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다리를 붙들고라도 달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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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상훈 논설위원 jhyang@chosun.com
- 입력 : 2008.04.15 19:01 / 수정 : 2008.04.1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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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상훈 논설위원
국회의원 선거와 그 후일담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다른 중요한 국가적 사안도 진행되고 있다.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고, 모스크바에선 우리나라의 소형위성발사체(KSLV 1)의 1단계 로켓 제작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갔다.
한 TV는 이씨를 태운 러시아 로켓이 발사되던 날 하루에 관련 방송을 10시간 넘게 내보냈지만, 이것이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씨를 '우주인'이 아닌 '상업 계약에 따른 우주비행 참여자'로 분류했다. 쉽게 말해 미·러·유럽·일본 소유의 우주정거장에 온 관광객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36번째 국가의 관광객이다.
이씨가 우주에서 하는 실험도 초보적인 것이니 한 개인의 우주 관광에 국민 세금 260억 원을 썼다는 얘기도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또 지금 단계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런 유인(有人) 우주비행이 아니라 로켓 엔진 기술이다. 이씨의 우주 체류는 우리가 뭔가를 이룬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국력을 기울여 우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이렇게 흉내나 내다 말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벨을 울린 사건이다.
올해 말에 전남 외나로도 기지에서 KSLV 1 로켓을 발사하는데 5000억원 이상이 든다. 10년쯤 뒤 순수 국산 로켓으로 훨씬 더 무거운 위성체를 쏘아 올리려는 계획엔 지금 추산으로도 4조원 넘게 든다. 이렇게 돈을 퍼부어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을 어느 정도라도 따라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우주산업엔 기술 이전이란 말 자체가 없다. 러시아는 지금 우리와 함께 로켓을 만들고 이소연씨를 우주정거장에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나사 못 하나 박는 모습이라도 우리가 볼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측은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고산씨를 교체하면서 "50년 이상 개발한 우주 기술은 외교적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미국은 러시아보다 더 하다. 현대중공업의 최고 경영자 한 사람은 "강대국들은 항공우주산업 만은 후발 국가가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에 투자한다면 벤처도 이런 벤처가 없다.
전체로 보면 우주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 보다 더 크고, 더 불확실한 투자다. 대운하는 경제성이 있든 없든 건설하고 나면 남는 것이라도 있다. 우주 사업은 실패하면 돈만 날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대운하만 국민적 쟁점이다. 정치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과 모험의 정도로 따지면 우주로 가느냐 마느냐는 것이야 말로 국가적,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다.
조지 부시의 미국 행정부는 앞으로 16년 뒤부터 달에 영구 기지를 건설한다는 신우주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서 달의 자원을 탐사, 개발하고 더 먼 우주로 나간다는 것이다. 16년이면 금방이다. 미국은 각 국에 계획 참여를 요청했다. 비용을 분담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참여한다는 방침이지만 우주 기술이 없으면 돈만 내고 곁불만 쬐다 끝나게 된다. 할 거냐 말 거냐가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이런 경우에 안 하는 쪽으로 가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는 500여 년 전에 배를 타고 무작정 서쪽으로 가 보았던 서양인들의 무대가 되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면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하지만 결국 신천지를 연다. 이 체험은 강대국의 후손들에게 DNA로 유전되고 있다.
우주 산업에 부가 가치가 얼마냐 하는 따위의 계산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도 배를 타고 나가서 거기에 세상의 끝이 있는지 신천지가 있는지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중국은 독자적인 달 기지를, 일본은 달 보다 4배 먼 공간에 심(深)우주 기지를 꿈꾸고 있다. 세계의 강국들은 우주를 영토로 만들어가고, 미래라는 시간까지 점령해간다. 우주는 언젠가는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신대륙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에는 미국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서라도 달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