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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래의 금광" 유전자 분석시장

bthong 2017. 6. 25. 06:27


[WEEKLY BIZ] 시총 188억달러… 유전자 분석시장 70% 거머쥔 남자

  • 김정훈 차장
  • 샌디에이고=윤예나 기자




  • 입력 : 2017.06.24 08:00

     美 분석 장비업체 '일루미나' 제이 플래틀리 회장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있을까. 예측된 수명이 너무 짧다면, 늘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텔로이어스라는 회사는 89달러에 텔로미어(telomere·사람의 노화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염기 서열 부위) 길이를 알 수 있는 검사 키트를 판매하고 있다. 텔로미어 길이가 실제 나이 평균에 비해 얼마나 길고 짧은지 알려주는 것이다. 단순히 길이만 아는 것으로 그친다면 별 소용이 없겠지만, 유전자 조작·편집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수리'도 가능하다. 2015년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진은 이미 짧아진 텔로미어 길이를 인위적으로 10% 정도 늘리는 데 성공했다. 10년 정도 세월을 되돌린 것이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피부 주름을 펴는 보톡스 시술 대신 '유전자 시술'이 성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이 플래틀리 ‘일루미나’ 회장
    제이 플래틀리 ‘일루미나’ 회장 / 김란희
    DNA 정보 활용해 수명 연장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2013년 자신의 게놈 지도에서 유방암·난소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유전자를 발견하고 발병 전에 위험을 없애기 위해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15년 영국의 한 부부는 유전병을 일으키는 변이를 미리 알아낸 뒤, 해당 변이가 없는 배아를 체외 수정했다. 유전병 대물림을 거부한 것이다. 세계의 '영생 연구소'들은 줄기세포를 활용해 인간 장기를 재배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장기가 고장 나거나 수명이 다하면, 닳은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재배한 새 장기로 교환해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Cover Story] 美 분석 장비업체 '일루미나'
    인류가 오랫동안 열망해 왔던 무병장수의 꿈이 차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국가 차원 연구가 아니면 넘볼 수도 없던 유전자 정보를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덕분이다. 화려한 외양으로 주목받는 스마트 기기와 컴퓨터 혁명의 숨은 동력이 삼성전자·인텔 등의 반도체 혁신이었던 것처럼, '유전자 혁명'을 이끈 숨은 주역이 바로 유전자 분석 장비 분야의 세계 1위 기업 일루미나(illumina)다. 개인 유전 정보 분석 업체 23앤드미사(社)의 앤 워치츠키 창업자는 "일루미나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실상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일루미나는 현재 전 세계 유전자 분석 장비 시장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순위에서 2014년 1위를 차지한 뒤 2015, 2016년에는 3위에 올랐다. 우리나라 바이오테크 기업의 주가는 그 회사가 일루미나 장비와 시스템을 대량으로 도입한다는 소식에 상승할 정도다.

    2014년 일루미나가 출시한 유전자 분석 장비 '하이섹(HiSeq)'은 한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1000달러로 줄였다. 올해 초에는 '노바섹(NovaSeq)'이라는 새 기기를 통해 2~3년 안에 유전자 분석비 100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부유층부터 서민층까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유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유전자 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존재"

    유전자 혁명이 바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제이 플래틀리(Flatley·65) 일루미나 회장에게 그 답을 듣기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일루미나 본사를 찾았다. 5만㎡ 가까운 대지에 연구동 두 채가 우뚝 솟아 있고, 운동 경기 등 행사가 열리는 스타디움, 직원들이 자유롭게 음식을 먹는 카페와 푸드트럭까지 갖춰 자유 분방한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연구동 안에 들어서면 바깥과는 180도 다른 공기가 돈다. 넓은 연구실마다 하얀 직사각형 유전자 분석 기기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흰 가운 차림 연구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오가며 기기를 들여다본다. 유전자 검사비 혁명의 주역들이 일하는 현장이다.

