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VIETNAM

샴페인에 취한 베트남

bthong 2008. 7. 4. 23:30
▲ 최유식 산업부 차장대우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에는 오토바이 대수가 이 도시 인구(人口)의 반이라는 속설이 있다. 비공식 인구가 1000만 명 가량 된다고 하니까 오토바이는 500만 대쯤 되는 셈이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거리에 오토바이 행렬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이런 셈법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거리를 오가는 오토바이가 그렇고 그런 싸구려 제품일 것이라는 생각도 사정 모르는 외국인의 선입견이었다. 300~500달러짜리 중국산은 소수이고 1대당 2000~3000달러씩 하는 일본산이 보통이었다. 대도시 샐러리맨 월급이 150~200달러 정도라고 하니 최소한 1년치 연봉 이상을 털어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다. 당연히 할부나 주변 친지의 돈을 꿔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호찌민 거리의 풍경은 상하이(上海)와 무척 대조적이었다. 중국 경제 개발을 상징하는 상하이 거리는 여전히 자전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자전거도 우리 돈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는 싸구려가 태반이다. 1인당 GDP가 베트남의 3배 가까이 되는 대국의 최대 도시치고는 옹색하다고 할 정도이다.

확실히 소비만 보면 베트남은 중국보다 통이 컸다. 지난 5년간 베트남의 소비증가율은 연 18.8~23.3%로 중국을 훨씬 앞질러가고 있었다.

사정은 국영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중국 국영기업과 달리 베트남 국영기업은 은행 돈 끌어다 부동산·주식 투자하기에 바빴다. 어지간한 국영기업치고 증권회사나 부동산 투자회사 거느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난 5년간 베트남에는 외국 자본이 몰려들었다. 중국에 나가있던 우리 중소기업도 싼 임금을 찾아 보따리를 싸들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WTO 가입, 제2 도이모이(개혁·개방) 등으로 투자 환경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제2의 중국'이 될 것이라는 찬사도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찬사는 올 들어 싸늘한 경고로 변하고 있다. 주요 투자국 중 하나인 일본의 대형 증권사가 외환위기를 우려하고 나섰고, 서유럽의 한 은행은 "미안하지만 베트남은 제2의 중국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처럼 반전한 것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해야 할 국민들은 미래의 소득을 끌어다 쓰기에 바쁘고, 제조업의 기반이 돼야 할 기업들은 버블 경제 속에 한몫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 지금의 베트남 상황이다.

지난해 베트남의 은행대출 증가율은 무려 54%에 달했다.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자 물가와 임금, 땅값이 치솟고 있다. 지난 5월 물가상승률은 25%나 됐다. 중국처럼 외자에 의존한 발전 전략을 택한 베트남에서 임금·땅값의 급상승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이전을 검토하던 중국 내 우리 기업인들이 혀를 내두르며 발길을 돌릴 정도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과 달리 몇 개 파벌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베트남 공산당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었다.

올해 주식시장이 70% 가까이 하락했지만, 베트남 경제가 당장 붕괴될 것으로 보는 현지 우리 기업인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수가 베트남이 '제2의 중국'으로 도약하느냐, 1억 인구의 거대 소비시장으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국제자본과 베트남의 밀월기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베트남에 주어진 시간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