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 비즈네스

저성장 시대… R&D센터 없애고 C&D 하라

bthong 2016. 2. 28. 22:35

저성장 시대… R&D센터 없애고 C&D 하라

“서구의 관습적인 모델은 ‘더 좋게, 더 비싸게, 더 많이’이지만, 이것은 세 가지 이유로 점점 죽어가고 있다”
나비 라드주 교수가 한 이 말에서 세 가지는 서구의 구매력 감소, 전 세계적인 자원 고갈
그리고 서구의 빈부 격차로 현존하는 제품들과 고객들의 필요(needs) 불일치다.

나비 라드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검소한 혁신'

“대규모 연구·개발(R&D)센터부터 없애도록 하세요.”

나비 라드주(Radjou·46) 영국 케임브리지대 저지경영대학원 교수 겸 인도글로벌비즈니스센터(CIGB) 최고책임자는 “기업들에게 어떤 혁신이 필요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귀를 의심할 만한 대답을 내놨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수십년을 달려온 게 우리 경제인데, R&D센터를 없애라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한 번 더 “저(低)성장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검소한 혁신(Frugal Innovation)’”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구(舊)패러다임인 대규모 R&D센터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엉뚱한 주장인 듯하지만 카를로스 곤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 폴 폴만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 등 많은 글로벌 경영인이 그의 주장에 공감하며 경영 자문을 구한다. 곤 회장은 “도발적 주장이지만 반드시 실천해야 할 전략적 경영 방식”이라고 평가한다. 런던에서 만난 라드주 교수는 도발적인 주장과 달리 작은 체구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 반박하는 기자에게 목소리 톤조차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쓰지 않는 기술 개발하느라 자원 낭비


―정말 기업에 대규모 R&D센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합니다. 반세기 넘게 선진국에 퍼져 있는 혁신 기법은 막대한 R&D 예산과 첨단 시설입니다. 연구원들은 이곳에서 획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걸려 만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온 제품들이 모두 제 몸값을 할까요? 컨설팅 회사 스트레티지앤(Strategy&)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1000대 기업이 투자한 R&D 비용은 총 6470억달러인데, 하지만 이렇게 나온 제품의 80%는 시판도 못 하고 폐기됐습니다. R&D센터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실패 과정들을 통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기술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좀 더 솔직해지죠. 기업들이 대부분의 예산을 미래를 바꿀 혁신 기술 개발에 쏟아붓는다면 장려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다른 기업들이 가진 기술과 비슷한 기술을 만들기 위해 돈을 투자합니다. 화이자 등 대형 제약 회사들이 R&D에 쓴 예산은 1995년 150억달러에서 2009년 450억달러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매년 출시하는 신약의 수는 1997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44% 감소했습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도 2010~2013년 18% 증가했지만, 투자 수익률은 70% 감소했습니다(올리버 와이만 통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듯이 혁신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정보 통신(IT) 분야에서는 지금도 많은 연구를 통해 신기술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나요? (기자의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당신은 스마트폰 기능 중 몇 개나 사용하고 있나요?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MS 워드 같은 프로그램에서조차 내장된 기능의 10~15%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개발 비용은 그대로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되지요. 쓰지 않는 제품을 억지로 사고는 비용을 내는 것입니다.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쓰지 않는 기술을 개발하느라 돈과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규모 R&D센터 없이 IT 제품을 만드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중국 샤오미(小米)는 대규모 R&D센터 없이 고객들과의 소통을 통해 필요한 부분만 개선해 만듭니다. 그리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주력하지요.”

4만원짜리 인큐베이터 효율 배워야

―샤오미는 애플과 삼성의 카피캣(copycat·복제품)이니깐 가능한 것 아닐까요.

“10년 전이나 그랬지요. 지금은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적시에 고객이 필요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는 혁신 기업입니다. 그렇기에 선진국 시장에서도 샤오미가 돌풍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제가 ‘검소한 혁신’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도 될까요?(그는 아기 포대기 같이 생긴 것을 가방에서 꺼냈다.)

