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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더럽혀 자신을 고귀하게 만든 이 여자

bthong 2014. 5. 1. 05:26

 

 

미래에서 온 여자- 존 파울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사라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말할 수 있다. 매번 달라지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역시 말할 수 있다. 늘 뭔가를 읽고 있기는 하니까. 어떤 (소설의) 인물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말도 못했었다. 그랬었다. 내게 결정적인 캐릭터는 없었던 것이다. 이름을 따서 메일 주소로 삼거나 인상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할 만한. 이를테면 포크너가 어떤 인터뷰(‘작가란 무엇인가’ 다른·2014)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잔인하고 잔혹한 여성이며, 술주정뱅이이고, 낙관주의자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거나 “인생과 싸우지만 결코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하지도 않고 애걸하지도 않는” 인물이라는 정의들을 갖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사라 우드러프.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주인공. 그러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고 하면 안 되는 여자. 왜 그런가? (참기로 한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프랑스 중위와 그의 미래의 연인이 될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 중위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다른 남자가 나온다. 찰스. 준남작의 후손이자 대단한 부자의 딸과 곧 결혼할 남자. 사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자다.
The French Lieutenant's Woman(프랑스 중위의 여인) 역을 연기하는 메릴 스트립.
The French Lieutenant's Woman(프랑스 중위의 여인) 역을 연기하는 메릴 스트립. "메릴 스트립이 언제부터 메릴 스트립다운 메릴 스트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보다 더 사라에 잘 어울리는 배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 사라는 이름 대신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불린다.(찰스도 처음에는 그녀를 그렇게 지칭한다.) 풀어 쓰면 이런 말이다. 프랑스 중위 놈과 놀아난 헤픈 년. 이 소설의 배경은 1867년의 영국.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 인기를 끌었던 빅토리아 시대다. 당시의 영국인들은 부도덕한 일에 관대하지 못했다고 존 파울즈는 말한다. 마을 모두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따돌림 당하는 불운한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 같고, 감옥에 갇힌 것 같고, 유죄 선고를 받은 듯한 기분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는지 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깊은 통찰력을 타고난 것이 사라의 일생에 나타난 최초의 저주”였다고. 두 번째 저주는 그녀가 받은 교육. 사라는 주제넘게 똑똑한 여자였던 것이다. 1867년이라는 암울한 시대에, “농부의 마누라가 될 팔자”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게. 역시 동시대인들보다는 열린 남자 찰스는 사라의 눈에서 “섬광 같은 시선”을 읽는다. 그 안에 깃든 지성과 독립성, 어두운 기질을. 사라는 찰스에게 고백한다. “전 스스로 제 몸을 바쳤어요”라고. 그 프랑스 중위에게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의 말. “사람들이 절 손가락질하면서 저기 프랑스 중위의 창녀가 간다고 말하게 하려고…. 그래요, 그런 말이 나오게 하려고 그런 짓을 했어요.(중략) 전 수치와 결혼했어요.” 아니 왜? “제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수치심과,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자각이에요.”라고. 또 이렇게도. “전 아무것도 아니고, 이제 더 이상 인간도 아니에요.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1969년 출간된 이 소설은 198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극작가 해롤트 핀터가 영화로 각색했다. 사라는 메릴 스트립, 찰스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다.
1969년 출간된 이 소설은 198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극작가 해롤트 핀터가 영화로 각색했다. 사라는 메릴 스트립, 찰스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충격에 빠졌다. 스스로를 ‘창녀’로 강등시키는 여자라니. 자신을 더럽혀 자신을 고귀하게 만든 이 여자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견딜 수 없었을 그녀의 고독에 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을 그녀의 고독에 대하여.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인물은 나를 사로잡았고, 오래도록 나를 놓아주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이 소설을 더 읽다 보면, 더 큰 충격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이 불행을 자처한 여자의 거짓말 때문에.(자신이 한 거짓말로 고통 받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는 ‘속죄’가 있다.) 그 ‘불행’이 자신으로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숭고한 거짓말이다. 찰스는…. 흔들린다. “그 여자한테는 무언가가 있어요. 지혜…. 사악함이나 광기와 공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고귀한 것을 이해하는 능력 말입니다. 겉은 보잘 것 없지만 그 속에는…. 잘 설명할 수가 없군요.” 맞다. 잘 설명할 수가 없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