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bthong 2008. 2. 1. 10:54

어제(31일) 무려 4편의 한국 영화가 개봉했다. 모두 극장가 최고의 대목 중 하나로 꼽히는 설 연휴를 겨냥한 작품들이다. 조선일보 영화팀의 선택은 해방 직전 경성을 무대로 한 코믹 액션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감독 정용기). 뒤에 '인 코리아'(in Korea)가 살짝 생략된 이 경쾌한 코미디는 '가족들의 휴식과 웃음'이라는 설날 오락영화 정신에 120% 투철하다. 그리고 하나 더. 많은 비판을 받았던 감독의 전작 '가문의 영광 2'와 달리, '원스…'는 명절에 유달리 너그러움을 베푸는 관객들의 아량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허술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두문자와 음담패설 대신 재기 넘치는 유머, 맥락 없는 몸 개그 대신 날렵한 리듬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자칫 평범했을지 모를 1940년대 코미디에 활력을 만든 핵심 설정은 보물찾기 대소동이다. 무려 30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이면서 겨레의 혼(魂)을 상징하는 민족의 보물 '동방의 빛'. '인디아나 존스' '내셔널 트레저' 등 할리우드 보물찾기 영화에서 장르의 틀을 빌려 왔지만,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공의 특수성을 창조적으로 녹여 넣었다. 군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독립군이든, 천하의 바람둥이 사기꾼이든, 사리사욕에 불타는 일본인 총감이든 '동방의 빛'이 뿜어내는 유혹은 치명적이다.

 

▲ (주)아이엠픽쳐스 제공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배역을 꿰차고 능수능란하게 캐릭터를 빚어낸 배우들의 호연과 호흡은 이 코미디를 보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고고학 지식부터 여자들을 사로잡는 마술까지 천의 얼굴을 지닌 사기꾼 역 박용우는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을 뛰어넘는 빼어난 캐릭터 해석 능력을 보여주며, 실수투성이 독립투사 콤비로 나오는 성동일·조희봉의 엇박자 호흡도 배를 잡고 뒹굴게 만든다. 무대에 섰을 때의 존재감과 성량이 아쉽지만, '내숭 100단 재즈 가수' 이보영의 연기도 성실한 편이다. 전당포 주인 안길강, 조선인 경찰 임형준, 일본인 총감 김응수도 빈자리 많은 이야기 뼈대에 두툼한 살코기를 채워 넣는다.

명절을 위한 킬링타임용 코미디로도 손색없지만, 그 이상을 원하는 욕심 많은 관객을 위해서도 '원스…'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이지형의 장편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2000) 이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2003)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2003) '연애의 시대'(2003) 등 식민지 경성을 뒤집어 보는 인문서가 최근 몇 년 사이 앞다퉈 출간됐다. 지난해부터는 이를 원작 삼은 드라마와 영화도 쏟아지고 있다.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비장한 역사적 행위보다 연애와 낭만이라는 개인적 가치에 집중하는 스포트라이트다. 그리고 그런 '뒤집기 정신'의 스크린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원스…'는 뛰어난 성취도를 보여준다.

▲ (주)아이엠픽쳐스 제공

흥미로운 대목 하나 더. 주지하다시피 뛰어난 코미디는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친일파 바람둥이 가네무라와 창씨개명 이전 봉구 사이의 이율배반, 춘자라는 본명보다 하루꼬라는 이름을 내세워야 하는 비애. '원스…'의 모든 캐릭터의 밑바닥에는 이런 개인적 모순과 긴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상업영화 정신에 더할 나위 없이 투철한 설 맞이 가족 전용 코미디 영화다.



줄거리 

해방 직전 경성. 식민지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 군부는 '동방의 빛'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석굴암 본존불상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는 전설의 보물, 3000캐럿짜리 다이아다. 천의 얼굴을 가진 경성 최고의 사기꾼 봉구(박용우), 재즈가수의 탈을 쓴 희대의 도둑 하루꼬(이보영), 술집을 열고 있는 얼렁뚱땅 독립군(성동일)도 보물 찾아 삼천리다. 이제 독립군의 시대는 가고 사기꾼들의 시대가 온 것인가.



별점 


뻥도 제대로 치면 가끔 속아주고 싶어진다.★★★  (황희연·영화 칼럼니스트)

경성 액션 스캔들. 전체적인 사건보다는 부분부분 재미에 충실한 오락.

★★☆ (이상용·영화평론가)

▲ 가족들의 휴식과 웃음이라는 설날 영화 정신에 120% 투철한 코미디. 박용우, 성동일, 조희봉의 연기 호흡도 좋다. /아이엠픽쳐스 제공= 어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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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시간 : 2008.02.01 00:54

  •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