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플레이션 잡기위해 2~3년 불황 각오해야"

bthong 2008. 7. 7. 00:17
"인플레이션 잡기위해 2~3년 불황 각오해야"
세계 석학들의 '지구촌 경제 긴급 진단'

 

1970년대 '대(大)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이후 기억에서 사라졌던 인플레이션 공포가 또다시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일각에선 유가 급등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으로 진전돼 전 세계를 침체의 늪으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에 Weekly BIZ는 세계적인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근저에는 석유 수급 불안 외에 글로벌 유동성의 과도한 팽창이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선진국들이 결국 긴축에 나서게 되고, 경기 침체라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와 관련 유럽 중앙은행(ECB)은 물가안정을 위해 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4.25%로 결정했다.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작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미국의 경제 석학인 프레드 버그스텐(Ber gsten)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석유와 원자재 가격 인상은 수요 급증에서 비롯됐고, 공급 역시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낮다"며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란 견해를 내놨다. 미국 재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그는 "선진국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강력한 긴축을 시도하여야만 하고 그 결과로 경기가 둔화되어야만 2~3년 후 물가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좀 더 심화되다가 2010년에는 세계 경제가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한국의 금통위원)을 지낸 런던정경대(LSE)의 찰스 굿하트(Goodhart) 교수는 "영국은 이미 불황이 시작됐고 불황을 통해서만 물가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유럽 시각"이라고 전했다.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는 "석유 가격의 오름세가 꺾여야 물가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데 과거 오일쇼크를 보면 3년쯤 지나야 유가가 하락했다"며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세는 적어도 2~3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석학들은 물가 안정에 정책 목표를 집중시킬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 후퇴를 최소화하면서 물가 목표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버그스텐 교수도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

최소 3년은 고유가…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넘쳐나는 유동성 줄이려면 금리 인상 필요 '물가상승→임금상승→물가상승' 악순환 막아야 감내할 수 있는 성장률·물가안정 목표 설정을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유증으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의 경기가 둔화되는 와중에 석유, 곡물, 기타 원자재 가격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로 소비자 물가가 뛰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병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6월 현재 세계 소비자 물가는 연율로 6%가 넘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그림1〉. 유로 지역의 물가 상승률도 목표치의 두 배가 넘는 4%로 치솟았고, 특히 남미와 동아시아의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있다. 베트남은 이미 30% 선을 육박하고 있으며,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의 물가 상승률이 10% 선을 넘고 있다. 중국도 8%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을 제외하면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경기 후퇴가 예상되는데, 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 최근의 동향을 보면 석유,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일과성 현상이라기 보다는 수급의 차질이 가져온 구조적인 문제로 장기화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우선 공급 측면을 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유전(油田) 개발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가 부진했고, 농업부문의 경우도 생산성 향상이 뒤따르지 않아 수요 증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반면 수요는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특히 최근에 폭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고성장 질주를 하면서 석유와 다른 원자재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

또한 〈그림 2〉를 보면 그동안 급속히 팽창해온 국제 유동성이 석유 수요를 자극해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2007년 초부터 곡물, 광물의 선물 상품이 증권화되어 투기 수단으로 이용돼 오던 차에 주택시장 버블이 꺼지자 투기성 자금이 원자재 시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여 가격이 급등하게 된 것이다〈그림3〉.

유가가 크게 오르면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드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겠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단기적으로는 석유의 공급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없으며, 농산물이나 다른 원자재 시장도 사정이 별로 다를 바 없다.

수요 측면에서도 중국인도의 수요가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 막기 위해서는 2~3년간 경기 침체 고통 불가피


전문가들의 판단으로는 앞으로 적어도 2~3년에 걸쳐 선진 및 신흥시장 경제 모두가 금융, 재정 긴축을 강행하여 경기가 침체되어야만 초과 수요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결국 통화 혹은 유동성이 증가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0년 초부터 세계 경제는 유동성의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는 지난 8년 동안 2조 5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을 누적하였는데, 이 중 대부분이 국내 유동성으로 풀려 나갔다.

유럽 중앙은행 추정에 의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저금리 정책을 펴온 결과로 미국, 일본, 유로지역, 영국, 캐나다의 총 유동성은 지난 2000년 이래 연평균 10%가 넘는 속도로 증가해 왔다. 신흥시장의 유동성은 더욱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석유의 상대 가격(생산자 물가와 비교한 석유의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의 압력은 더욱 더 가중될 것이다〈그림4〉. 결국 석유 가격의 오름세가 꺾여야만 물가가 안정될 수 있는데, 현재 그 시기를 예단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만 지난 1970년대의 1,2 차 석유 파동의 경험을 보면, 석유의 상대 가격은 약 3년 정도는 증가세를 보인 뒤에야 하락하기 시작했다. 만일 이번에도 유사한 추이를 보인다면 앞길이 먼 셈이다. 이렇게 석유 가격 오름세가 장기화될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인플레이션에 가속이 붙게 되어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자리를 잡고 이에 따라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가중되면서 물가 안정을 위한 국제적인 정책 공조체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공조를 주도할 수 있는 주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의 평가절상과 병행하여 금리를 인상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위융딩(余永定)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소장은 "이를 중국이 수용하는 경우 투기 자본이 유입되고 달러 약세가 더 심화되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연준(FRB)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금리를 인상하고, 다른 선진국들도 긴축으로 통화 신용 정책을 운영하면 유동성의 팽창은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더 심화될 징후를 보이고 있는 현 단계에서 긴축 정책은 미국 나아가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한국, 물가 목표 상향 조정 불가피


