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창고

일(日) 빈집 756만채… 뉴타운이 '고스트 타운'으로

bthong 2010. 12. 17. 12:21

 

[잃어버린 20년 일본(日本)에서 배운다] 일(日) 빈집 756만채… 뉴타운이 '고스트 타운'으로

[3] 거품 꺼진 부동산… 신도시 시대 끝났다
1.고령화·저출산 2.청년실업 4.재정 5.탈출구
조선일보·LG경제硏 공동기획
60~70년대 열풍 일었던 도쿄·오사카 주변 뉴타운 고령화·불황에 '텅빈 도시'
젊은이들은 싼 집 찾아 공장지역 몰리는 기현상

일본 오사카 센리(千里)뉴타운의 북쪽 지구 후지시로다이(藤白臺) 마을 모양은 방사형이다. 주거지와 녹지가 이상적으로 짜인 이곳 중심부에 도착하자 푸른색 진료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외과·내과 등 의원 6곳의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주민들이 '의사촌'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인근 시민회관에선 노인들이 노래방·댄스 모임을 열고 있었다. 입구에서 접수를 하고 있던 노인에게 의사촌에 대해 물으니 "지금은 내과·안과·소아과만 남았다"고 말했다. 9년 전에 이비인후과, 4년 전에 외과가 사라졌고, 치과는 2년 전 의사가 고령으로 눈이 어두워져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현재 진료 중인 내과 의사는 84세, 소아과 의사는 82세, 안과 의사는 76세. 소아과 의원은 지난 4월부터 진료일을 일주일에 나흘(종일 진료는 이틀)로 단축했다. 접수창구의 노인은 "기력도 떨어지고 손님(어린이)도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첫 신도시인 오사카의 센리뉴타운. 주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인 노인 도시로 변했다. /오사카=선우정 특파원

오사카 지역의 북쪽 센리뉴타운(1160㏊)은 일본에서 처음 조성된 대규모 신도시다. 영국 전원도시 모델을 도입해 일본 전국에 뉴타운 열풍을 일으킨 진원지로 꼽힌다. 1962년 입주를 시작해 48년이 흘렀다. 전성기였던 1975년의 인구는 13만명.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고령화율)이 3.5%였던 젊은 도시였다.

40년이 지난 이곳의 인구는 9만명으로 줄었다. 반면 고령화율은 29.9%로 높아졌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일본 긴키(近畿)지역의 고령화율(23%)을 크게 넘어선다. 어린이가 줄면서 1973년 개교한 기타센리(北千里) 초등학교는 작년에 문을 닫았다. 의사들의 고령화로 병원은 64곳에서 46곳으로 줄었다.

센리뉴타운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건설된 후지시로다이 지역의 고령화율은 32%. 10명 중 3명 이상이 노인이다. 주민 미시마 유키에(69)씨는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4, 5층까지 올라가기 어렵고 공간이 필요없이 넓어 말년에 도심 소형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노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뉴타운은 40대 가장의 4인 가족을 모델로 조성됐다. 그러나 가장은 늙고 자녀가 떠나면서 도시 전체가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근 부동산업체 중계인은 "노후 건물을 재건축하고 있지만 80㎡ 분양 가격이 4000만엔 수준이라 젊은 가족은 여전히 입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사카 지역의 동쪽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최대의 중소기업 지역인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중심부인 다카이다(高井田) 지역에 들어서니 공장 사이사이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오사카 공업지대의 '주공혼재(住工混在)' 현상이다.

고도성장의 막바지였던 1983년에 1만 곳을 넘긴 히가시오사카시의 공장은 현재 6000곳 정도. 장기불황과 엔화강세로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 틈을 아파트가 비집고 들어와 주거지와 공장이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공장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쾌적한 신도시는 비어 가는데 온종일 기계 소리가 요란한 공장 지역엔 사람들이 몰리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다카이다의 부동산 중계인은 "주거 환경이 안 좋은 만큼 집값이나 월세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히가시오사카의 80㎡ 규모 신축아파트 분양가격은 2300만엔 수준. 센리뉴타운의 절반 가격이다. 장기불황 이후 사회에 나온 젊은 가족들이 비싼 신도시 대신 싼 공업지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장기불황이 맞물린 결과다.

이런 기형적 현상은 지금 일본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1971년 센리뉴타운에 이어 일본 최대 규모(2226㏊)로 건설된 도쿄의 다마(多摩)뉴타운 역시 1990년대 이후 주민 고령화와 공동화(空洞化)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히가시오사카와 비슷한 규모의 도쿄 중소기업 밀집지역인 오타(大田) 지구도 공장과 주거지가 공존하는 '주공혼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주공혼재 (住工混在)

도시 한복판에 공장과 주택이 뒤엉켜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 한국의 경우 과거 서울 구로동과 성수동 같은 지역이 대표적이다. 출퇴근은 편리하지만 공해와 환경오염으로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 교육에도 불리하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면서 공장밀집 지역 주변에 대규모 주택지가 형성되고 있다.


◆공동기획·취재팀

〈조선일보〉
차학봉 특파원, 선우정 특파원, 유하룡 기자, 이인열 기자, 김수혜 기자, 방현철 기자, 염강수 특파원, 이성훈 기자, 곽창렬 기자, 박승혁 기자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이근태 연구위원, 김형주 연구위원, 강중구 책임연구원, 윤상하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