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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전직 대통령’ 카터가 궁지 몰린 이유

bthong 2007. 6. 2. 14:10
신문과 인터뷰서 “부시는 최악”
후임 대통령 비판않는 금기 깨
美언론들로부터 집중포화 맞아
  • 최준석 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
    입력 : 2007.06.01 23:48 / 수정 : 2007.06.02 03:05
    • 미국의 지미 카터(Carter·사진) 전 대통령(1977~1981년 재임)이 여론의 화살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달 19일 보도된 ‘아칸소 데모크래트-가제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시(Bush)와 리차드 닉슨(전 대통령·Nixon·1969~1974년 재임)중 누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세계 국가들에 미친 부정적인 충격에 관한 한 이 행정부가 사상 최악”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나, 다른 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금기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불문율’이라고 표현했다. 카터가 이를 어긴 것이다.

      카터는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박수를 받아온 그이지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가자 여론은 가차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전직 대통령들이 현직을 공격할 때’라는 기사(22일자)에서 “그의 잘못은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후임자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며 말해야 하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당한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의 데이비드 쉬립만(Shribman) 편집인은 27일자 칼럼에서 “동료 대통령을 헐뜯는 건 라디오 쇼 진행자나 할 일”이라며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의 표현 방식에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카터의 발언이 나오자 당일에는 대응을 자제했으나 다음날에는 대변인 대신 부대변인이 나서 “슬픈 일”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주 크로포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21일 질문을 받고 “나는 여러 군데서 비판을 많이 받고 있고, 그건 대통령에게 일어나는 일의 일부분일 뿐이다”라고만 반응을 보였다.

      전·현직 대통령과의 ‘우정’에 가까운 친분은 미국에선 하나의 정치 문화로 자리잡았다. 부시 대통령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Clinton·42대·1993~ 2001년 재임)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당시 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였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41대·1989~1993년 재임)을 “중요한 건 경제야. 바보야”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뒤 대통령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고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세대인 카터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Ford·1974~1977년 재임)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2월에 사망한 포드는 ‘대통령 클럽’의 예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생전에 가진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Woodward)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후임이었던 카터에 대해 “재앙이었다고 강하게 느낀다. 내 생애에서 본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했고, 현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라면 이라크전을 명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포드는 자신의 사후에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물론 미국에서 과거 전·현직 대통령간에 공격이 과거에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리차드 닉슨 도서관장 지명자인 역사학자 팀 내프털리(Naftali)는 “사람들이 오래 기억을 못 해서 다행이지만 사실 대통령 출신끼리 공격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전 당시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Truman·1945~1953년 재임)은 리차드 닉슨에 대해 “농간을 잘 부리고, 거짓말쟁이”라고 말했고, 후임자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Eisenhower· 1953~1961년 재임)에 대해서는 “그 장군은 돼지가 일요일에 대해 아는 것보다도 정치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 닉슨은 포드에 대해 “포드가 이 의자에 앉는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되면서 포드 당시 부통령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 관련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달 22일 NBC에 출연, “내 말이 부주의했거나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었지) 행정부 전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고, 더구나 어떤 대통령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려는 건 결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그는 백악관의 토니 프래토(Fratto) 부대변인으로부터 “단어를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게 잘 드러났다”고 한 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올해 82세다. 그는 그 동안 부시 대통령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비판해 왔고, 그 분노 때문에 한 때 ‘오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리고 대단히 존경받을 만하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인권과 사회 봉사’ 부분에서다. 카터는 얼마 전에도 가나 등 아프리카 4개국을 방문하고, 끔찍한 기생충인 ‘기니벌레’(Guinea Worm·인체 속에서 자라 60㎝ 이상 성충이 되면 신체의 다리, 가슴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뚫고 나와 극심한 통증을 안김) 질병 퇴치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