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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 오래 먹을수록 내 몸속 영양소는 고갈된다

bthong 2015. 7. 9. 00:23

[H story] 약의 이중성

평생 약 복용하는 만성질환자
약물 대사 시 영양소 빠져나가
진통제·피임약도 결핍 유발
부족한 영양소 찾아 보충해야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에 걸리면 거의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약을 장복(長服)하면 특정 영양소가 결핍돼 우리 몸에 크고 작은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충남대 의대 약리학교실 이충재 교수는 "약은 우리 몸에서 대사되면서 몸속 영양소를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거나, 합성되지 못하게 막는다"며 "대부분의 약물이 몸속 비타민·미네랄 같은 주요 영양소를 고갈시킨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약물로 인한 영양소 결핍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수지 코헨이라는 약사가 '드럭 머거(drug muggers·영양소를 빼앗는 강도 짓을 하는 약)'라는 개념을 만들고, 책을 발간해 학계에 화제를 몰고왔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이를 연구하고 알리기 위한 약사들의 학술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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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래픽=정인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몸속 영양소가 고갈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이뇨제(고혈압약) 장기 복용 환자의 98%가 비타민B1이 결핍돼있었고(캐나다 오타와병원, 2003), 스타틴(고지혈증약) 장기 복용 환자의 체내 코엔자임Q10양은 16~54% 감소됐으며(미국 예일대, 2007), 메트포르민(당뇨병약) 장기 복용 환자 30%의 체내 비타민B12양은 14~ 30% 감소됐다(미국 미시건대, 2014)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약으로 인해 체내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몸에 생각지 못한 이상 증상이나 질병이 생긴다. 이내과의원 이진호 원장은 "요통과 다리 경련의 원인이 고지혈증약, 천식 증상이 진통제, 부정맥이 변비약, 만성 피로가 피임약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며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의료인은 물론 환자 본인부터 약으로 생기는 영양소 결핍과, 그에 따른 이상 증상을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 고혈압약·당뇨병약이 처방된 건수는 2009년에 비해 2013년 각각 20%, 19% 증가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 65세 이상 노인이 3개월 이상 복용하고 있는 약의 평균 개수는 5.3개에 달한다(보건복지부).

 

 

고혈압약, 비타민B1 배출시켜… 부정맥·손발저림 유발 

 

약 장복 시 부족한 영양소와 증상

약 종류별로 몸에서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와 이에 따른 몸의 증상도 다르다. 만성질환약을 포함해 사람들이 많이 복용하는 약 7가지를 꼽은 뒤, 이를 장기 복용했을 때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와 잘 나타나는 몸의 이상신호를 알아봤다.


										약 장복 시 부족한 영양소와 증상
고혈압약

베타차단제→멜라토닌 부족→불면증

베타차단제는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베타’라는 이름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에피네프린이 베타수용체에 결합하면, 심장이 수축하는 힘을 강화해 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타차단제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합성을 방해한다. 따라서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면서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취침 전 0.5~1㎎ 이상의 멜라토닌을 섭취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음식으로는 귀리, 옥수수, 토마토, 바나나에 멜라토닌이 많다.

고혈압약

이뇨제→비타민B1 부족→부정맥

이뇨제는 소변량을 늘려 혈액량을 줄게해 혈압을 낮춘다. 그런데, 소변량이 늘면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B1이 몸 밖으로 많이 빠져나간다. 비타민B1은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체내에 부족해지면 특히 심장이 제대로 박동하지 않아 부정맥이 생길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이 느려져 몸 구석구석에 전달이 안돼 부종, 손발저림도 나타날 수 있다. 이때는 하루 1.2~1.5㎎ 이상의 비타민B1을 섭취하는 게 좋다. 비타민B1은 돼지고기, 시금치, 양배추, 해바라기씨에 많다.

당뇨병약

메트포르민→비타민B12 부족→무력감

메트포르민은 장(腸) 내부 표면에 기능 이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타민B12는 장 내부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서 흡수돼, 이곳에 이상이 생기면 체내에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비타민B12는 신경을 둘러싸는 막을 구성하는 물질을 만든다. 그런데 비타민B12가 부족해 감각신경에 손상이 생기면 손발 따끔거림이, 운동신경에 손상이 생기면 팔다리 무력감이 생긴다. 이때는 하루 2.4㎍(마이크로그램) 이상의 비타민B12를 섭취하는 게 좋다. 비타민B12는 고기, 생선, 우유에 많다.

