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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구하기` 나설 때

bthong 2010. 7. 17. 09:30

 

 

20년 후 한국 경제는 여전히 활기를 보일 것인가. 하나의 중요한 지표로 추정한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가처럼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는 청년은 적은 반면, 만들어진 부를 재분배하는 직업을 선호하는 사람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고시 열풍이 보여주는 것처럼 공무원이 되겠다는 자들은 줄을 선 반면, 이공계 학생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그나마 이들 중 상당수는 의사가 되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장기 흥망성쇠를 연구한 역사가, 경제학자에 따르면 이런 나라는 장기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해 개인들이 위험을 극도로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2009년 유로바로미터 조사 자료를 보면 한국인들의 직업 선택에 있어 위험 회피성은 두드러진다. 유럽 32개국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중에서 창업보다 임금근로를 선호하는 주된 이유로서 직업의 안정성을 꼽은 비율이 한국에서는 61%에 달해 조사 대상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또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로 임금근로자가 당할 수 있는 해고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이와 같이 직업을 선택할 때 고용 안정성을 가장 중시한다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혁신적 창업활동은 위축되는 것이 당연하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고위험 사회로 변한 반면 개인들을 위해 그 위험을 완충해줄 수 있는 사회적 기제는 마련돼 있지 않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평생직장, 즉 고용의 안정성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대신해줬다. 또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가능성도 폭넓게 열려 있었다. 그 결과 일반 가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을 잘 교육하면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갑자기 사라지자 부부들은 출산을 기피하며, 고위험을 견디기 어려운 개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저출산율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위험 회피적 직업 선택과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바람직한 경제체제로의 연착륙에 실패했다. 외환위기 극복에 너무 급급한 나머지 한국 경제 체제를 어디로, 어떻게 이행시킬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종합적 고려가 부족했다. 평생고용에 기초한 외환위기 이전의 체제를 소득의 안정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결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 체제로 바꿔야 할지, 아니면 미국형 경제체제를 본받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작은 정부와 유연한 노동시장에 기초한 미국형 경제체제로 가야 한다면 고비용 사교육이 판치는 한국 현실에서 교육의 균등한 기회는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작은 정부 그러나 큰 자선`의 결합체인 미국형 체제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결핍된 우리가 어떻게 벤치마킹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한국형 경제체제 논쟁이 불붙어야 한다. 여와 야, 그리고 진보와 보수 그룹들이 그들의 이념과 정신에 기초를 둔 `한국 사회 구하기`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두고 치열한 논쟁과 현실성 검증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물론 이 합의 도출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더 미룬다면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이 지속되고 빵을 만드는 사람보다 빵을 나누는 데 골몰하는 자들이 더 많아져 한국의 국운은 현재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을지 모른다.

■ He is

△1962년생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영국 에섹스대 부교수 △한국경제학회 사무차장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