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우리는 협력하는 리더를 원한다”
대통령학 저술가 도리스 컨스 굿윈
“과거를 용서한 링컨이 진정한 리더십의 전범”
어떤 분야에서든 막강한 힘을 가진 거인이 단독으로 중대 결정을 내릴 수 있던 시대는 갔다. 엇비슷한 힘을 가진 경쟁자들이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타협하며 최선의 결론을 향해 차이를 좁혀나가야 하는 시대다. 자문단은 “우리 시대의 리더는 카리스마와 함께 ‘파트너십’(partnership)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특히 그렇다. 한국에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 어떤 후보도 과반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권위 있는 대통령학 저술가인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64·사진)은 매사추세츠주(州) 콩코드에서 전화를 받고,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라이벌과도 팀을 이룰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굿윈은 199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부부의 리더십을 다룬 책 ‘평범하지 않은 시대’(No Ordinary Time)로 역사서 부문 퓰리처상을 탔다. 국내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애를 분석한 ‘권력의 조건’(원제 Team of Rivals·21세기 북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문(愚問)으로 시작하자. 과연 한 국가의 운명에 대통령이라는 개인이 그토록 중요한가?
“대통령도 개인이다. 다른 사람처럼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드라마틱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장단점이 확대돼서 부각되고, 많은 사람에게 좋건 나쁘건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대통령이 최악의 대통령인가?
“결정적인 시기에 등장하고도 역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대통령이다. 예컨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은 링컨 직전에 집권한 제임스 뷰캐넌(재임 1857∼1861)일 것이다. 당시 미국 남부와 북부는 분리독립으로 치닫고 있었다. 뷰캐넌은 허약한 인간이었다.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뷰캐넌 같은 대통령이 한 명만 더 이어졌어도 미국의 오늘날은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은 링컨이 대통령 리더십의 전범(典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어째서인가?
“링컨은 과거를 용서할 줄 알았다. 당선 직후 자기와 맞섰던 당 내외의 반대파에게 손을 내밀고 각료로 중용했다. 한마디로 아량과 자신감이 있었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결정의 순간이 오면 수많은 목소리에 압도당하지 않고 혼자서 결단을 내렸다.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졌다.
링컨도 화를 냈다. 반대파들에게 격렬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실제로 부치는 일은 없었다. 편지를 쓰면서 이미 분노를 방출했기 때문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에게 고함을 질러서 쓸데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그는 아름답고 품위 있는 언어로 자연스럽게 주변을 감복시켰다. 고난이 닥치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농담을 했다.”
―한국은 1987년 이후 다섯 번 대선을 치렀다. 누구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퇴임할 때는 지지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분열의 시대에 과반에 못 미치는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울타리 밖으로 적극적으로 팔을 뻗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특정 이념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대통령에게 마음을 준다.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이 점을 높이 사서 표를 던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조금 다른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 ▲ 2008년 한국인의 삶을 관통할 다섯 가지 흐름은 결국‘협력’과‘개성’으로 압축 된다. 자유롭게 살되 책임감을 가질 것,‘ 나’와 다른 이를 인정할 것, 외국인과 여러 소수 집단을‘우리 중 하나’로 받아들일 것을 시대는 주문하고 있다. 2007년 인포메이션 페어에서 수박기(手搏技) 수련중인 외국인과 서울 시민들. /뉴시스
“이 당선자의 경우, 선거 과정에서 이미 도덕성 시비가 여러 차례 일었다고 들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재임 중 정책이나 도덕성을 놓고 시비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이 언론과 국민에 등을 돌리고 지지자들 틈에 틀어박혀선 안 된다. 잘못이 있다면 빨리 인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잘해보려다가 실패했구나’ 하고 납득한 순간 국민은 대체로 대통령을 용서한다. 자신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부각되고 있다. 어째서인가?
“레이건은 재임 중에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공화당 지지자들만 열광했지 민주당 지지자들은 냉담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양 진영 모두 그의 업적을 인정하게 됐다.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국운이 쇠퇴하고만 있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집권했다. 그는 경제를 살렸다. 처음엔 군비 경쟁을 통해, 나중엔 협상을 통해 냉전 종식의 기초를 닦았다. 요컨대 미국인이 다시 한번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싸늘해지면서, 미국인들이 ‘레이건 때는 우리가 바깥에서 존경을 받았다’는 향수를 품게 된 것도 레이건 재평가에 한 몫 한다.”
