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 ▲ 일러스트=권신아
동치미 무를 먹으며 아삭아삭 달을 베어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팥죽에 뜬 새알을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을 들락날락하는 달을 떠먹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달걀과 밀가루가 들어간 둥근 지짐이와 부침들을 먹을 때마다 달(빛)을 지져먹고 달(빛)을 부쳐 먹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알들은 달을, 하얗고 부드러운 가루들은 달빛을 닮았다. 그리고 흰 고봉밥이, 노란 달걀 프라이가, 토실한 감자가, 탐스럽고 둥근 빵이 죄다 달을 닮아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밥상에 뜬 온갖 달들을 만들어내는 엄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모두 달의 여인들이니, 우리는 밥상에 뜬 달을 먹고 자라는, 그 달을 만드는 이 달에 의해 키워지는, 달의 후예들이다. 그러니 밥이 달이고, 밥의 집이 달의 집이다.
'조각조각' 달집 아래를 걸을 때, '모락모락' 밥집 곁을 지나칠 때 그 집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부푸는 추억이자 꺼지지 않은 희망임을 깨닫는다. 저녁 밥상 앞에 둥그렇게 앉아 '한 그릇씩의 달'을 비우며 서로를 마주볼 때 '꼭꼭 뭉친 주먹밥'처럼 비로소 한 식구(食口)임을 확인한다. 그런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는다. 달은 어머니처럼 둥글고, 이 둥근 것들을 우리는 끊을 수 없다. 밤의 어둠을 굴리는 달(빛)이 이울며 차며 '달의 원형'을 회복하듯, 우리도 그렇게 추억과 희망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들로 배가 둥그렇게 부르리라. 또 다른 달을 낳기도 하리라. 그것이 달의 역사(歷史)이고 달의 미래일 것이다.
8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 출간된 송찬호(49)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컸다.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시대와 가족과 인간과 사물과 언어를 비극적이면서 비의적(秘儀的)으로 결합시키곤 한다. "나는 시를 무겁게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매만진다"는 시작 태도는 시의 이미지를 돌올하게 하고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거느리게 한다. 소를 치던 어린 시절 '아이 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는, 고춧가루 몇 되를 들고 가출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 군대와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 보은을 떠나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는 자신에게는 '시 쓰는 일'이 전부일 뿐이라고 일갈하는 몇 안 되는 시인이다. 이런 시인이라야 모름지기 전업시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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