25달러짜리 인큐베이터

기업 간 공유 경제 시대로
2만달러 고가의 인큐베이터를
25달러로… 개도국 미숙아 살려
고급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면
기업끼리 협업하면 돼

이건 미국 헬스케어 기업 임브레이스가 만든 25달러(약 3만원)짜리 인큐베이터입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2000만명의 미숙아가 태어나는데, 이 중 400만명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합니다. 지역 병원이 2만달러(약 2500만원)에 달하는 인큐베이터 비용을 감당할 수 없거나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품은 신흥 시장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렸습니다. 만들기도 쉬워요. 왁스 같은 것으로 천을 방수 처리하고, 그 안에 물을 끓여 넣으면 됩니다. 잘 팔리지 않는 2만달러짜리를 만드는 쪽과 많이 팔리는 25달러짜리를 만드는 쪽 중 어느 쪽이 효율이 더 높을까요.”

―하지만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을 위해 고급 기술이 담긴 인큐베이터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기술들이 미래에 다른 가치로 사용될 수도 있고요. 그걸 위해서는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R&D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당신은 그런 기술 개발을 한 회사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사고방식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릭(GE), AT&T 같은 대기업들이 산업화를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에요. 당시 기업들은 이렇게 탄생한 물건을 비교적 수동적인 고객에게 강매할 수 있었습니다.

GE의 경영 전략 ‘6시그마(six sigma·시그마라는 통계 척도를 사용해 품질 수준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경영 전략)’가 대표적입니다. 6시그마는 단순 제품을 대량생산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긍정적 편차’까지 없애버립니다.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3M 등 많은 기업이 6시그마를 철회하는 것이 그 이유에서입니다. 대규모 R&D 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는 대부분이 ‘하향식’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상부에서 ‘언제까지 이런 걸 개발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위해 연구원들은 연구에 돌입하지요. 제가 만난 한 대기업의 연구원은 근무 중 자신이 발명한 것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60번의 사인을 받았다고 해요. 이 모델이 21세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성장기에는 어느 정도 자원을 낭비해가며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의 제약, 자원의 결핍으로 과거처럼 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도 진보는 필요합니다. 누구나 다 조그만 R&D한다면 오히려 인류에 큰 편익을 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기업과 대학, 기업과 기업들이 각자가 필요한 연구들을 협업하는 체제로 가야 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기술이 다른 연구소에서는 이미 개발돼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연구들을 서로 공유하고 각자 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체제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연구실이 오픈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이건 새로운 형태의 공유 경제입니다. 에어비앤비나 우버가 기업과 소비자 간(B2C)의 공유 경제라면, 이 개념은 기업 간(B2B) 공유 경제입니다. 이보다 더 발전하면 모든 사람이 연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의 의견마저 R&D의 일부분으로 포함시키는 것이지요.”

‘더 좋게, 더 비싸게, 더 많이’ 소비 모델 죽어가고 있어… 
싸고 질 좋은 제품 찾는 新중산층 잡아야

글로벌 기업들이 라드주 교수의 이론에 주목하는 것은 금융 위기 여파로 선진국 중산층이 무너졌고, 세계경제의 저(低)성장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유럽·일본 등에선 중산층의 수입이 크게 늘지 않았고, 이는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인 중 44%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2008년보다 9% 하락한 수치다. 반면,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5%에서 40%로 크게 뛰었다. 사정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도 전체의 58%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1997년 65%보다 줄어든 수치다.

나비 라드주 교수는 “서구의 관습적인 모델은 ‘더 좋게, 더 비싸게, 더 많이’이지만, 이것은 세 가지 이유로 점점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 가지는 서구의 구매력 감소, 전 세계적인 자원 고갈, 서구의 빈부 격차로 현존하는 제품들과 고객들의 필요(needs) 불일치라는 것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소비자에게 집중해야


―선진국 중산층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구매층이 아닐까요.

