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담양소쇄원(潭陽 瀟灑園) , 가사문학관

bthong 2009. 1. 14. 00:01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은둔생활을 하던 조선시대 선비의 별서원(別墅園)이다. 양산보(梁山甫)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원(園)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한 것이다.
소쇄원의 조성연대는 1520년부터 1557년까지 양산보(梁山甫)의 은둔생활(隱遁生活) 기간 중에 조성된 것이다.
이 원(園)의 조성사상을 보면 주자(朱子)가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은둔하는 행동양식이 깔려있다.

원(園)의 구성을 보면 흘러내리는 계류가 암반을 타고 오곡(五曲)으로 흐르다가 폭포로 떨어져 작은 조담(槽潭)을 이루는 3천여평의 공간에 조성되어 있다. 계류를 중심(中心)으로 양쪽 언덕 임간(林澗)에 터를 잡아 광풍각(光風閣), 제월당(齊月堂), 초정(草亭), 화계(花階), 연지(蓮池), 석천(石泉) 등이 배치되고 물레방아와 석가산도 있었다. 그리고 계류 위에는 외나무다리와 죽교(竹橋)가 설치되고 원(園)의 구역은 아름다운 토석담으로 구획 지워져 있다. 담벽에는 「애양단(愛陽壇)」, 「오곡문(五曲門)」「소쇄처사양공지허(瀟灑處士梁公之虛)」의 글씨가 석판(石板)과 목판(木板)에 새겨져 박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원의 입구는 울창한 죽림(竹林)으로 외부(外部)와 막혀 있으며 원내(園內)의 식생(植生)은 죽(竹) 매(梅) 송(松) 행(杏) 괴(槐) 도(桃) 벽오동 유(柳) 자미(紫薇) 단풍(丹楓) 사계화(四季花) 치자(梔子) 국(菊) 부용(芙蓉) 순채 파초(芭蕉)를 심었던 것이다. 이러한 식생이 조선선비들이 좋아하였던 화목(花木)들이다. 지금도 넓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목백일홍(자미(紫薇))의 원림(園林)이 계류와 정자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지(蓮池)는 방형(方形)들인데 하나는 2.5m의 정방형이며 하나는 세로 5.5m, 가로 4m의 장방형이다. 이들 연못에는 계류의 물을 나무 홈대로 연결하여 넣었던 것이다.
이 소쇄원에는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명종(明宗) 3)에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의 48영(詠) 시(詩)가 남아 있다. 그리고 고경명(高敬命) 이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광주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과 함께 광주 무등산(無等山)을 유락(遊樂)하면서 4월 23일 소쇄원에 들려서 보았던 계원(溪園)의 사실적 묘사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남아있다.


또 소쇄원의 배치를 목판(木板)으로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있다. 이 목판은 가로가 35cm, 세로가 25cm로 양각으로 판각되었는데 1775년 4월 하순(숭정기원후 삼을해년청화 하완간(崇禎紀元後 三乙亥年淸和 下浣刊)에 제작했다는 판각기가 새겨있어 소쇄원의 원형(原形)을 상고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판에는 위쪽에 김인후의 소쇄원 48제영(瀟灑園 48題詠)이 새겨있고 오른쪽 외곽에는 「창암촌 고암동 소쇄원 제월당 광풍각 오곡문 애양단 대봉대 옹정봉 황금정 유 우암선생필(창蒼巖村 鼓巖洞 瀟灑園 齊月堂 光風閣 五曲門 愛陽壇 待鳳臺 瓮井峰 黃金亭 有 尤菴先生筆)이라 새겨있다. 우암(尤菴)은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호이다. 이 소쇄원도(瀟灑園圖)에는 건물의 명칭 식물의 명칭 지당(池塘) 계류의 조담(槽潭)이나 바위 다리 물레방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입구 담벽에는 원래 김인후의 소쇄원 48영(詠) 수제(手題)가 편액으로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쇄원은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문아한 아름다움이 풍기는 조원이다.

 

순천만에서 바로 담양으로 들어와 메타쉐콰이어 길이다.

 

 

 

 

 소쇄원 입구의 주차장에서 입장료를 징수한다.  천원이던가?