고지혈증약

스타틴→코엔자임Q10 부족→호흡곤란

스타틴은 간에서 지질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효소의 활동을 억제,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그런데, 코엔자임Q10 역시 지질 합성 과정 중에 생겨, 이 과정이 없어지면 체내 코엔자임Q10양이 줄어든다. 코엔자임Q10은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것을 돕는다. 코엔자임Q10이 부족해져 심장이나 폐의 세포 기능이 떨어지면 호흡곤란이, 근육이나 신경의 세포 기능이 떨어지면 근육 경련이나 통증이 생긴다. 이때는 코엔자임Q10을 50㎎씩 하루 1~2번 이상 섭취하면 된다. 코엔자임Q10은 소고기, 닭고기, 고등어, 시금치에 많다.

위염약

위산억제제(PPI)→영양소 대부분 부족

위산억제제는 위벽에서 산(酸)을 분비하는 펌프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이다. 대부분의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 들어오고, 그 음식은 위산에 의해 분해돼야 영양소를 우리 몸에 흡수시킬 수 있다. 그런데 위산억제제로 위산이 줄어들면 대부분의 영양소가 몸에 흡수가 안 된다. 이때는 여러 종류의 비타민, 미네랄이 함께 든 종합영양제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위산이 억제되면 음식으로 들어오는 유해균이 파괴되지 않고 장에 도달하기 쉬워 유산균 제품을 따로 챙겨먹는 것도 좋다.

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글루타치온 부족→천식

아세트아미노펜이 몸속에 많아지면, 이를 분해하는 데 글루타치온이라는 물질이 쓰인다.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을 장기 복용하면 글루타치온이 부족해지며, 글루타치온이 부족하면 몸에 활성산소가 잘 생긴다. 이때 호흡이 잘 안 되는 천식 증상이 잘 나타나는데, 늘어난 활성산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글루타치온의 원료가 되는 아미노산(NAC)을 하루 800㎎ 이상 섭취하는 게 좋다. 과일, 생선, 고기를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변비약

비사코딜→칼륨 부족→부정맥

변비약은 장점막에서 점액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 점액이 칼슘과 칼륨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칼슘은 하루 900㎎ 이상, 칼륨은 하루 3500㎎ 이상 섭취하는 게 좋다.

피임약

에스트로겐→비타민B2 부족→염증

피임약을 오래 복용하면 체내 비타민B2와 비타민B6가 부족해진다. 이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아직 그 구체적인 기전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비타민B2가 부족하면 입술이 붓거나 혀에 염증이 잘 생기고, 비타민B6가 부족하면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이 잘 생긴다. 비타민B2와 비타민B6 모두 하루에 1.5㎎ 이상 섭취하면 된다.

도움말=남창원 드럭머거 아카데미 학술위원장(약사), 오성곤 성균관대 약대 겸임 교수(약학박사), 이충재 충남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

비만약·항우울제 동시 복용 주의

체내 세로토닌 작용 급증… 조울증·혈압 상승 등 부작용 위헙

 

식욕을 억제해 살을 빼게 하는 약인 '벨빅(일동제약)'이 인기다. 벨빅은 지난 2010년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식욕억제제 '리덕틸' 이후,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장기 복용(3개월 이상)이 가능한 식욕억제제다. 하지만 벨빅은 항우울제와 함께 복용하면 불안감, 초조함, 근육 경직이 나타나거나 최악의 경우 신부전이 생길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벨빅은 뇌의 포만중추에 작용, 음식을 적게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떨어뜨린다. 체내에서 세로토닌2C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에 세로토닌이 결합했을 때 포만감이 느껴지는데, 벨빅은 세로토닌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포만감이 더 쉽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런데, 가장 흔히 쓰이는 항우울제(SSRI)는 세로토닌이 몸에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 체내 세로토닌 양을 늘린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벨빅과 항우울제를 동시에 복용하면 체내 세로토닌 작용량이 갑자기 늘어 불안함, 초조함이 생기고, 혈압과 체온이 오르는 등의 이상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세로토닌은 감정에 관여하기 때문에 조울증이 생길 수도 있으며, 수천 건 중 한두 건의 낮은 확률이지만, 근육 세포가 망가지며 급성 신부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근육 세포가 망가지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다한 세로토닌에 의해 갑자기 상승하는 혈압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부작용 우려 없이 항우울제와 벨빅을 동시에 복용하려면, 세로토닌이 아닌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된다. 벨빅과 항우울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불안·초조함·근육 경직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증상이 생기면 바로 약 복용을 중단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