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생선으로 장만한 회를 맛보는 것은 정말 기막힌 행운이다.
 

바닷가에서 싱싱한 회를 맛본다는 것 정말 기막힌 행운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내에서 맛보는 생선 횟감은 수협어판에 경매를 거쳐 활어차에 배당되어 소비지로 이동한 후에 만나는 것들이다. 그러니 수 시간 이동 중에 고기의 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차량 출렁임으로 인하여 고기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전에 보았던 영화 <식객>의 마지막 한 장면이 떠오른다. 고깃살 육즙에 대한 대결이다. 그 장면은 최고급 한우구이로 손꼽히는 안심, 등심, 채끝살 등 쇠고기의 부위별 선도와 맛, 육즙은 도축하기 전에 소가 받은 신경성 스트레스와 밀접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만큼 생선이든 육고기든 그 맛을 좌우하는 것은 신선도이다.
 

그렇다. 예전 남해에서 근무할 때 맛보았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해살물이다. 바닷가에서 신선도하면 2등하기 서러운 등속이 있다면 바로 조개, 게, 새우, 꽃게, 낙지다. 이들은 집 앞 개펄에서 바로 잡아온다. 그러니 이들 먹을거리는 당일치기로 전량 소비되는 양만 잡는다. 대처에 내다팔 해산물은 마을 어촌계 단위로 공동작으로 나간다.
 

이들 등속이 한 냄비 안에 한꺼번에 모이면 ‘해물탕’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갯마을 사람들은 해물탕을 끓일 때 크게 멋을 부리지 않는다. 해물탕 재료라고 해봤자 별것 없다. 갯가에서 바로 캐온 바지락과 조개, 그리고 개펄에서 집은 낙지 한 마리에다 미더덕, 홍합, 게 한두 마리가 전부다.

 

▲ 조개해물탕 굵직한 조개로 한가득 담아내는 진하해물탕

해물탕, 그저 듣기만 해도 입안이 얼큰

한소끔 끓인 해물탕, 코끝에 감아드는 냄새가 감칠맛난다. 조갯살 육질이 유난히 쫄깃쫄깃하다. 해물탕이 팔팔 끓을 때 살짝 넣은 낙지는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살랑살랑 녹는다. 감칠맛이다.
 

"무엇보다 재료가 싱싱하니까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합니다. 우리 집 해물탕 재료는 내가 직접 새벽에 부산 자갈치 어시장에 가서 그날그날 조달해옵니다. 다 갓 잡아온 것입니다. 돈을 안 벌었으면 안 벌었지 냉동 재료는 절대 안 씁니다. 하루에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해도 15팀이나 20팀 정도 찾아주니까 해물탕 재료가 자정쯤이면 거들 납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두 분이니까 중(中)자 하나 시키시면 되겠네요?"
 

울산시 울주군 '진하해물탕' 허상조(60, 서생면 진하리)씨의 가게 경영 방침이다. 그가 처음 진하해수욕장에서 음식점을 낸 것은 20여 년 전으로 '장수왕족발'집이었다고 한다, 감자탕도 함께 곁들였다. 그런데 3개월 전에 맞은편으로 새 건물로 옮기면서 상호를 '진하해물탕'으로 바꾸었다. 물론 해물탕으로 주 메뉴를 바꿨지만, 여전히 단골손님들을 위해 족발은 계속하고 있다. 해물탕집에서 맛보는 족발, 그 맛을 상상해 보시라. 기가 막힌다.

▲ 가게 안 손님들 초저녁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 허상조씨와 그의 아내 진하해물탕 주인장 허상조씨와 그의 아내 안덕순 씨

해물탕집에서 맛보는 족발, 기가 막혀

하지만 하씨는 어느 업종을 하든지 자기 성실성만 바탕으로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자리가 그에게는 명당자리가 됐다. 빈 자리가 없을 만큼 즐겨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시나브로 찾아드는 손님들로 그의 일손은 바쁘다.
 

말은 묻힌 김에 그의 가게 해물탕 비법을 물었다. 역시 바닷가답다. 그의 집 해물탕집도 별반 다른 비법이 없단다. 끝내 그는 해물탕 비법을 얘기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여기서 해물탕 가게를 하는 사람들 모두 싱싱한 재료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집 해물탕을 찾아도 시원하고 얼큰한 맛은 비슷하지요. 그렇지만 특별히 우리 집만의 비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해물탕의 전체 맛을 좌우하는 기본 육수에 있습니다. 근데 구태여 그 비법은 묻지 마십시오. 한 스무 가지 재료를 쓰는 데 그것은 절대 비밀입니다."
 

