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박 2일이 필요한 올레길 (추자도 18-1코스) 1부

bthong 2012. 10. 26. 20:17

 

여행을 하는 추상적인 목적은, 그 여정의 주인공이 되기 위함이다.

주지 하다 시피 주인과 주인공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소유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게 주인이고,

주인공은 무소유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에게는 몇 가지의 전제 조건이 따른다.

한 번 쯤 가장 비참한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지거나

가까운 동료에게 치명적인 배반을 당하거나

혹은 감내하기 어려운 엄청난 고난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러다 마침내는 아름다운 피날레로 나타나는게 주인공이라는 자리다.

 

추자도 올레길...

엄청 어려운 시작이었다.

폭풍주의보 속에 던져진 배가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인지,

그 속에서 나부끼는 인간들의 존재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70분의 시간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인지,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위장속 내용물을 시각으로 후각으로 확인한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이 여행의 주인공인 탓으로

응당 감내해야 될 일이긴 하지만,

두번은 싫다, 절대로!

 

 

 

섬에서 섬으로 가는 올레길, 그 마지막 섬은...

올레 18-1코스, 추자도!

행정상으로는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

상추자도와 연륙교로 이어져 사실상 하나의 섬이 된 하추자도는 더불어 하나의 의미이다.

 

추자군도는...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이 곳 섬사람들은 실제 섬이 100여개는 족히 넘는다고 입을 모은다.

총면적 7.05평방킬로미터에 3,000여명의 순박한 민초들이

대대로 정감넘치는 살을 맞대고 세월을 낚고 있는 곳이다.

 

가래나무 열매<추자:楸子)가 바다에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명명된 추자도는

제주에서 45km, 목포에서 9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지난 해 울릉도 뱃길도, 홍도 뱃길에서도 멀미를 몰랐는데,

그보다 3분의 1 거리도 되지 않는 추자도 뱃길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멀미를 앓았다.

 

 

추자 올레 18-1코스는,

추자항 선착장 바로 앞에서 시작하여,

최영장군 사당-봉글레산-나바론 절벽-등대를 경유하여 상추자도를 마무리하고,

하추자도를 경유하는 목리마을-신양항-신대산 전망대-예초리 포구-돈대산-담수장-추자교를

다시 거쳐 추자항으로 회귀하는 장장 산길 17.7km의

꽤나 험한,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대단히 매력적인 코스이다.

추자도의 절경과 올레길을 충분히 완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박 2일 이상의 체류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정을 이틀분으로 나누어

온전한 추자도를 보기로 결정!

어차피 배편 연결상 당일치기로 끝내기는 불가능하기에.

 

 

이번 여정은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한다.

그 첫 번 째 맞이하는 봉글레산에 위치한 최영장군 사당.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진한 최영장군이 풍랑을 피해 이 곳 추자도에 체류하면서

추자 주민들에게 고기잡이와 생활의 지혜를 가르쳐준 데 대한

주민들의 감사의 표시로 지금까지 봄 가을에 제를 올린다고.

 

 

 

추자 올레의 난이도 등급은 "최상"으로 기록 되어 있다.

험준한(?) 지리산 둘레길도 날렵하게 다녔는데,

올레 초입부터 많이 힘들다.

풍랑에 시달리고, 멀미로 텅 비어버린 허기에 이르기까지,

난이도 최상을 만나는 몸의 컨디션은 "최하"!

초반부터 이러면 남은 길은 어쩌라고~!

에고, 힘들어~!

 

 

하지만 해풍에 섞여오는 솔잎의 향이 너무 좋다.

발 아래에서 바스락 거리며 소곤대는 솔가리들의 소리도 좋다.

흙길위에 미리 깔아둔 솔잎들의 느낌도 좋다.

 

 

여기도 명색이 산이라는 듯,

약간의 오르막으로 신입 올레꾼을 훈계하고 나더니,

이내 이어지는 오솔길에는 온통 계절 꽃을 깔았다.

동백이, 유채꽃이, 현란한 색의 잔치를 열더니...

 

 

보리수는 벌써 열매까지 달고 나와서 환영을 한다.

언제 꽃 피워서 언제 저렇듯 결실까지 봤을까,

참으로 부지런도 하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힘이 들어도 올라가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 힘듦이 있었기에 바라볼 수 있는 광경...

 

 

우리나라의 적석(積石)문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의 원형질 속에는 돌을 쌓아야먄 직성이 풀리는 그 어떤 인자라도 있는 듯.

하긴 돌을 쌓아 소망을 기원하는 풍습은 세계가 공통이다.

 

 

추자항을 내려다 보며 "당분간" 하산,

걷는 여행을 하다보면 내리막길이 반갑지 않을 때가 많다.

길은 반드시 내려 간 것만큼 혹은 그 이상 다시 올라가야 했기에!

 

 

올레 표시는 거대한 화살처럼 마을로 날아간다.

