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연어 / 박이화
고백컨데
내 한번의 절정을 위해
밤새도록
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
그리하여
온밤의 어둠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
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어족
그가 바로 지난날 내 생애
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
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 연어입니다
오래 전 산벚나무 / 박이화
이른 봄날도 늦은 봄날도 아닌 계절에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자
이미 반백의 사내와 봄 산에 듭니다.
그 사내 홍안의 복사꽃도 잠시 말로만 탐할 뿐
하 많은 봄꽃 다 제쳐두고
백발보다 더 부시게 하얀 산벚 아래
술잔을 기울입니다.
어쩌면 전생의 어느 한때
그의 본처였기라도 한 듯
그 사내,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자처럼
갈수록 할말을 잃고
그럴수록 철없는 그 여자
새보다 더 소리 높여 지저귑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적막한 산중,
드문드문 천천히 백발의 꽃잎 푸스스 빠져
그 사내 머리 위로 쌓이고,
이윽고 그 여자 빈 술병처럼 심심히 잠든 동안
사내만 홀로 하얗게 늙어 갑니다.
비로소 저 산벚
참 고요히 아름답습니다.
후박나무 아래 잠들다 / 박이화
봄날이 와서
억세게 운수 좋은 어느 날
내게로 어떤 봄날이 와서
이 세상 모든 죽음마저 꽃피워 줄 때
나 저 후박나무 아래 들겠네
그럴 때 통영군 연화리 우도의
저녁하늘 바라보던 내 눈은
후박나무 어린잎에게 주겠네
내 잠든 동안 저 후박나무
나를 대신 할 수 있도록
아, 살면서 누구보다 고온 다습했던 내 생은
누구보다 먼저 후박나무 그늘 아래 썩겠네
그렇게 한 생쯤
내 몸도 꽃잎 아래 물컹,
향기롭게 썩었으면 좋겠네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그대는 영영
아주 내게서 잊혔으면 좋겠네
다시
봄날이 와서
억세게 운수 좋은 어느 날
내게로 어떤 봄날이 와서
나를 저 후박나무 심장처럼 높게,
꽃피워 줄 때까지
여름비 / 박이화
호박잎처럼 크고 넓은 기다림 위로 투다다닥 빗방울 건너 뛰어오듯 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볕 아래 지친 그늘처럼 맥없이 손목 떨구고 늘어지던 내 그리움의 촉수들이 마침내 하나 둘
앞다투어 눈떠 사방 꽃무늬 벽지처럼 내 마음 온통 분간없이 휘감아 뻗고, 예고없이 들이친
소낙비의 행렬에 또 한바탕 허둥대며 젖는 잎, 잎들 전선이 젖고 그 선을 타고오는 그의 목소리
열대어처럼 미끈한 물비늘로 젖어와 어느새 내 몸은 출렁출렁 심해로 열리고
나의 포르노그라피 / 박이화
썩은 사과가 맛있는 것은
이미 벌레가
그 몸에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뼈도 마디도 없는 그것이
혼신을 다해
그 몸을 더듬고, 부딪고, 미끌리며
길을 낼 동안
이미 사과는 수천 번의 자지러지는
절정을 거쳤던 거다
그렇게
처얼철 넘치는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저렇듯 달큰한 단내를 풍기는 거다
봐라!
한 남자가 오랫동안 공들여 길들여 온 여자의
저 후끈하고
물큰한 검은 음부를!
겨울동백 / 박이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누군가의 칼날에 죽어갈지 모르는 비운의 武士들이
오히려 그 죽음의 향연을 즐겼단다. 그래서 투구 속에 귀한 향을 넣어 제 목이
떨어지는 순간 그 진동하는 향기로 살아남은 적에게 더 큰 승리의 도취감을
선사했단다. 그렇다면! 저 푸르고 질긴 잎으로 무장한 동백 한 그루. 그도
이미 그 붉은 투구 속에 향기로운 죽음을 준비했던 걸까? 그래서 허공을 가르는
한 줄기 바람 앞에 저렇듯 모가지 댕겅 떨구며 낭자한 향기 콸콸 쏟아내는 걸까?
그리하여 승승장구하여 달려 온 봄에게 더 큰 희열 만끽하게 하도록!
