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사진

숭례문(남대문)의 화재

bthong 2008. 2. 14. 08:29

 

 

 


 정면에 보이는 화재가 난뒤..첫날 숭례문의 불탄 모습

 

 

 

 

 

(100년전 남대문의 모습)

 

 

 

 ****  호주의 사진작가 조지 로스(George Rose)씨가 1904년 찍은 숭례문 

 

(남대문 현판의 유래)

양녕대군은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로 글 잘하고, 글씨 잘 쓰고, 놀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부왕인 태종은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하였다. 양녕대군은 이러한 부왕의 뜻을 눈치채고 미친 체하며 여러 가지 해괴한 행동을 해서 세자 책봉을 폐립시키도록 애를 썼다.

이때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은 양녕대군의 세자 책봉이 폐립되면 자기에게 세자 책봉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왕한테 잘 보이려고 몸가짐이며 말씨며 행동거지를 각별히 조심하고 근신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왕자다운 품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양녕대군은 이것을 보고 하루는 효령대군을 발길로 걷어 차면서 충녕을 모르느냐고 했다. 효령대군은 그 말을 듣고서야 양녕대군의 뜻을 알아차리고 절에 들어가서 불도에 힘쓰고 늘 북만 쳤는데, 북은 쳐도 쳐도 찢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지지 않고 질긴 것을 효령대군의 북가죽이라고 하는 말이 생겼다. 양녕대군은 거듭된 해괴한 행동끝에 마침내 폐세자되고 말았다.

한편 남대문(숭례문)에 걸려 있는 현판의 글씨는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 현판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이 글씨를 써서 현판으로 만들어 달았다는데 이 현판이 달려 있지 않고 떨어졌다. 다시 달아도 자꾸 떨어져서 한동안 남대문에는 현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광해군 때 청파의 배다리란 곳에 있는 웅덩이에서 서기(瑞氣)가 올라 비추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 웅덩이의 물을 퍼내고 보니 밑바닥에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다. 이 현판을 남대문에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쓴 현판이 비로 그 현판이라고 한다.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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