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토지보상비 100조원과 유동성

bthong 2007. 6. 23. 17:24
노무현 대통령 발언이 선거법 위반이냐, 모호한 선거법 자체가 위헌이냐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노 대통령 말솜씨는 역시 절묘한 데가 있다.

 

최고권력자 권위에 거침없는 말투가 빚어내는 뉘앙스도 호소력이 있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된 텍스트는 뚜렷한 피아구분 속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작년 가을 부동산 광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이다.

참여정부 들어 급격히 늘기 시작한 신도시 토지보상비가 부동산 대란 주범으로 막 거론되던 참이었다.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토지보상비가 주범으로 지목된다면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지역균형발전 사업이 역으로 죄인으로 몰릴 판이었다.

노 대통령은 기선을 제압당하기보다 제압하는 스타일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무슨 근거였는지는 몰라도 토지보상비 가운데 수도권 주택시장으로 다시 흘러든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한마디로 주택담보대출 유죄, 토지보상비 무죄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탁월한 호소력 덕분인지 지금도 토지보상비 원죄론보다는 주택대출 책임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면 정말 '대출 유죄' '보상비 무죄'일까. 주택담보대출 급증은 부동산 대란을 초래한 원인일까 아니면 결과일까. 지난주 결정된 경기 화성시 동동탄신도시에 6조원 규모 토지보상비가 풀릴 것이라는 소식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궁금증이다.

참여정부는 토지보상비에 관한 한 역대 정부 최고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2003년 참여정부 들어 집행됐거나 집행이 결정된 토지보상비는 드디어 동탄신도시를 계기로 총 1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3년 10조원이던 토지보상비는 2004년과 2005년 16조2000억원과 17조3000억원으로 껑충 뛰더니 작년엔 무려 23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올해 예상지급액 22조2000억원과 동탄신도시 몫을 합하면 95조3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토지보상비가 풀리고 나면 시중 유동성이 급팽창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좀 복잡한 얘기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토지보상비라고 해서 유동성 효과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지보상비 출처가 정부 예금이나 현금, 건설공기업(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예금 혹은 채권 발행 등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정부가 세금으로 조성한 예금이나 현금이 보상비로 쓰였다면 이는 본원통화 공급만큼 통화량 증발효과가 크다.

당초 통화량에 잡히지 않던 정부 보유예금이 나갔기 때문이다.

만약 건설공기업이 보유예금에서 보상비를 지급했다면 유동성 증대 효과는 크지 않다.

예금주만 바뀐 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권 매각이나 차입을 통해 보상비를 조달했다면 신용창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유동성 증대 효과가 제법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토지보상비 100조원이 창출해낸 유동성 팽창은 모두 얼마나 될까. 정확한 추계는 불가능하다.

다만 작년에 집행한 토지보상비 24조원을 한국은행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통화량 증가를 유발한 채권 발행 혹은 차입 조달분이 55%인 13조원이었다.

이를 근거로 하면 보상비 100조원 중 일차적인 통화량 증가분은 55조원가량. 여기에 신용창조 과정을 추가하면 최종적인 유동성 팽창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데 본원통화에 대한 통화승수가 13 정도임을 감안할 때 최종 팽창 규모는 어림잡아 여기에 5~9 정도를 곱한 300조~500조원가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시중에 초과 유동성이 두껍게 낀 데에는 부의 지방이전 추진과정에서 과도하게 풀려나간 토지보상비도 한몫했다.

끝으로 한 가지, 부동산 대란과 요즘 증시 폭등 사이에 유사점도 눈에 띈다.

한은 총재가 주가 상승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경고카드를 빼든 것도 그렇지만 수급에 큰 격차가 있는 것도 부동산 폭등 때와 마찬가지다.

재건축 불허로 강남권 주택 공급물량이 턱없이 부족했듯이 요즘 증시는 참여정부 들어 나타난 기업투자 부진과 민영화 후퇴로 내놓고 싶어도 내놓을 주식 물량이 없다.

[서정희 논설위원]

2007.06.10 17:44:0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