똥 패 / 박이화
화투라면
꾼 중의 꾼이었던 나도
다 늦게 배운 고도리 판에서는
판판이 깨어지고 박살납니다
육백시절의
그 울긋불긋한 꽃놀이 패를
(그러나! 고도리 판에서는 만년 똥 패를)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저 한물간 낭만주의에 젖어
이 시대의 영악한 포스트모던에 영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도 움직인다는 016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아날로그 주제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애도
버리지 못하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젖은 꽁초처럼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 데도
도무지 홍도의 순정으로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히든 패가 아닌 세상
잊어야 하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흥얼거려지는 당신
흘러간 동숙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이라면
당신은 분명
내 생애 최악의 똥 패인지 모릅니다
도개리 복사꽃 / 박이화
내 몸 속 어디 숨겨진 복사뼈 있듯
우리 언제 한 몸이었던 적 있었는지
내 입술과 유두
저 연분홍 꽃잎이었던 적 있었는지
거뭇한 북쪽 가지 끝의 저 은밀한 홑꽃
일만 년 전쯤
내 음순이었던 적 있었는지
그리하여
나, 오래 전 하나였던
그 몸을 잊지 못하는 듯
이렇듯 꽃 같이 붉은 생리혈 비쳐오면
내 몸은 무작정 아픕니다
복사꽃 피는 그 사나흘처럼
내 몸도 한 사나흘쯤
밤낮없이 그리움 멍울멍울 쏟으며 아픕니다
고전적인 봄밤 / 박이화
송도 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
거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대엔 벽계수를 대신해 줄 풍류남아가 없고 지랄이야.
명월이 만공산 할 제 달빛 아래 휘영청 안기고픈 사나이가 없고 지랄이야. 아, 일
도창해 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길 어째서! 이 몸과 더불어 유장하게 한 번
뒤척여 볼 박연폭포 같은 사내가 없고 지랄이야.
봄밤은 고전인데......
이화에 월백하는 봄밤은
만고강산의 고전인데
저무는 풍경 / 박이화
돌아오지 않는
강물을 기다리는 다리는
차라리
무너지고 싶을 거다
무너져선 안 되는 것들이
기실은 더 무너지고 싶은
이 기막힌 역설로
나는 그대에게 기울고
강물은 또 그렇게 범람했나보다
허나, 나도 다리도
끝내 무너질 수 없는 것은
내 그리움의 하중이
견딜만 해서가 아니라
강물의 수위가 높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국,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의
그 오랜 기다림이 배경일 때
그대도 강물도
저무는 풍경에서
더 멀리
더 고요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 박이화
녀자도 그렇지만 꽃도 너무 기상이 높고 절개가 서슬 푸르면 선뜻, 꺾을 수 없는 게라
그래선지 매화주나 국화주는 그 만고의 정절 때문인지 암만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이
당체 여흥이 무르익지 않는 게라 대저, 역사란 밤에이루어진다 했느니 그런 맹송맹송한
남녀유별 하는 밤이라면 천하절 색의 양귀빈들 뭘 이루고 말고겠어? 하지만 말이지
심산유곡 인적 없는 골짝에서 소쩍새 걸쭉한 육두 가락으로 산딸기 온몸으로 익었다면?
아흐
그 복분지술 한 잔에
포산 곽씨 열녀가문
종갓집 맏며느리의 이 도도한 취흥을
봄밤,
네까짓 게 감히 알기는 알겠니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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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대화] '그리운 연어' 시인 박이화 '고백컨대/내 한 번의 절정을 위해/밤새도록/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
/그리하여/온밤의 어둠이/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 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어족/그가 바로 지난날 내 생에/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연어입니다'
-그리운 연어
이 시뿐만 아니다. 그녀의 시에서는 유두, 음부, 정사, 체위, 젖무덤, 지분대기,
무릎과 무릎 사이, 오르가즘과 같은 말들이 예사롭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는 '외설의 혐의'에서 자유롭다. 문학 평론가 이형권은 "박이화의
시가 음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외설적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성적
이미지들이 감각적, 말초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원관념의 보조
관념으로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박이화의 시가 흔히 여류시인들이 즐겨 추구하는 '성의 정치학'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녀불평등, 여성성, 여성 권익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에 나타나는 '성적언어'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언어일
뿐이다.
