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한반도가 보이는 올레길 (추자도 18-1코스) 2부

bthong 2012. 10. 26. 20:18

 

최근에...

우리나라 20~40대의 성인 남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벚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봄꽃색깔은 벚꽃의 백색이 아니라 의외로,

<노란색>이었다는 조사 결과...

그랬다!

 

순전히...

길을 걷기 위해, 올레길을 걷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렌트카를 빌리고, 그리고 배를 타고 달려온 길.

그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된 섬속의 섬. 추자도!

 

그 추자도에서의 첫 밤은 온통

<노란색깔>이었다.

쾌속선이 아니라 바이킹을 탄 듯한 멀미속에서 바라본 하늘 색도 까마득한 노란색,

반나절 동안 추자도의 봄향에 취했던 유채꽃도 현란한 노란색,

그리고 간밤에 근사하게 일용했던 감귤 막걸리도 몽롱한 노란색,

그렇게 노랗게 취하고,

결국은 노란 꿈을 꾸고 일어난 추자도의 아침은

참으로 상쾌했다.

 

그런데...

오후 4시에 떠나기로 된 제주행 배가

폭풍이 다가 오는 관계로 오후 1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는 마을 방송!

그렇다면,

어제 끊어 두고온 반토막 올레길을 다시 이어서

온전히 끝내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된다.

 

번개불에 콩을 볶아야 된다는 얘기!

결국,

추자도에서 딱 한 대 밖에 없다는 택시를 불렀다.

어제 토막 낸 그 길의 나머지 절반,

그 절반의 시작점을 보다 빨리 찾아가기 위해!

 

 

 

 

다시 왔다.

1박 2일의 여정을 마무리 하기 위해,

그보다도 어제 남겨둔 추자도의 미완성을 끝내기 위해,

여기, 예초리 포구!

17.7km의 남은 길 중에서 나머지,

토막난 6.6km를 온전히 찾아가기 위해,

아니, 나의 온전한 올레길을 완성하기 위해서...

 

어제 두 개의 산을 넘었기에 오늘은 하나의 산만 넘으면 난코스도 없고,

남은 길은 불과 6.6km...

가벼운 발걸음에 배낭도 단단히 조여매고,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상쾌하게 다시 출발~!

18-1코스의 남은 길!

 

 

 

 

폭풍이 다가 온다지만,

하늘도 푸르고 물빛도 푸르다.

나중에 격렬한 멀미를 다시 할 망정 지금은 마음도 푸르다.

기분좋게 출발하는 시간,

이 순간에는

나중에 다가올 걱정을 미리 하는 것 만큼 바보는 없다.

 

 

 

 

 

엄바위 장승...

설명문을 보니 힘은 장사였는지 몰라도

머리는 별로였나보다.

 

 

 

 

추자도는 고려시대 까지는 후풍도(候風島)였다가

조선조에 들어서 지금의 추자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1896년 전남 완도군으로 편입된 후 1910년 다시 제주도에 편입되었다가

2006년 제주시 추자면에 소속, 지금에 이른다.

이곳 토박이 어르신들은 추자도가 제주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비로소 제주도(島)가 제주도(道)로 승격 될 수 있었다고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계신다.

 

 

 

 

올레길의 3개 산 중에서 남은 하나의 거대한 산,

돈대산 가는 길.

산 길 2km,

미리 말이나 말지, 오르막 2km라는 거리감에 벌써 맥이 풀린다.

하긴,올레길 5일차,

피곤할 때도 되었다!

 

 

 

 

힘은 많이 들어도 길은 의외로 곱다.

올레꾼들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인공을 덧칠해 놓았다.

편리해서 좋기는 하지만 산도 같이 좋아할지...

머나먼 섬, 그리고 다시 멀리 자리한 천연의 섬에,

이렇듯 편리함을 강요한,

그것도 굳이 폐타이어를 활용한 도회의 산물을 깔아야 했을까...

 

 

 

배시간의 촉박함 때문에 지친 다리를

양손으로 들어올려 다다른 곳, 돈대산 정상이다.

개미걸음도 만리장성을 넘는다더니

나의 지극히 작은 보폭도 기특하기 짝이없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내 스스로 대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름도 몰랐던 추자도의 돈대산,

이 작은 산에 가장 서툰 나그네의 발자국 하나를

겸허하게 남기는 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가슴깊이, 그리고 두 손 모아

"오늘도 정상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정상은 좋다.