―링컨과 레이건 모두 언변이 출중했다. 대통령은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
“문장이 좋다고 유명한 연설문이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국가를 이끌어 가려는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국민들을 흥분시켜야 한다.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저 사람이 말하는 멋진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2. “이기적인 노후가 시작된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내 삶은 나만의 것!
가족사에 매몰되지 않고 자아 추구하는 노인 출현
2007년은 주택을 담보로 노후 생활 자금을 대출받는 공적 보증 역모기지론이 처음 도입된 해다. 황인성(44)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노령화가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한국 부모들은 자녀 뒷바라지에 청춘을 투자하고, 훗날 자녀의 부양을 받는 것으로 그 대가를 받았다. 역모기지론은 이런 관습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책임지는 사회에서 각자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노년의 문턱에 선 50대 후반~60대 초반에서 뚜렷하다. 하지현(40) 건국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이들은 자녀에게 의지하기보다,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자녀에게 간섭받지 않고 노후를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국판 신노인(新老人)의 등장을 점쳤다. 한국 사회 특유의 ‘책임 사슬’에서 벗어나, ‘노후를 즐길 권리’를 주장하는 첫 세대의 출현이 박두했다는 것이다.
50대 후반~60대 초반 세대는 1940년대 후반~50년대 초반에 태어나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에 독재와 압축 성장을 동시에 경험했다. 식민 통치와 한국 전쟁에 시달린 전 세대에 비해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학력자가 많으며, 자식 세대에 비하면 쉽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졌을 때 중간 관리자로서 감원(減員)의 아픔을 뼈저리게 맛본 집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의 동년배들과 다르다. 맞벌이하는 자식 부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손주들을 키워준 전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경제력만 뒷받침되면 “차라리 양육비를 보조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대는 여생에 대해 명확한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이젠 나를 위해 살겠다”는 기대를 안고 은퇴한다.
이런 풍조는 중산층 이상일수록 두드러진다고 자문단은 분석했다. 또한 “앞으로 몇 년 안에 이들이 20~30대 자녀와 빚는 세대 갈등이 가시화될 것”으로 소설가 김영하(39)씨는 내다봤다. 비싼 집값과 고용 불안에 직면한 자녀들은 점점 더 부모의 원조를 기대하게 되지만, 부모는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보다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고자 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가족사에 매몰되지 않고 자아를 추구하는 노인의 출현은 “지극히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고 조영희(38) 에코의 서재 대표는 말했다.
3. “우리는 멋진 부자를 보고 싶다”
세련되게 돈쓰는 부자 없을까?
2007년 한 해 동안 한국인은 ‘아름다운 부자’와 ‘추한 부자’를 번갈아 봤다. 지난 12월 심장 수술 보조 장치를 개발해서 번 돈 200억 원과 앞으로 들어올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장을 쓴 송명근(56) 건국대 의대 교수가 ‘아름다운 부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졸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대기업 오너의 지위를 남용·악용하는 사례도 숱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그들은 ‘돈이 많다’는 사실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쯤으로 오해하는 듯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추한 모습으로 경찰서와 검찰 조사에서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했고, 돈이 되는 곳이면 예술과 미술에도 부적절한 방법으로 손을 뻗은 혐의를 받았다.
미술평론가 임근준(36)씨는 “언론에 나타난 한국의 부자들은 전 재산을 던지는 ‘성인군자’ 아니면 몰염치한 ‘졸부’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는 이미 수십억 원부터 100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 집단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소비 행위 외에 달리 자신의 부를 표출하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문단은 분석했다. 부를 표출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자문단은 “성인(聖人) 아니면 졸부라는 양극단 말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책임감 있고 세련된 부유층이 등장하기를, 자신과 사회를 위해 멋지게 돈을 쓰는 전범(典範)을 보여주길 앙망한다”고 말했다.
