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창고

숭늉, 커피, 그리고 차

bthong 2012. 7. 10. 10:35

 

요 근래 약 20년 사이에 차를 마시는 인구가 부쩍 늘어났다. 아마도 생활이 여유로워진 덕분일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차를 몰랐고, 식후에 구수한 숭늉을 즐겨 마셨다. 무쇠 솥에서 노릇노릇하게 누른 누룽지에 물을 붓고 살짝 끓여서 만든 숭늉은 그 향기와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 내외는 지금도 둘이 다 숭늉과 눌은밥을 좋아하지만 전기밥솥 덕분?에 숭늉 맛을 보지 못한다. 문명의 이기에 우리의 음식문화가 피해를 보는 셈이다.

 

 

당시에 우리를 못 살게 굴던 일본 사람들은 누룽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우리가 숭늉 마시는 것을 몹시 경멸하였다. 그들은 식후에는 숭늉 대신 차를 마셨는데, 이것으로서 우리에게 굉장한 우월감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지금도 누룽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약삭빠르게도 현미녹차라고 하는 것을 개발하여 우리에게 수출을 하고 있다. 차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또 마늘이나 파를 먹는 우리를 흉보았고, 고추도 먹을 줄 몰랐었다. 지금 일본 젊은이들은 마늘이 안 들어간 고기 요리를 상상도 못 하고,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도 다이어트나 면역에 좋다고 즐겨 먹는다. 불과 60여 년 사이의 변화지만 격세지감이 든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 것 중 하나가 커피이다. 커피가 이미 구한말에 들어와 고종황제도 즐겨 마셨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일부 계층의 사치품에 불과했을 것 같다. 해방과 더불어 명동에 커피점이 꽤 여러 군데 생겼었는데, 인텔리겐치아와 사업가들이 주요 고객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즈음에 심부름으로 한 다방을 찾아가 윗사람을 만났는데, 수고했다며 커피 한잔을 사주었다. 생전 처음 마셔본 커피 맛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방 안에 빽빽이 들어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커피는 6.25사변을 겪으면서 급속하게 유행되어 일상화되었다. 당시의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였으며, 커피 병뚜껑을 열어놓으면 공기 중의 수분이 흡수되어 딱딱하게 응고되는 것이었다. 근래에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냉동건조법으로 만든 것이어서 공기 중에 상당 시간 노출되어도 변질되지 않는다. 인스턴트커피는 태양처럼 뜨겁고, 지옥처럼 새까맣고, 또 애인의 입술처럼 달콤하게 타서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시쳇말로 이 커피가 영부인 커피다.

 

 

근래에는 많은 나라 사람들이 원두커피를 마시는데, 커피를 내리는 방식들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 사람들은 비교적 묽게 만들어 마치 우리가 숭늉 마시듯 많은 양을 마신다. 그런가하면 남미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새까맣게 진한데 그 위에 황갈색 거품이 떠 있어,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겁이 나서 못 마실 정도다. 커피 잔도 그 크기가 보통 커피 잔의 반의 반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커피 양은 이 작은 잔의 반도 채우지 못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작은 양의 커피를 한 시간 이상씩 홀짝이면서 수다들을 떨기도 하고, 바쁠 때는 한 목음에 홀짝 마시고 일어서기도 한다. 나는 커피광은 아니지만 그 독특한 향기 때문에 아침마다 원두를 직접 손으로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데, 아메리칸 커피보다 조금 진하게 내려서 블랙으로 마신다.

 

 

원두커피가 유행하면서 홍차와 녹차가 일상생활에 파고들어왔다. 차가 이렇게 늦게 유행되기 시작한 것은 생활의 여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일찍이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부터 선비들이 차를 즐겨 마셨고, 대흥사의 초의선사 (草衣禪師)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다도를 정리하여 동다송(東茶頌)이라는 책을 저술하기까지 하였다. 차는 커피와는 달리 상당히 격식을 갖추고 마셔야 한다. 차에서 우러나온 맑고 투명한 색과 거기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와 담백한 맛을 감상하려면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로워야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생수를 마실 수 없어 차로 물을 대신하고, 티베트 지방에서는 야채 대신으로 마신다지만, 우리에게는 차가 일종의 기호품이다. 기호품은 가능한 고급이라야 하지, 싸구려는 안 드는 것만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차 자체는 물론 차도구, 끓이는 절차, 그리고 음미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멋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분수에 넘치는 차나 차 도구를 쓰라는 것은 아니며, 머그잔 같은 것으로 차를 마셔도 좋다는 것도 아니다.

