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부장 이모(57)씨는 마라톤 마니아다. 마라톤을 위해 가족모임은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도 끊은 지 수년째다. 마라톤으로 만성 무릎 통증을 달고 살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마라톤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씨는 마라톤을 뺀 인생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수영을 더 배워서 철인3종 경기에 나가볼 계획이다.
주부 박모(62)씨의 하루 일정은 탁구로 시작해 탁구로 끝난다. 탁구를 한번 치면 2시간을 훌쩍 넘긴다. 탁구채를 잡은 오른손에 물집이 생기고 터져도 개의치 않는다. 몇 달 전 손목터널증후군 진단을 받아 손목이 퉁퉁 부었지만, 탁구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커서 그만둘 수 없다.
단시간에 여러 운동을 강도 높게 하는 '크로스핏'을 즐기던 정모(29)씨는 어느 날 왼쪽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근육통으로 여겼고 오히려 통증을 즐겼다. 통증이 있어야 근육이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소변색이 콜라처럼 진해져 병원을 찾았더니 근육이 녹는 질환인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잘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라고 말했다.
◇운동 즐기는 사람 2~3%가 중독 상태
위의 사례자들은 모두 '운동 중독'이 된 상태이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지만 운동 행위 자체에 중독돼 오히려 독(毒)이 된 경우다. 운동 중독은 특정 행위를 반복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행동(행위)중독의 한 종류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영철 교수는 "운동 중독은 자신의 체력을 극한으로 몰고갈 때까지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학계에서는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사람 중 2~3%가 운동 중독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마라톤과 조기축구, 철인3종 경기를 하는 사람에게서 많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한국체육학회지 실린 논문에 따르면 생활체육 참가자 1121명 중 7.4%가 운동 중독자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박원하 교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 중독 상태이지만,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인식하다보니, 운동 중독에 대한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운동 중독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자부하지만 늘 부상과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 후 나오는 '도파민' 쾌감에 중독
운동에 중독되는 이유는 '뇌 속 보상회로'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한지 40~50분이 경과하면 체내에 젖산과 피로물질이 쌓이면서 통증을 느낀다. 이 때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과 '아난다마이드'를 분비한다. 이 물질은 아편과 대마초 같은 강력한 통증·피로감소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물질은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한다. 정영철 교수는 "뇌 속에서 분비된 도파민이 주는 쾌락과 고양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 느낌을 또 원하기 때문에 더 많이 운동하고, 강한 운동 자극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라톤같은 격렬하고 힘든 운동을 하면서 느껴지는 쾌감과 행복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끊임없이 느끼고 싶어 운동을 하는 것 역시 중독 상태다.
◇초기에 중독 알아채 진행 막아야
운동 중독은 일반적인 중독처럼 초기, 중기, 말기의 진행을 거친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운동 중독 초기 때 자신이 운동 중독 상태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운동 시간과 강도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초기=3개월 이상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 중에 운동하는 것만이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며, 다른 일에서는 크게감흥이 없을 때 운동 중독 초기가 의심된다. 운동을 거르게 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운동을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증가한다.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운동 중독 중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강한 강도의 운동을 원하고, 운동 후 통증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해야 운동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정영철 교수는 "운동을 하는 시간이 점차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도박이나 인터넷, 쇼핑 중독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말기=운동 중에 다쳤거나, 운동으로 인해 병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그만둘 수 없는 상태다. 이해국 교수는 "중독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거나 운동량을 줄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운동을 과하게 해서 나타나는 통증과 피로에 쾌감을 느끼고, 본인의 운동 능력보다 과한 운동을 지속하려고 하는 것. 체력이 바닥 날 때까지 운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박 중독, 쇼핑 중독과 같은 행위 중독의 하나다.
운동 거른 후 불안하고 죄책감 들면 '운동 중독' 의심
몸 혹사하며 행복감 느끼는 상태
운동 강도 세지고 조절력 잃기도… 초기부터 컨트롤해야 악화 막아
고강도 운동 90분 이상 하면, 면역력 떨어져
운동 중독, 왜 위험할까
심장에도 스트레스, 부정맥 위험… 근력운동 과도하면 근육 녹기도
운동 중독이 위험한 이유는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운동을 적당히 하면 면역력이 높아지지만, 과도하게 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미국대학스포츠의학회(ACSM)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대 심박수를 70% 이상 사용하는 격렬한 고강도 운동(달리기나 에어로빅 등 숨이 많이 차는 운동)을 90분 이상 할 경우 오히려 면역기능에 손상을 가져온다. 고강도 운동을 90분 이상 한 후 혈액을 채취해봤더니 1~2시간 동안 면역세포의 숫자와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면역기능을 낮추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증가했다.
부정맥 위험도 높인다. 최근 호주 심장당뇨병학회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운동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정맥 중 하나인 심방세동 발병에 관한 12편의 연구결과를 분석해보니,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하게 되면 심장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 생길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의 운동이 자율신경의 불균형, 심장비대 등을 초래해 심방세동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근육 운동을 오랜 시간 과하게 하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에는 크로스핏(단시간에 여러 운동을 번갈아 하는 운동) 같은 고강도 근육운동으로 인해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황현석 교수는 "우리 병원만 해도 작년 대비 40% 환자가 늘었다"며 "근육 운동을 갑작스럽게 과도하게 하면 근육세포에 충분한 산소공급이 되지 않으면서 근육세포 파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무리한 운동은 스포츠탈장도 유발한다. 스포츠탈장은 무리하게 근육 운동을 하거나,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다가 생기는 질환이다. 전체 탈장의 75~90%를 차지한다. 내장을 받쳐주는 근육층인 복벽이 약해져 구멍이 나면서 장이 압력에 의해 복벽 밖으로 밀려나오는 현상이다. 대부분 과격하고 허리를 많이 구부리는 운동을 할 때 발생한다.
부정맥 위험도 높인다. 최근 호주 심장당뇨병학회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운동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정맥 중 하나인 심방세동 발병에 관한 12편의 연구결과를 분석해보니,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하게 되면 심장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 생길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의 운동이 자율신경의 불균형, 심장비대 등을 초래해 심방세동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근육 운동을 오랜 시간 과하게 하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에는 크로스핏(단시간에 여러 운동을 번갈아 하는 운동) 같은 고강도 근육운동으로 인해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대전성모병원 신장내과 황현석 교수는 "우리 병원만 해도 작년 대비 40% 환자가 늘었다"며 "근육 운동을 갑작스럽게 과도하게 하면 근육세포에 충분한 산소공급이 되지 않으면서 근육세포 파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무리한 운동은 스포츠탈장도 유발한다. 스포츠탈장은 무리하게 근육 운동을 하거나,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다가 생기는 질환이다. 전체 탈장의 75~90%를 차지한다. 내장을 받쳐주는 근육층인 복벽이 약해져 구멍이 나면서 장이 압력에 의해 복벽 밖으로 밀려나오는 현상이다. 대부분 과격하고 허리를 많이 구부리는 운동을 할 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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