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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밥 볶는다고 김치볶음밥이더냐, 그렇게 쉬운 것이더냐

bthong 2014. 5. 1. 05:20

'희망사항'이라는 유행가가 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희망하는 여성상에 대해 읊조리는 노래다. 그녀는 일단 청바지가 잘 어울려야 한다. 밥을 먹어도 배가 안 나와야 하며,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잘 어울려야 한다. 소박한 가사라고 생각했다.

뭘 몰랐던 시절이다.

일단 청바지. 아무나 입지만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은 아니다. 꼭 체형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알아야 '잇(it)' 청바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자기 자신만은 모른다. 다음, 밥과 배의 역학 관계. 밥을 먹었으면 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사필귀정. 기초대사량이 지나치게 높거나(바로 소화시킬 수 있게끔) 복벽이 남달리 완강해야 배의 진군을 저지할 수 있다. 그리고 문제적 대목. 뚱뚱해도 다리가 예쁜 여자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남자가 생각하는 '뚱뚱'이란 여자들에게는 '통통'이거나 혹은 보기 좋은 정도일 수 있다는 것을.


	일러스트

그러고도 시종 이상적 여인이 되려면 갖춰야 할 덕목들이 나열된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은. 가장 심오한 대목은 이 부분이다.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김치볶음밥이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김치와 밥을 넣고 볶는다고 김치볶음밥이 되는 게 아니다. 뭔가가, 미묘한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김치와 밥과 기름 사이의 미세한 균형 같은 것.

김치는, 일단 턴다. 김치 속을 적절히 제거하고 '대'와 '잎'을 썬다. 대와 잎, 그러니까 딱딱한 부분과 부드러운 부분의 비율이 1:1이 되게끔. 그리고 작게 자른다. 아기 손톱만 하게. 김치볶음밥의 비법에 대해 말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비법은 김치를 볶을 때 시간차를 두는 것이었다. 익은 것과 덜 익은 것이 1:1이 되게끔.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해보니 상상했던 맛과는 달랐다. 풍성하지 못하고 불균질했다. 그래서 항의했다. 남자를 만들어낸 소설가에게(그 남자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뭘 또 해보고 그랬어!"

밥은 식은 밥이어야 한다. 한 지 반나절쯤 된. 적당히 단단해지고 적당히 수분이 날아간. 그리고 기름. 누군가는 버터가 '꼬소'하다고 했지만 나는 포도씨유가 좋다. 돼지고기나 베이컨을 넣을 양이면 기름은 넣지 않거나 조금만. 마지막으로 달걀 프라이. 중국집 볶음밥에 얹어주는 가장자리가 플레어스커트처럼 일어난 것은 곤란하다. 수란에 가까운, 눌은 자국이 없는 달걀 프라이라야 한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쓰다 보니 알겠다. 김치볶음밥이란 내숭이다. 공들이지 않은 것처럼 공들이는 것. 그러니까 이 노래의 한 구절과도 같은 경지다. "멋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 염치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그런 남자'가 있다는 것도. 세상은 원래 염치없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