“그들의 구매력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그들의 취향 변화를 못 읽어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들은 계속된 불황으로 프리미엄 제품에서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검소한 제품과 서비스는 최근 선진국 시장에서 주류로 급부상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구 기업들은 저소득층은 무시하고 고소득층과 중산층에 집중해왔습니다. 과거 중산층 이상은 좀 비싸도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본인들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구매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이 현상은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많은 노령자를 부양해야 하는 젊은층의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젊은층의 신차 구매 비율이 1985년 38%에서 최근 27%로 줄었습니다.”

―중산층의 취향 변화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소비자는 변했다
전 세계 중산층 3분의 2가
2030년엔 아시아에 살게 될 것
소비력 높은 이들 취향은 ‘검소’

“그동안 시장에서 소외됐던 소비자에게 집중하세요. 프랑스의 국제적인 대형마트 체인인 오샹그룹의 비아니 뮬리에즈 CEO는 ‘선진국에서도 많은 신흥 시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회사(FDIC)는 미국인 중 6800만명 이상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내의 그 많은 금융기관이 자국 내 저소득층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금융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연간 수입도 1조달러에 이릅니다. 이런 현상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기업이 피앤지(P&G)입니다. 피앤지는 수십년간 미국의 중산층을 겨냥한 가정용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후 재정난에 처한 미국 소비자들의 욕구에 더 부응하기 위해 기존 마케팅 연구 기법을 바꿨습니다. 그 결과물로 2010년 미국에서 사라졌던 ‘식기세척 비누’를 38년 만에 다시 선보였습니다.”

―선진국의 중산층이 줄어드는 만큼, 증가하는 신흥국 중산층의 소비력이 대안이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중산층의 3분의 2는 미국과 유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30년이 되면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게 됩니다. 현재 3억5000만명인 아프리카의 중산층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나이지리아의 소비시장만 해도 2030년 1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신흥 시장은 역설적인 상황들로 가득해서 선진국의 노련한 R&D, 마케팅 매니저마저도 혼란에 빠집니다.

이들은 서양의 중산층보다 훨씬 더 적게 벌면서도, 제품에 대한 기대치는 높습니다. 독일 지멘스가 2000년대 초반 신흥 시장에 진출할 때 겪은 문제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산업용 로봇, 의료기기 등을 만드는 지멘스는 선진국 불황으로 신흥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들이 만든 고가의 장비들은 인도와 중국에서 살 만한 사람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현지의 식수, 매연, 미세 먼지, 사용 패턴 등으로 기계들이 고장이 많이 나 기업 이미지조차 나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멘스는 중앙 통제식으로 운영되던 R&D 센터를 지역별로 나누고, 신흥 시장 연구원들은 현지 사용처를 방문해 불만 사항 등을 개선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일반인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低價) CT 스캐너 등입니다. 이 제품들은 현재 선진국에서도 많이 팔립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비를 30%, 방사선량을 60%나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멘스는 이때의 성공으로 고가의 M1, M2와 구별되는 저가의 M3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 중산층을 소외된 소비층이라고 보긴 힘들지 않나요.

“중국과 인도의 시골 마을에 가보셨나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이런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소비력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프리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은행 지점이 많지 않은 케냐에서 은행계좌가 필요없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 M-페사가 등장한 것을 알고 있나요? 최근엔 한 단계 발전해 전기가 없는 지역에 태양열 발전기를 대여해주는 M-코파 시스템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들이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일까요. 미국입니다. 캘리포니아의 가뭄 문제를 M-코파 시스템을 적용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IBM 역시 케냐에서 고가의 교통 탐지기가 아닌 저화소 웹캠(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데 쓰는 저화질 디지털 카메라)으로 교통 상황을 분석하는 ‘메가픽’ 방법을 실험 중입니다. 검소한 혁신이란, 어찌보면 로 테크(low tech·낮은 수준의 기술)와 하이 테크(high tech·높은 수준의 기술)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이런 혁신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도구가 많아지고 통합됨에 따라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고, 모르는 사람들과 협업할 환경이 주어진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테슬라 기술 공개는 ‘현명한 이기심’