"근데 말에요. 왜 해물탕에는 생선이 안 들어가는 거예요."

"물론 생선이 안 들어갑니다. 그 까닭은 흰살 생선이 들어가면 탁해지지는 않지만, 일반 생선이 들어가면 국물이 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생선 자체의 가격이 비싸니까 원가문제도 있고 해서 안 넣습니다. 그라고 보통 유명 해물탕집, 우리같이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맛있는 해물탕집이라고 추천 하면 5만 원 이상 해물탕인데, 20~30여 가지의 해물이 들어갑니다. 그것이 안 되면 새우와 꽃게 위주로 탕을 끓여 냅니다. 어차피 해물탕 맛은 새우와 꽃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단맛이 많이 나는 새우와 꽃게는 담백한 위주의 생선과 일단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이 되겠습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해물탕에도 생선이 안 들어간다?

▲ 담은 술 허상조씨가 틈틈이 취미로 담은 술이 익고 있다.

▲ 쌍황버섯주 손님 취향에 따라 주인 허상조씨는 담은 성의껏 술을 권낸다.

그랬다. 평소 집에서 해물탕을 끓일 때 동태를 넣어 끓였을 때는 해물탕의 맛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나, 여타 다른 생선을 함께 넣었을 경우는 국물이 탁해지거나 텁텁했다. 하지만 허상조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해물탕에 생선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원가계산 때문이었다. 값비싼 돔이나 도다리, 하다못해 우럭이 들어가면 더 맛깔스럽겠다 싶었다.
 

"근데, 술 더 마시기 전에 주방에 들어가서 이 집 해물탕 만드는 모습을 좀 지켜보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참 곤란한 얘깁니다. 주방에는 제 아내(안덕순, 58)와 저 말고는 그 어느 누구도 못 들어갑니다. 출입금집니다. 홀에서 서빙하는 제 아들(허강민, 31)과 며느리도 얼씬 못합니다."
 

그렇지만 필자는 언뜻언뜻 곁눈질하며 주방을 예의주시해 보았다. 가게 바깥 수조에서 담아오는 조개는 이미 소금물에 담가둬서(2시간 정도) 이물질을 제거한 상태지만, 제법 힘을 주어 박박 문지른다. 설겅설겅 문지르면 이물질이 덜 떨어진단다. 그리고 각각의 해산물을 깨끗하게 손질한다.

▲ 친절한 서빙 매운탕을 시키면 주인 장 아들(호강민)내외가 친절하게 서빙해 준다.

꽃게는 등딱지를 떼어서 속을 긁어내고, 아가미와 내장은 떼어내어 4등분해 놓는다. 낙지랑 문어, 오징어는 머리 속에 있는 내장을 떼어 내고 소금에 박박 문질러 깨끗하게 손질한다. 새우는 통마리로 그대로 사용한다. 이쯤이면 해물탕에 들어가는 해산물 준비는 다 한 셈이다(하지만 이것들은 미리 대량으로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기본 육수와 양념(이게 진하해물탕의 맛을 내는 비법이다), 야채류, 목이버섯, 표고버섯, 쑥갓, 미나리, 콩나물, 파, 고추,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을 준비한다.
 

야채는 모두 해물 위에 얹어 끓인다

납작한 냄비에 무를 깔고, 준비한 해물을 알맞게 넣은 다음 재료가 잠길 정도의 물(육수를 적당량 배합한다)을 부은 후, 고춧가루 2큰술, 다진마늘 1/2큰술, 소금1작은술, 다데기(화학조미료 대신 사용)를 적당량 넣고 강한 불에서 끓인다. 물이 끓으면 채 쓴 고추와 파, 얇게 쓴 호박, 싹둑 7cm 썬 미나리 등을 넣는다. 그리고 야채가 익을 때까지 중간 불에서 끓인다.

▲ 해물탕 맛보기 충분히 다 끓었으면 이제 해물탕 맛보기만 남았다.

여기서 진하해물탕의 또 하나 비결은 야채는 모두 해물 위에 얹어 끓인다는 것이다. 왜냐? 보기 좋은 해물탕이 먹기에도 좋다는 주인장 말씀. 야채가 익었으면 뚜껑을 열고 간을 본 후, 적당하게 불 조절해가면 먹는다. 하, 그 맛! 실제로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그런데 더 부추기고 싶은 것은 진하해물탕집에 가서 해물탕을 시키면 친절한 서빙과 함께 주인장이 틈틈히 담아 놓은 상황버섯주 한 잔이 덤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