추자 올레는 다른 올레길처럼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거의 대부분의 길이 외길이고

갈랫길이 나오더라도 빠짐없이 입간판으로

식별을 용이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추자도의 마을 돌담길은 제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구멍 숭숭 뚫린 돌담도 여기서는 볼 수 없고,

내부가 죄다 들여다 보이는 야트막한 제주의 담 대신

여기는 아예 작심을 하고 차단을 위한 담들이다.

 

 

마을 아낙들의 한가로운 소일.

다듬는 품새로 보아 상업용으로 이용할 것은 아닌듯,

아마 오늘 저녁 푸짐한 파전 파티라도 해서

마을 어르신들 안주감을 만들려는 의도는 아닐까.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그래, 오늘 저녁에는 무조건 막걸리다!

 

추자도의 효자, 밀양 박씨의 효자비도 잠깐 둘러보고,

 

 

집집마다 생수가 가득이다.

추자도에는 약국에도, 식당에도, 마트에도 온통 생수 천지다.

여기에서는 생수 가격도 육지와는 차별화 되어 있다.

지자체의 섬주민을 위한 시혜성 보조가 조금 있어서라고.

음용하고난 생수통은 사방용(沙防用) 축대로 재활용하는 지혜.

 

 

예상대로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또 힘들다!

이래서 내리막은 별로다.

 

 

웬 국적없는 수입산 지명?

요즘 "잘 키운 용병 한 명, 열 토종 안부럽다" 고 스포츠계에서는 용병이 대세라던데,

여기도 흥행몰이를 위해 용병을 수입했나?

역사성도 연고도 없이 한국의 외딴 섬에서 나바론이 고생이 많다.

 

 

어떻게 재래종 순 국산 지형이 물건너온 이름을 얻었는지

일부러 우회를 해서라도 확인 해야 할 터!

 

 

과연~!

절경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독일군 포진지는 없다.

그레고리 펙도, 안소니 퀸도, 영화속의 옛사람들은 아무도 안보이고...

그렇다면 우리말 이름을 달아도 감흥은 여전할텐데...

 

 

 

등대 전망대...

추자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인지 등대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드물게도 내부에 직원들이 상근하는 사무실도 있고,

행정구역상 제주도의 권역에서 한반도의 다도해와

한라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등대섬 조망대에서 내려다 본 추자항,

성냥갑과 꼬막을 엎어 놓은 듯한 마을의 모습들이 아늑하다.

저렇게 거울 같이 평화로운 바다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내 속을 왕창 뒤집었다고?

전혀 그런 일 없었다는 듯,

바다는 닥치고 능청을 뜬다.

 

 

그리고 고개를 우측으로 살짝만 돌리면...

떨어지면 안된다는 듯 추자교로 끈질기게 연결된 하추자도.

가야할 그 길이 아득하다.

 

 

 

상추자도를 마무리하는 깃점인 추자교,

겨우 십릿길을 왔을 뿐이다.

에고~! 아직 삼십리도 더 남았다.

 

 

추자교는,

1970년대 초에 완공되었으나,

20여 년이 지난 1990년대에 교량의 노후화와

골재를 실은 과적 차량으로 인해 붕괴되고(사진 좌측의 붕괴 흔적)

지금의 다리(사진 우측)는 1995년 재 신축되었다고...

 

 

추자교를 한가롭게 건너는데,

어디선가 숨비질 소리...

아니나 다를까, 해녀들이다. 군데 군데 태왁이 떠 있고 태왁의 수 만큼 숨비소리가 가득하다.

추자도에는 아직도 해녀들이 많다.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소리이다.

 

 

길은 추자교 상판에서 아주 잠시 고마운 여유를 베풀더니

다시 산길이다.

도저히 섬의 풍광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산악길,

하지만 그 길은 부드럽고 주변은 부단히 향기롭다.

 

 

묵리 고갯길,

제주 올레가 새로이 발굴해낸 길이다.

전혀 바다를 느낄 수 없는 고요한 길,

고즈녁한 전형적인 산속의 길, 그야말로 침묵으로 가는 길이다.

 

 

묵리...

추자에서 가장 해가 늦게 뜨고 가장 일찍 지는 곳,

감히 섬에서 바다에 등을 돌리고 두메산골을 지향한 곳,

그래도 거센 해풍만큼은 감당이 안되어

모든 지붕들은 낮은 포복으로 자세들을 낮추고 있다.

 

 

전형적인 남도의 마을 풍경이다.

추자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에 속하지만

생활 습속이나 일상의 언어들까지 전라남도의 그것에 가깝다.

대부분의 생필품도 전라남도에 의존 하고 있고.

 

 

섬에서는 귀하디 귀한 우물이다.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여기 묵리에는 올레 패스포트에 통과 인증 도장을 찍는

이른바 스탬핑 포인트가 있다.

 

 

 

지금 까지는 차도를 교묘하게 피해

푹신하고 아늑한 흙길 풀길을 즈려 밟고 왔는데,

그래서 바다의 갯내음 보다는 숲의 향기와 봄꽃들의 향을 안고 왔는데

 

 

추자교 위를 제외하고는 처음 만나는 차도위의 올레길,

잠시 차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불편한 동거를 하는 길...