4. “메가트렌드 대신 마이크로트렌드가 뜬다”
‘마이크로트렌드’ 저자 마크 펜
“인구 1%가 일으킨 트렌드가 미래를 장악하게 될 것”
앞으로의 세계는 그러나 메가트렌드 대신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s·작은 트렌드)가 지배하는 시공이 될 것이라고 자문단은 내다봤다. 독특한 기호를 가진 소수가 수시로 이합집산하며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유행을 창조한다는 전망이다.
신간 ‘마이크로트렌드’(해냄)를 통해 이 같은 지각변동을 명쾌하게 짚어낸 사람이 마크 펜(Mark Penn·53·사진)이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최측근 참모이자 세계 최대 홍보회사 중 하나인 버슨 마스텔라사(社)의 CEO이다. 펜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인구의 1%가 일으키는 마이크로트렌드가 미래를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트렌드’를 구상하면서 나이스빗을 얼마나 염두에 뒀나?
“나이스빗은 개개인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조류가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주목한 학자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메가트렌드를 포착하고 해석하고자 했다. 80년대의 세계에는 그가 들고 나온 메가트렌드 개념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메가트렌드만 기다리는 사람은 배가 떠나는 걸 놓치기 십상이다. 요즘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변화를 일으키는 소수 집단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많은 경우 당신의 기존 관념과 상반될 수 있다.”
―마이크로트렌드가 떠오른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선택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세계 공통적인 현상인가?
“지구 온난화처럼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메가트렌드도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행동 양식과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많은 경우 마이크로트렌드들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패턴과 집단을 형성한다.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예전에 비해선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물론 전세계를 단일한 가치에 복속시키고 싶어하는,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크게 보면 우리 시대의 마이크로트렌드 중 하나다. 개인이 점점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풍조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마이크로트렌드다.”
-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공연장에서 출연진과 기념 촬영을 하는 외국인 팬들. 주류와 비주류, 고전과 전위, 고급 문화와 길거리 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누구나 같은 것을 먹고 입던 시대는 갔다. 각자 다른 것을 즐기는 시대,‘ 마이크로트렌드’의 시대다.
“물론이다. 우리 시대의 성공적인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무작정 호소하기 보다 수많은 소규모 집단에서 개별적으로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들을 한데 묶어서 자신의 세력을 형성한다.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이 열정적으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정치인은 그들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5. “내게 당신과 다르게 살 권리를 허락하라”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삶은 다 다른 것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미덕이었다. 집단주의는 지금도 한국인 개개인의 삶의 중대하고도 사소한 모든 국면에 짙게 배어있다. 문제는 그것이 많은 경우 미덕이 아닌 악덕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을 다룬 예술 작품들이 극장과 TV와 책방에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소수 집단을 ‘우리’가 아닌 ‘그들’로 치부한다. 또 커밍아웃하는 성적 소수자는 가족의 배반자로, 기업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는 조직의 배반자로 낙인 찍힌다. 서구에서 그들을 애써 ‘역할 모델’로 치켜세우는 것과는 좀 다른 풍경이다
가장 무서운 공공의 적이 민족주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비자와 영주권, 은행 대출과 주택 임대, 휴대폰 개통 등에 있어서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공평한 불편을 감수할 때가 많다. 한국 도시가 뉴욕, 파리, 홍콩, 싱가포르 같은 ‘국제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우선 그런 점부터 해결해야 한다.
집단주의는 약자에 대한 횡포로 이어질 때가 많다. 한국은 1988년부터 2006년 11월까지 외국인 HIV 바이러스 보균자 454명을 강제 출국시켰다. HIV 바이러스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을 일으키는 병원균이다. 한때 서구 선진국도 에이즈라면 치를 떨었지만, 근래에는 에이즈 보균자를 무작정 추방하거나 격리하는 대신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일상 생활을 계속하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고 있다.
한국인은 어떤 모임에 가건 남들에게 “몇 학번이냐”, “아이는 몇이냐” 같은 질문을 쉽게 던진다. “사람은 누구나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 다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사는 건 다들 거기서 거기”이며 “누구나 나와 비슷하게 산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가 수퍼마켓이다. 가까운 도쿄나 홍콩에만 가도 장을 볼 때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과일, 채소, 간식거리, 샴푸 같은 생필품 하나하나마다 세분화된 필요에 맞춰 다양한 제품이 나온다. 소비자에게 훨씬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안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서 바깥 세상의 다양성을 섬세하고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을 리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