    본관 로비에 플래틀리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지만 숱이 빽빽한 머리칼, 구릿빛 피부에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청년 같았다. 일루미나의 유전자 분석 기기 변천사를 직접 설명한 그는 "나는 58세 때 처음으로 유전자 분석을 받아 봤는데 처음 얻게 된 정보와 5년 뒤 다시 분석한 결과가 달랐다"며 "인류는 이제야 유전자 분석의 첫 장을 열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유전자 속의 비밀이 더 밝혀지면 생명공학이나 의학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을 뒤흔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Cover Story] 美 분석 장비업체 '일루미나' 제이 플래틀리 회장
    제이 플래틀리 일루미나 회장은 1999년부터 2016년 7월까지 17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회사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그가 합류하기 전 50만달러였던 일루미나의 연 매출은 지난해 24억달러를 기록했다. 포브스는 2013년 플래틀리 회장을 '유전체학 분야 파괴적 혁신가'로 선정했다. / 윤예나 기자
    세계 최고 수준 소믈리에는 훈련 기간인 2년 동안2만여 종 정도 와인을 시음하며 맛을 익힌다고 한다. 사람 입맛이 제각각이라, 아무리 값비싼 와인이라도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떫은맛이 강한 와인을 권하면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인 마실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알면 더 뛰어난 소믈리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 유전자에 따라 떫은맛이 강한 와인을 좋아하는지, 단맛이 강한 와인을 좋아하는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15년 바이놈(Vinome)이라는 회사가 등장해 유전자 정보에 따라 선호할 만한 와인을 골라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질병 발생 가능성을 점치는 서비스를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23앤드미는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등의 10가지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 검사 키트를 온라인·편의점에서 판매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6월부터 12가지 항목에 대한 개인 유전자 검사가 허용됐다. 의학, 범죄 수사에 주로 쓰이던 유전자 정보가 이제 개인 소비자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자녀 진로를 상담해 주는 컨설팅이 유행할 수 있다. 선천적인 '음치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고, 그 외 언어능력 등 다양한 재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제이 플래틀리 일루미나 회장은 "유전자에는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며 "개인이 자신의 유전정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의료·헬스케어 분야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식음료 산업의 지형도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에 모든 정보 담겨 있다

    ―직접 유전자 분석을 해봤다고 하는데.

    "2009년이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전 세계에서 자신의 게놈 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회의실에 임직원이 모두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옷소매를 걷고 피를 뽑았다. 당시 알아낸 것은, 내가 전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지만 6가지 치명적인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니 뭔가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웃음). 그 뒤로 일 년 걸러 한 번씩 회사 연구 차원에서 내 게놈 지도를 재해석한 결과를 내놨다. 유전자 검사 자체는 일생에 한 번만 하면 되지만, 이를 분석하는 기술이 좋아지고 정보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반쯤 전에 다시 한 번 내 게놈 지도를 분석했을 때는 '악성 고체온증'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수술할 때 흡입 마취제를 들이마시면 급속도로 체온이 올라 사망에 이르는데, 이를 모르고 수술을 받으면 의료진 과실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물론 사전에 알고 있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병이다."

    ―자기 유전자 정보를 알면 뭐가 바뀌나.

    "사람의 DNA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줄 정보가 담겼다. 내 선조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색 눈을 가졌는지 등 내 뿌리를 알 수 있다. 또 내가 어떤 것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지 정보도 담겼다. 오이를 유난히 못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까지 그 사람들은 보통 편식이 심한 어린아이 같다는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쓴맛에 100~1000배나 민감하게 느끼도록 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오이가 싫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짠맛, 매운맛 등에 유난히 끌리게 하는 유전자도 있다. 이런 정보들을 활용해 앞으로 5년쯤 뒤에는 '매치닷컴' 같은 중매 웹사이트에 유전자 정보를 등록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이런 냄새를 지닌 사람에게 끌릴 테니 두 사람이 만나면 잘될 가능성이 크겠다'며 성사 확률을 높일 수 있을 테니까."