힘이 든다는 단점은 상존하지만 이 맛이 좋아서 산에 간다.

날만 좋으면 이곳에서 한라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50여km 떨어진 한라산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니...

 

 

 

반대쪽으로는 해남 땅끝마을과 보길도가 보인다.

그리고 진도의 맹골도, 여서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가시거리가 그렇게 멀지가 않다.

높아서 많이 멀리 볼 수있는게 아니라

하늘이 맑아야 멀리, 많이 볼 수 있는 날도 있다는 얘기!

여기, 추자도에서는...

 

아무튼 한반도의 최남단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이곳 돈대산에서 볼 수 있다니...

추자도 18-1코스는 그야말로 한반도를 품은 올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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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포구도 발아래다.

항상 그렇듯,

정상에만 서면 내려가기가 싫다.

힘들여 올라 왔다는 보상심리가 욕심으로 산화 되어서 일까.

그러나 싫어도 가야 할 때가 있는 법.

간식 한 점, 물 한 모금으로 등정 의식을 마무리하고,

다시 출발~!

 

 

 

등산길에서 가장 행복한 경우는,

오르막이 절대 없다는 확신을 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내리막길,

이것은 오로지 나의 경우이다.

어쨌건 지금부터는 지구 중력에 나의 온 하중을 맡기고

산길을, 추자도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물론 불의의 낙상은 대비해야 하겠지만.

 

 

 

 

 

묵리마을이다.

어제 볼 때도 아늑하고 포근함이 좋았는데,

역시 오늘도 보기 좋다, 내일 보면 더 좋겠지.

추자도의 마을들은 보면 볼수록 더 정감이 가는 그런 매력이 있다.

 

 

 

 

차라리 오늘 배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그렇다면 하늘의 뜻으로 체념하고

저 방파제 위에서 흥건히 추자바다도 희롱해보고,

세계에서 가장 신선한 회를 바탕으로

한라산 순한 소주도 한 잔~ 캬~!

몸의 피로도가 사라지니까 머릿속은 온통 먹고 마시고...난장판이다.

사람은 이래서 간사하다.

간사한 인간일수록 주구장창 몸이 힘들어야 한다.

그래야 잡념이 없다.

진리다!

 

 

 

 

이제 남은 길은 십리도 안된다.

배 출항시간도 두 시간 정도 남았고.

 

 

 

 

솔향이 여전히 향기롭다.

길도 포근하게 오붓하고 따뜻하다.

올레길을 새로 만들었지만 발자국으로 길도 잘 들였다.

세월로 조금 더 다지면 명품길이 될 듯.

 

 

 

 

산불 감시하시는 할아버지가 집무실(?)을 다듬고 계신다.

최고의 전망에 자연산 돌담과 푸른 지붕!

청와대가 부럽지 않겠다.

역시 내리막길에서는 시야도 넓어지고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무엇보다도 카메라가 가볍게 느껴져 좋다.

 

 

 

 

여전히 예쁜 길이 펼쳐지고.

발걸음도 가볍다 못해 하늘로 나부낀다.

나의 콧노래도 몇 시간 째 이어지고,

덕분에 산새들이 죄다 입을 닫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묵리 교차로,

어제도 지나갔던 길이다.

차이점은 어제는 올라 갔고 오늘은 내려간다.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아는 사람만 안다.

사실 어제는 이 길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길인지 몰랐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원숭이 보다도 더!

 

 

 

 

그늘길, 양짓길, 침엽수길, 활엽수길, 길, 길...

아름다운 길은 여기 다 있다.

어디 내리막 길만 있는 올레길은 없을까,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될텐데.

혹자는 말한다.

심한 오르막이 있어야 내리막 길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라고,

닥치고!

그건 댁의 법이고!

 

 

 

 

담수장,

여기 돈대산 자락의 빗물을 모아 추자도의 생명수를 만드는 곳이다.

추자도의 심장부인 셈이다.

이 담수장 시설로 인해서 추자도민의 1일 급수량이 100리터에서

240리터로 확대되고 여행객의 편의도 그만큼 좋아졌다고...

그래서 오늘 아침.

내가 그렇게 풍족한 샤워를 할 수 있었던건가!

 

 

 

 

길에서 할머니 두 분이 바다를 보고 계신다.

