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VIETNAM

베트남은 울지 않는다

bthong 2008. 6. 15. 00:50

 

베트남 지도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99,538 km² (108위)
0.3%
인구
 • 2005년 어림
 • 2000년 조사
 • 인구 밀도
 
48,422,644명 (24위)
45,985,289명
492명/km² (12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9,944억 (14위)
$20,590 (33위)
HDI
 • 2004년 조사

0.912 (26위)

 

살인적 물가, 증시 폭락, 무역적자…

총체적인 위기 맞고 있지만 젊고 열정적인 근로자들이 '희망의 싹' 정책당국의 정확한 대응 따른다면 '비극적 시나리오' 피할 수 있어

베트남이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는 얘기들이 나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 투자가들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당황한다.

호찌민에서는 새벽 6시부터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근로자들이 간선도로를 메우고, 상점들은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밤 늦게야 닫는다. 비(非) 문맹률이 94%로 어느 개발 도상국보다 교육열이 높고, 3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대다수 국민이 매우 젊다.

지난 10년간 베트남은 7.5%의 실질 경제성장을 유지해 아시아에서 중국, 인도 다음으로 고속 성장을 해왔다. 호찌민이나 인근 공업단지에서 느끼는 활력은 중국 어느 도시보다 떨어지지 않고, 근로자의 근면성은 오히려 앞선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올 들어 경기 과열의 적신호가 커지고 중앙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외면과 부인을 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금융시장에서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미국 등 선진 자본이 물밀 듯 들어오면서 베트남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과잉 유동성에 따른 부동산시장 과열 등 부정적 효과도 컸다.

음식료 및 주택 가격 폭등 여파로 5월 물가 상승률이 25%에 달했다. 은행 대출금리는 가산금리까지 포함해 20%를 상회하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상태여서 여전히 강력한 금융 긴축이 필요하다. 호찌민시 임대료는 중국 대도시를 넘어선 지 오래이고 홍콩, 싱가포르에 육박한다.

대외 부문에서도 경기 과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훨씬 앞선 결과 무역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8%에 육박했다. 작년만 해도 대규모 무역 적자를 해외 직접투자, 중장기 차입 그리고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으로 메워나갔기에 문제의 심각성을 베트남 정부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가들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수입 증가율이 80%에 육박하면서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금년 5월까지 144억 달러에 달했다. 작년보다 400%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금년 베트남 동(Dong)화는 빠르게 절하되고 있으며, 외국인 자금 유입도 메말랐다. 그 결과 올해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폭이 20%를 상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10년 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외환위기도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0%에 육박하면서 촉발된 바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수치다.

베트남 증시는 작년 초의 고점(高點)에 비해 70% 가까이 하락했다. 작년 초 주가수익배수(PER)가 35배였다가 대폭 조정을 받아 지금 13배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저평가됐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거시 환경이 불투명해 수익 추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20%에 달해 실질 기업이익(EPS) 증가율도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액이 500만~700만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가치 산정이 어렵다.

은행들은 부동산, 주식투자 등에 무분별하게 대출해준 결과, 제대로 대손충당금을 쌓는다면 대부분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판단된다. 민간은행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아시아 커머셜 뱅크(Asia Commercial Bank)의 대손충당금 비율이 0.1%에 불과하다. 방만한 대출, 안일한 리스크 관리, 은행 임원들의 현실 부정은 10년 전 퇴출과 통폐합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던 우리 시중은행들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베트남정부 국채(國債) 입찰이 4차례나 무산됐다.

총체적 위기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직도 재생의 기회가 있다. 젊고 의욕이 넘치는 근로자가 최대 자산이고, 베트남 동화가 추가 절하되면 수출 경쟁력이 배가될 것이다. 수출이 작년 GDP의 68%를 차지했으니 수출의 높은 경제 기여도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베트남 경제가 되살아 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정확한 대응이 전제조건이다. 무엇보다도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긴축 정책으로 전환해 당장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한다. 은행들은 부실 채권을 빨리 상각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일부 국유화 조치도 불가피하다.

베트남과 중국은 둘 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높은 투자와 수출 증가율에 의존해 고속 성장을 해온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두 경제의 명암(明暗)이 갈린 이유는 정책을 다루는 당국자의 사고력과 판단 때문이다. 중국은 시장 친화적이고 투명한 경제 정책을 꾸준히 추구한 반면, 베트남은 이에 역행(逆行)한 대가를 불행히 국민들이 치르고 있다.

 

이남우 메릴린치 아시아 중견기업 리서치 총괄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