 

 

차의 품질도 다른 농작물들과 마찬가지로 기후와 토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환경과 기후가 비슷한 지방에서 똑같은 차나무를 키워도 차의 질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산지에 따라 구분한다. 예로서 보성차, 용정차, 그리고 인도의 다질링차 등의 명칭은 산지에 따른 분류이다. 그런데 같은 보성차라도 찻잎을 언제 따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다르므로 똑같은 산지의 차라도 적차(摘茶) 시기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적차는 1년에 네번 정도 하는데, 봄부터 5월 초순사이에 따는 것을 첫물차, 5월말부터 6월 사이에 따는 것을 두물차, 7-8월에 따는 것을 세물차, 그리고 8월 하순에 따는 것을 끝물차라고 한다. 첫물차 중에서도 청명 전에 어린잎을 딴 것을 명전차(明前茶), 곡우 전에 딴 것을 우전차(雨前茶)라고 한다. 예전에는 찻잎을 한 잎 한 잎씩 손으로 땄지만, 근래에는 가위나 기계로 잎을 깎기도 한다. 관광객 상대로 대량 생산되는 차는 일단 후자의 방법으로 딴 것이라고 의심해 보아야 한다. 손으로 한 잎 한 잎씩 골라서 따면 품삯 때문에 차가 너무 비싸지는 것이다.

 

 

찻잎은 딴 다음에도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우선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생잎을 어느 정도 건조시켜야 한다. 드라이어로 말리거나 그늘에 얇게 펴놓고 말려야 하는데, 통풍이 잘 되는데다 얇게 펴놓고 말리는 것이 이상적이다. 찻잎에는 포도나 밀 등과 마찬가지로 효소가 있어 적당히 건조한 것을 적합한 조건에 보존하면 발효하게 된다.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는 홍차는 잎을 깊게 발효시킨 것으로서 발효과정에서 여러 가지 화합물이 생겨 색이 짙어지고 향도 강해진다. 추운 겨울철에 뜨거운 홍차에다 위스키 한 방울을 떨어트려 마시면 그 맛과 향이 기가 막힐 정도다. 차 잎을 중간 정도로 발효시킨 것을 우롱차(烏龍茶), 그리고 발효를 전혀 안 시킨 것을 녹차(綠茶)라고 한다. 또 우롱차에다 꽃잎을 넣은 것을 화차(花茶)라고 하는데, 중국의 모리화(茉莉花, 재스민)차가 유명하다.

 

 

이들 차를 오래 놔두고 먹을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도 매우 다양하다. 녹차의 경우에는 생잎의 수분을 날려 보낸 다음, 열처리를 하는데, 일본에서는 증기로 찌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냄비나 가마솥에 넣고 장인이 손으로 덖는다. 잎을 어느 정도로 말리고,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얼마나 잘 덖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우리 인간은 예민한 후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처리상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진짜로 맛있는 차는 대량생산을 해서 파는 차가 아니라 소규모의 차 농원에서 전래의 방법에 따라 만든 것이다. 이런 고급차를 격식을 차리고 멋있게 마시고 싶은 것이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자동판매기에 동전 몇 잎 넣으면 종이컵에 든 차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좋은 차를 마시는 옛 전통에 대한 향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지만, 결코 악차가 양차를 구축하지는 못 할 것이다.

 


                                                      The Evening Bell/ Sheila Ryan






 

 

http://cafe.daum.net/sixty/6U7Z/7503?docid=6A1T|6U7Z|7503|20100106112206&q=%B3%AA%C0%CC+%B5%E9%B8%E9%BC%AD+%C1%F6%C4%D1%BE%DF+%C7%D2+%C0%CF%B5%E9&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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