한국 경제도 유가 폭등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인플레이션, 성장 둔화, 경상수지 적자 증가라는 삼중고(三重苦)의 비상에 빠져 있다. 우선 6월에 물가가 전년동기 대비 5.5% 이상 증가하여 목표치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교역 조건의 악화로 수출 전망마저 불투명해지고 있으나, 여론은 물가 안정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물가 안정 목표제를 운영해야 할 것인가? 몇 가지 정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화될 수 있는 새로운 파동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정책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물가 상승 추세가 2~3년 지속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긴축으로 통화신용 정책의 기조를 바꾸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확산을 막고 임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특히 경기를 활성화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긴축과 더불어 수입물가 상승의 상당 부문을 반영하여 물가 목표를 상향 조정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존의 목표(3±0.5%)를 고수한다면 정책 금리를 대폭 인상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될 뿐만 아니라 지나친 경제 위축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할 것이다. 즉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 후퇴를 최소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성장률을 설정한 후 이에 상응하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물가 안정 목표를 5%로 높여 잡아도 임금 인상 요구가 드세질 것이 분명하다. 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 다시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상승'의 악순환 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직은 이러한 악순환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으나, 예방 차원에서 노사정(勞使政) 간에 적정 인상 수준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칼럼 Inside] 신흥시장, 인플레이션도 수출?
지나치게 팽창적인 통화정책이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위기 불러 선진국도 도미노 현상 우려되지만 미국 '두 자릿수 인플레'는 없을 것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진원지는 신흥시장(emerging market) 국가들이다. 중국의 인플레이션율이 9%이고, 러시아는 14%, 베네수엘라는 30%에 이른다. 임금-물가 악순환 고리가 시작됐다. 러시아의 임금은 30%의 속도로 오르고, 베트남은 32%, 아르헨티나는 36%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율은 그리 높지 않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율은, 의도하는 것보다 높긴 하지만,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경제성장이 잠재성장을 상당히 밑돌면서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임금을 억제하고 있다. 노동 비용이 소비자물가의 3분의 2를 차지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높은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선진국은 신흥시장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율을 신경 쓰는가? 개도국의 인플레이션이 선진국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좋은 예다. 중국산 공산품 가격의 상승은 선진국에 파급되기 마련이다.

신흥시장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직접적 원인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의 앙등이다. 식료품은 인도의 소비자 물가 바스켓의 60%를 차지하며, 러시아는 40%, 중국은 32%를 차지한다. 중국에선 지난 1년간 식료품 가격이 22% 급등했다. 쌀 값은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높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일시적이라 믿는 일부 정부는 가격 통제, 수출 제한, 보조금 지급 등의 조치를 취했다. 태국은 쌀 수출을 제한하고 있고, 아르헨티나는 식료품 수출 관세를 인상했다. 불행히도 높은 가격은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국가들의 과도하게 팽창적인 통화 정책이 식료품과 에너지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한다. 중앙은행들 간의 협조가 없는 한, 이들 국가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 하기 힘들다.

중국의 통화 공급은 두 자릿수로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에선 유동성이 매년 2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신흥시장 국가들의 통화 공급 증가는 선진국의 3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들 국가들이 통화공급을 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환율의 신축적인 조정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걸프만 지역 국가들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이들 국가들의 통화는 미국 달러화에 페그(peg)돼 있다. 이들 산유국의 엄청난 오일달러가 자국 통화로 교환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은 활활 타오른다. 이들 국가가 통화의 평가 절상을 허용했다면, 통화 공급의 증가세는 제한됐을 것이다. 이들 산유국들에 수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수입하기에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들, 예를 들어 부동산이나 식료품 같은 경우 가격이 치솟으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인플레 심리가 부풀어 오른다. 임금이 급등하면서 생산 비용도 급등하고 수출제품 가격도 올랐다.

다행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 개도국에서처럼 인플레 심리를 부추기지 않고 있다. 임금 상승은 적당한 속도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시장의 신뢰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 같은 신뢰가 개도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도국 중앙은행들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종종 경제를 부양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통화 공급을 늘린다.

중국 역시 인플레 심리에 시달리는 대표적 나라 중 하나다. 중국 위안화는 달러에 대해 저평가돼 있고, 통화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플레 압력을 키우고 있다. 노동 수요 증가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조합으로 임금이 너무 올라 많은 기업들이 생산 설비를 베트남이나 인도 같은 해외로 옮기고 있다.

개도국들은 우려되는 임금-물가 악순환 고리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일은 통화 공급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다. 환율을 달러에 페그시키는 대신, 통화 가치가 변동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

달러가 이들 국가에 들어오면, 중앙은행들은 이를 자국 통화로 바꿈으로써 통화 공급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이렇게 하는 대신, 개도국 정부는 초과 통화공급을 국채 발행을 통해 중화시키는 불태화(不胎化) 정책을 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위안화 가치가 오르고, 채권 발행으로 금리가 올라 인플레이션 심리를 억제할 수 있다.

어떤 국가들은 통화 팽창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자본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자본 유입에 대해 1.5%의 세금을 부과한다. 브라질의 통화는 지난 5년간 100% 절상됐다. 초과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채권이 발행돼 왔다.

개도국의 인플레이션은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을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로부터 많은 것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공산품과 인플레이션을 함께 수출하는 셈이다.

그러나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자체만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로 치솟는 일은 없을 것이다. 노동 비용이 인플레이션의 3분의 2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측면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경제 성장 둔화가 임금 인상을 제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