―저가의 브랜드를 만들다가 회사가 힘들게 쌓아온 첨단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연결·개발(C&D·Connect and Development)이 필요합니다. 제3자와 협업하고, 별도 브랜드를 만들어 고가 브랜드와는 차별화하는 것이지요. 르노 닛산이 저가차를 만들기 위해 루마니아 다르샤를 인수해 별도 브랜드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지요. 당시 차량 개발을 위해 디자인에 민감한 프랑스 디자이너들과 비용에 민감한 루마니아 엔지니어들이 협업했고, 말 그대로 싸고 좋은 차를 만들었습니다. 부품은 50% 덜 쓰고, 가격은 5000달러 이하로 맞췄지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블룸버그

어떤 기업이 살아남나
제3자와 협업하는 C&D 필수
디자인 강한 佛 디자이너와
루마니아 엔지니어 협업으로
싸고 좋은 車 만든 것처럼

저가형 제품 만든 후엔
소비자와 소통하며 제품 개선하고
필요한 사람을 공동 창조자로 참여

―제3자와 협업하다가 기술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모터스는 2014년 자사의 모든 핵심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일론 머스크 CEO는 ‘전 세계에 자동차가 20억대 존재하고, 매년 새로운 차량이 1억대 추가되는데, 테슬라 혼자서는 탄소 위기를 제때 막을 수 있을 만큼 빨리 전기차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었지요. 저는 머스크의 결정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현명한 이기심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기업들의 R&D 수준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아요. 속도의 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이지요. 어찌 보면 이미 구글과 애플 등은 자신들의 플랫폼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들이 상상도 못 한 엄청난 기술을 개발하면 큰 특허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 기술을 판매하세요. 꼭꼭 숨겨둬서 뭐합니까. 해당 회사에서 그 특허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IBM은 2013년부터 자사의 벤처 자본 회사를 통해 특허 사용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 수익만 10억달러입니다. 최근 모바일 회사들은 4G, 5G 등 더 빠른 통신망을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아요. 이 틈을 겨냥한 것이 미국 스타트업 비바운드입니다. 이들은 가장 저차원이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기술인 문자메시지(SMS) 전송 기술을 활용해 인터넷에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비슷한 경쟁은 10년 전에도 있었어요. 프랑스의 테제베(TGV), 독일의 이체에(ICE), 일본의 신칸센(新幹線)이 더 빨리 달리는 열차 개발에 목을 맨 것이지요. 결국 고객들은 기차가 더 빨라진다고 돈을 더 내지 않았고, 고객들은 비싸진 열차 대신 저가 항공사를 선택했지요.”

벤저민 플랭클린 /조선일보DB

―교수님 말씀대로 R&D 센터를 없앴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조직과 제품, 생각을 가능한 한 쉽고 단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제품을 제때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먼저 제품을 개발할 때 간단하지만 질 좋은 저가형 제품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 제품을 가지고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소통하며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세요. 이것이 관계·반복(E&I·Engage and Iterate)입니다.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먼저 갖고 있는 제3자를 찾으세요. 경쟁사도 좋고, 스타트업(초기 벤처)도 괜찮습니다. 이들을 공동 창조자로 참여시키세요. 이것이 C&D입니다. 

셋째로 리더들은 구성원들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창조하세요. 대기업의 엄격하고 딱딱한 환경은 직원들로부터 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긴장을 풀고 편안해질 환경을 만드세요. 사실 ‘검소한 혁신’은 선진 경제의 뿌리로 연결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플랭클린은 ‘부자가 되는 방법은 단순하다. 오직 근면과 검소라는 두 단어에 의존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소한 혁신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