    '최고의 기술 추구'가 폭풍 성장 비결

    일루미나가 처음부터 유전자 분석 기기 시장을 선도해온 업체는 사실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널리 쓰이던 '생거분석법'을 이용한 장비는 어플라이드바이오시스템스라는 회사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이 상용화된 뒤 먼저 검사 기기를 내놓은 것도 스위스의 로슈였다. 그러나 일루미나는 첨단 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한편, 매년 매출액의 20% 가까이 연구·개발(R&D)에 쏟아부으며 유전자 해독 장비를 내놨다. 일루미나는 지난해 20억달러 매출 중 5억달러를 R&D 비용으로 썼다. '1000달러 유전자 해독 시대'를 연 '하이섹' 등 장비도 이런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물이다. 일루미나의 급성장을 눈여겨본 로슈는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일루미나 인수를 시도했지만, 일루미나의 거부로 무산됐다.

    ―애초 유전자 분석 장비 사업은 무주공산인 영역 아니었나.

    "사실 전 세계 금융시장 상황이 나빴던 2011년은 힘들었다. 투자자들의 투자가 급속도로 줄었다. 그다음으로 겪은 어려움은 로슈의 일루미나 인수 시도였다. 2011년 하반기에 실적이 악화해 주가가 하락했는데, 로슈가 때맞춰 인수를 제안해온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제안한 금액이 주당 44.5달러였고, 그나마 높게 부른 금액도 주당 51달러에 불과했다. 우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하는 제안이라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주주들에게 반값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 방식까지 동원해 경영권을 방어했다. 그 뒤로 일루미나 주가는 주당 240달러까지 올랐고 최근엔 170달러를 오간다."

    ―지금은 유전자 분석 장비 업체 경쟁이 적지 않은데.

    "처음부터 우리 기술력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미리 눈여겨보던 이 분야 최고 기술 기업 솔렉사(Solexa)를 인수했고, 그 뒤로도 우리 시장 점유율에 관계없이 매년 4억~5억달러씩 예산을 책정해 R&D에 투자하고 있다. 나는 한 번도 '지금 이대로면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재무제표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우리 기술력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해독법이 최고의 해독법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한 결과가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결국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1위 기업'인데, 어떻게 조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나.

    "회사 차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발전 동력일 것이다. 조직원의 성향 자체도 한몫한다. 도전 의식이 강한 구성원이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고 성취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현재 스코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 우리 조직은 남들이 볼 때는 재미없어 보이는 '소소한 혁명'에 큰 힘을 쏟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소소한 혁명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기술적 혁신이 이뤄지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여기에서 재미를 맛본 조직원들이 '이거,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은 과제에 도전하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이 역시 끊임없는 발전의 동력이다."

    유전자 '해석 기술' 계속 발전… 산업 효과 커

    일루미나는 유전자 분석 1000달러 시대를 연 뒤 본격적으로 개인 소비자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15년에는 유전자 업계의 '앱스토어'를 표방한 자회사 '헬릭스(Helix)'를 설립했고, 지난해에는 혈액으로 조기암을 진단하는 '그레일(Grail)'을 세웠다. 전문 연구소나 생명공학 기업에 장비를 공급하던 B2B 기업이 B2C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헬릭스를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기업이 유전자 정보와 의학은 물론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 사업과 접목한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다. 헬릭스는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디지털화해 보관하는 허브(hub)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염기서열은 한 번 완전히 해독하고 나면 여러 번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 번 읽은 유전자 정보에서 해석할 수 있는 질병과의 상관관계, 입맛, 성격의 특성을 읽어내는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 단 한 번의 유전자 분석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게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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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3/2017062301566.html#csidx1e346b17edda73fa04b1244e605f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