'나의 홍살문 나무 중엔 품계 높은 자작나무도 있고 법도 높은 동백나무도
있지 반면 어디서나 사향 냄새 풍기는 화류의 나무도 있지 그 나무, 맨날
음풍농월하는 됴화나무라고 말 못하지 봄바람에 유독 춘색 밝히는 복숭아
나무라고 더더욱 말 못하지 더욱이 서풍이 건 남풍이 건 바람이란 바람은
죄 그의 정부라고 내 차마 내 입으로 말 못하지 (하략)'
-나의 홍살문 중에서
시인 박이화는 칼과 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셋 모두 한없이 '무겁고
단순하며 심드렁한 무엇'이라고 했다. 칼과 춤, 고양이는 오직 제 리듬을
따라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진중하되 빠르고, 일단 움직임을 완료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칼과 춤, 고양이는 리듬을 타야 하며 리듬을
잃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했다. '칼은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흥 없는 몸놀림은 춤이 아니다. 고양이는 아양떨거나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녀는 시 역시 그렇다고 했다. 무사가 칼을 휘둘러 적을 베듯, 문득 떠오른
시상을 단 한번에 낚아챌 뿐이라고 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
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접근하지 않으며, 단칼에 베고 나면 후회하지 않는다
고 했다. 박이화는 대중가요 가사를 써서 수상한 적이 있고, 수필로 등단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는 공부로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시를 쓸 작정입니까? 어떤 시인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나갈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적병처럼 시심이 다가오면 칼을 들어 낚아챌 것이고, 여명과 함께 어둠이
물러가듯 시심이 사라지면 또 그뿐이라고 했다. 시인으로서 자신은
'언제 파산할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밤의 어둠을 밧줄로 묶을 수 없듯, 고민하고 쥐어 짜낸다고 시가 되어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박이화는 자신의 시에 규칙이나 바탕정서, 질서
가 따로 없다고 했다. 흔히 '에로틱'하다는 말을 듣지만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쓰고 싶은 대로 썼고, 마음이 통하는 독자가 공감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는 한 줄만 써도 부족하지 않고, 열 줄을
써도 넘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오직 내가 쏟아
내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독자 역시 자신과 맞으면 공감하며 읽으면
된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에로틱함으로 상징되는 것은 육체적 교감에 관한
내용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남녀의 육체적 교감은 상대
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내 시에는 상대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 없음은 '근원적 부재' '소통부재'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어떤 시인이 절경은 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사랑, 종결됐다고 믿는 사랑은 시가 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랑했으나 이룰 수 없었던 사랑, 미완의 사랑, 그래서 남은 무엇,
부재하는 무엇이 곧 인생의 꽃이며 내 시다. 어쨌든 사랑은 내 시의
영원한 18번이자 불멸의 레퍼토리이다."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남해와 부산에서도 생활했다
고 했다. 산과 들을 보며 살던 아이가 부산바다를 보았을 때, 환하게
불 밝히고 있던 배가 멀어져갈 때, 그리고 결국은 불빛마저 사라지고
검은 바다만 남았음을 확인해야 했을 때의 고독과 쓸쓸함이 '최초의
장면'처럼 내면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검은 부산의 바다 역시 그녀에게는 부재하는 무엇으로 각인됐다.
박이화는 두 아이의 엄마며 아내인 생활인이다. 그녀는 일상인의
역할에 대해 '충실하지 못한 편'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무 마루를 닦고 또 닦는다(일상을 윤기나게 열심히 행함)고
금마루가 되겠나? 눈에 보이는 먼지 쓸고 그저 잠자리를 펼 수 있는
정도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그녀는 스스로 마루에 내려앉는 먼지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 아니며, 유심히 살필 만큼 밝은 눈(관심 있는
눈)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박이화는 시와 일상 외에도 관심분야가 다양했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화투를 즐기는 편이라고 했다. 화투가 좋은 것은
오직 그 붉은 색깔과 그림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하면서 '나는 화투치는 걸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설령 화투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그런 말을 일부러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박이화는 댄스스포츠 트레이너 겸 심판으로 일할 만큼 라틴 댄스
에도 일가견이 있다. 노인복지대학에서 댄스를 가르친 적도 있다.
오래 전 검도를 배웠고, 칼과 무사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했다. 평범한 여성의 관심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낯선 검도와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박이화 시인 본명 기향(己香). 1960년 경북의성 출생. 대구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경운대학교 경호학과 대학원 졸업.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그리운 연어' 대표작으로 '나의 포르노그라피' '이화에 월백하고' '나의 홍살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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