저기서 물질하는 해녀 할머니들이 이웃들이시라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여기 추자도에서는 저렇게 가까운 바다에 가서 물질을 해도

하루 20만원은 너끈하다고,

그리고 조금 멀리 산재해 있는 무인도로 2~3일 원정 물질을 가면

하루 50만원도 어렵지 않단다.

그런데 도회의 젊은 여자들은 하루에 얼마나 벌 수 있냐고...

 

한마디 더 하신다. 이해할 수 없다고...

힘은 조금 들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물질을 배우려 하지 않는 까닭을,

도시에서 힘들게 사는 당신의 딸들을 포함해서 하시는 말씀이란다.

 

두 분 할머니께

가지고 있던 사탕을 쏟아 드리고

나는 말없이 나머지 올레길을 간다.

그러나

머리속에는 생각이 많다.

 

 

 

 

차도를 배제하기 위해,

여기도 애써 올레길을 새로 만들었다.

한여름에는 뙤약볕도 막고, 솔향도 맡고, 딱 한 사람 갈 수 있는 길, 좋다...

강요하지 않아도 한 줄로 줄서서 가야하는 길.

그러나 여기도 많은 나무들을 베어냈다.

단순히 사람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다시 길은 상추자도로 회귀하고,

추자교를 건넌 올레는 차도와 어깨동무를 강요한다.

종점인 추자항까지는 멀지 않은 길,

그래, 오랫만에 그리웠던(?) 자동차 매연냄새도 새로이 맡아보고

아스팔트의 열기도 느끼면서,

터벅 터벅~

 

 

 

 

남쪽의 봄은 유채로부터 온다더니,

그래, 니들이 있어서 참는다.

예쁜 녀석들!

길가에 왼종일 도열해서 나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니들이 고생이 많다~!

 

 

 

 

 

 

 

 

약 2km 정도 이어지는 차도와의 동행,

그러나 그 길도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봄꽃들이 이제 막 떠나려는 과객에게 지루할 틈 없이 환송을 한다.

차분히 출렁이는 내항의 물빛,

그리고 은근히 다가오는 올레길의 성취감.

 

 

 

 

멀리, 타고 갈 배가 기다리고 있다.

멀미를 하기 전의 배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폭풍이 온다는데, 오늘은 얼마나 출렁일까,

롤링과 피칭, 말만 들었는데,

오늘은 주변의 팬 관리를 위해서라도 미리 속을 적당히 비워야 겠다.

승선 70분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

약진 앞으로!

 

 

 

 

간 밤에 나를 노랗게 품어준 추자도 최고의 모텔,

아늑하고 나름대로 친절하고,

컴퓨터에 52인치 TV까지!

화장실엔 비데도 있었다.

그야말로 최고시설!

숙박비까지 4만원으로 착했다.

 

 

 

 

 

 

약국에도, 수퍼에도 온통 생수천지다.

여기가 섬이란게 실감이 난다.

 

그런데 가게 주인들의 말씨가 제주말과는 전혀 다르다.

행정구역상 제주도일 뿐이지 모든 생활 방식과 말투,

그리고 전해져오는 제사 방식도 전라도를 닮았다고.

심지어 주민들 스스로도 전라도 사람으로 생각한다.

 

 

 

 

 

 

 

 

어제, 여기서 시작했다.

제주 추자도 올레 18-1코스! 17.7km의 거리.

1박 2일, 무려 10시간에 걸쳐 완수했다.

그 인증으로 올레 패스포트에 완주 스탬프도 정성들여 찍고!

 

7~8시간이면 정상적인 소요시간이라는데,

그런 상대비교적인 소요시간에는 이미 오래전에 관심을 끊었다.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나의 소요시간이 가장 표준이고

모범 답안 이니까!

 

항상 최선의 모범 답안은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안이기에.

그래서 여행의 출제자는 언제나 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유럽의 본사로 돌아가는 신사분께 어느 기자가 질문을 했다.

긴 시간 한국민을 겪어보신 결과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무엇이었냐고...

 

그 분은 "<충분히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념하고 외면하려는 경향" 이라고 답했다.

 

그런 것이다, 여행도.

충분히 더 아름답게, 진하게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있는데,

남들만큼의 시각과 남들만큼의 느낌으로는

남들만큼의 감동밖에는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