그래도 길은 여전히 향기롭다.

 

 

그나마 그런 길도 잠시동안,

다시 길은 억새들이 몸으로 만든 푹신한 양탄자 길로 안내한다.

묵은 억새가 조만간 흙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갈대가 벌판을 덮으면 여기도 장관의 경치를 자랑할 듯.

 

 

지쳐가는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하는 길,

묵은 억새 사이로 쉴새 없이 새순이 솟고 있다.

내 발걸음 처럼 늦게 가지만 그들도 부지런히 세월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산 길,

올레를 위해 인위적으로 길을 낸 흔적이 역력하다.

군데군데 잘려 나간 나무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몇 걸음 더 둘러 가도 나무들을 보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산새들이 합창을 한다.

다리는 이미 체중을 지탱하기에 무리라고 곡소리를 내고.

 

 

때마침 나타난 피아노를 닮은 의자,

여기까지 저 의자를 짊어지고 왔을 그 분들의 노고를 위해서도

그 분들이 원하는 대로 "10분 간의 휴식!"

지구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온통 노랑이다.

유채꽃이다.

산에도. 들에도. 바람벽에도. 그리고 길 빛깔까지 노랑이 묻었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노랑으로 물들었다.

노랑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노랑은 올레꾼의 기운조차 북돋운다.

 

 

 

추자도의 또 다른 항구를 품고 있는 신양포구.

하추자도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곳.

 

 

신양항의 마을 이면 도로.

여기 돌담도 제주의 돌담과는 확연히 다르다.

집집마다 남새밭에는

파와 씨앗채취용 배추들, 그리고 땅콩이 심어져 있다.

 

 

추자와 제주를 연결하는 배편은 하루 두 번 왕복한다.

그 중에서 제주에서 오후에 출항해서 추자에 입도하고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제주로 가는 배는 여기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입출항을 한다.

제주항에서 오전에 추자로 입도하고 그 날 오후

다시 제주항으로 가는 배는 상추자도의 추자항에서 입출항하고.

 

 

신양항을 뒤로하고,

길은 다시 산허리를 감는다.

여전히 길섶의 생명들은 계절의 세대교체에 여념이 없고.

내 발바닥에서는 굳은 살 눌어 붙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다리는 고달프지만,

길 만큼은 끊임 없이 예쁘다.

지겨울 때도 되었건먼 길섶은 아직도 노랑이고.

 

 

저물어가는 추자의 맹렬한 낙조에,

신록이 불이 붙었다.

한 뿌리에서 났지만 쓰러진 동료를 헤집고 타오르는 연초록들.

이 계절아니면 볼 수 없는 봄의 함성이다.

 

 

황경헌의 묘...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된 황사영의 아들 황경헌,

황사영의 아내이자 황경헌의 어머니인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용의 조카이다.

남편의 역모로 인해 유배를 가던 정난주가 아들 경헌을 살리기 위해 여기 추자에 숨겨서

이곳 어부였던 오씨 손에서 몰래 자라게 되는데,

부근에는 그의 후손들이 아직 살고 있다고.

천주교구에서는 제주 올레 11코스에 있는 정난주 묘를 포함하여

이곳 황경헌의 묘역을 조만간 성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신대산 아래 작은 몽돌 해변,

누가

굳이 이 먼 섬에까지 와서 사랑을 고백했을까,

몽돌로 만든 사랑이라서 그 사랑은 저 돌이 파도에 씻겨

모래가 될 때 까지 영원할 듯...

좋겠다~!

 

 

신대산 해안길.

해가 지고 있다.

발바닥도 뜨거워지고 있다.

 

 

 

 

길은 예초리 기정길로 접어들고,

풍랑에 시달리고, 뜬금없는 산길에 유린당한 삼십릿길이

서서히 한계상황으로 간다.

땅거미 대신 물거미가 지고 있다.

 

 

 

해안길을 에둘러 바라본 해질녘의 바다모습은,

"감사합니다, 많이~"

오늘 하루도 일용할 풍경과 무사함, 그리고

또 하나의 미답지를 알현하고 왔다는 자부심, 그래서

"행복합니다,많이~"

 

 

 

네가 두 손 모아 기도해 줬구나~!

걸음마 서툰 방문객을 위해,

네가 하루 종일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 빌어 줬구나~!

많이 고마워~

 

 

예절이 돈독해서 예초리(禮草里) 포구,

오늘은 예정했던 대로 여기까지!

11.1km지점, 남은 거리는 6.6km!

너무나 많이 결핍된 영양분도 보충하고

멀미에 찌든 심신도 추스려서 내일 나머지 길을 다시 가기로!

 

길은 그런 것이다.

항용 길끝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서둘지 않고 갖은 핑계로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내일이라는 귀한 촌음의 일부를 빌려써야하는...

 

하지만,

추자 올레는 이틀을 온전히 쏟아부어도

충분히 흡족한 멋진 길이었다.

아마도 내일 남은 길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