주차장을 지나소쇄원 입구의 진입로다. 

 

나모도 아닌것이 /

풀도 아닌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계곡 건너편으로 보이는 제월당.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정자(亭子)라기 보다는  정사(精舍)의 성격을 띠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

사진 정 중앙으로 편액이 보이며 편액 바로 위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다.

 

 우암 송시열의 필체인 편액.

어릴 때 서예를 공부했던 필자는 대 선배님의 일필휘지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는데 눈 많이 오던 날 도봉산 밑에서 도봉동문이라고

바위에 음각된 선배님의 글을 만났을 때의 감회 비슷한 것이다.

 

 

 

 광풍각의 모습이다.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한식이다.

그 중심에 사방 5 자, 조금 더 되어 보임직한 방이 마련되어 쉴 수있게 되어있는데

대각선으로가 아니면 절대로 바로 누울 수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무릇 은자는 지조와 절개가 세속에 빼어나는 풍모가 있어야 하고,

마음이 씻은 듯이 맑고 깨끗하여 홍진을 뛰어넘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양산보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소쇄원에서 담양시내 쪽으로 약 1km 정도 들어가면 가사문학관이 있다.

 

 조선 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 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담양군에서는 이같은 가사문학 관련 문화 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 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문학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소쇄원·송강정·면앙정 등은 호남 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그 전통을 오늘에 잇게 하고 있다.

 

 

 

 심심정. 이름 참 오묘하다.

 

 

  면앙정가

송순이 16세기에 창작한 국문시가이다. 이의 문학적 형태는 조선조에 크게 유행했던 가사(歌辭)이다.

작품의 내용은 무등산의 동쪽 산맥 끝에 자리한 제월봉의 벼랑에 세워진 호남 제일의 누정인 면앙정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광을 읊은 강호가사이다.

자연 경관을 묘사한 수법이 뛰어나고, 작품의 내면에 담긴 정서와

이에 수용한 말의 아름다운 표현법이 독특한 조선조의 대표적인 가사이다.

  이의 출현으로 초기 한국 가사문학 발전의 전기가 마련되였으며,

그 후광은 조선조 제일의 가사작가인 정철의 등장을 촉구하여 가사문학의 바탕을 확실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언젯적 사진인지 모를 일동 삼승도.

예부터 이고장의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은 한 마을의 세 명승지라 하여, 일동삼승으로 일컬었다.

 

 송순이 짓고 거처하며 후학들과 가사문학의 산실이 된 면앙정 편액

 

 

 면앙정의 옛모습이다.

 

무등산 한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치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가없는 넓은 들에/ 무슨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구비가 한데 움치리어/ 우뚝 우뚝 벌여 놓은 듯,

그 가운데 구비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 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하며,

 

너른 바위위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정자를 앉혀 놓았으니,

마치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린 듯하다. (면앙정가 중에서)

 

면앙정삼언가.

 俛有地 仰有天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亭其中 興浩然     이 중이 정자 스니 호연한 흥취 이네.              

  招風月 挹山川     풍월을 부르고 산천을 끌어드려.       
          扶藜杖 送百年     명아주로 지팡이 삼고 한평생을 보내려네.  

 

 면앙정 근래의 사진.

 

 

 

 .

 

 우측의 족자는 고경명에 대해서......

좌측의 시가는 면앙정가를 음각한 것이다.

 

 기암집.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정홍명 (정철의 아들)의 시문집.

12권 4책. 목판본. 저자가 만년에 자기의 시문을 글의 종류별로 정리해둔 것을

아들 리(涖)와 조카 양(瀁)이 1655년(효종 6)경 간행하였다.

1675년(숙종 1)에 초간본에 수록되지 않은 글을 모으고, 거기에 부록을 더하여 중간하였다.

문집 가운데 반이 넘는 권1~8에 걸쳐서 시 1,100여 수가 실려 있다.

정홍명은 평생을 시작(詩作)에 바친 사람으로서 그의 시, 특히 5언고시(五言古詩)는

도연명(陶淵明)을 연상케 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의 서고 비슷한 곳. 도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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