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보

“아부는 이제 능력이다”

bthong 2007. 4. 2. 11:24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모임의 연설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노 대통령의 모습은 유사한 상황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과 많은 대조를 보인다.

클린턴은 누군가 질문을 하면 손으로 마이크를 감싸고, 한쪽 귀를 질문자에게 돌리면서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손으로 마이크를 감싸쥐는 것은 질문자의 말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양미간을 모으고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고 질문자의 의도를 십분 이해한다는 듯 눈길도 그윽하다.

정치를 ‘유권자에게 아부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을 때 클린턴은 ‘아부의 기술’을 아는 사람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새로운 전위적 ‘아부의 기술’을 개발하는 인물일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 편집장 출신인 저자는 아부를 과학적, 역사적으로 풍부한 사례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 21세기에 생존을 위한 자본과 기술로 파악했다.

아부는 사람의 허영심을 향해 날아와 꽂히는 열추적 미사일이다. 허영심처럼 사람의 보편적 특성도 없다. 아부는 빗나가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아부의 미사일을 맞기 위해 기꺼이 일어서기 때문이다.

아부는 일종의 진리 조작으로, 진짜 의도를 숨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부는 사람들이 거의 문제 삼지 않는 진실을 확장시켜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아부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하는 전략적인 칭찬으로 자기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높이는 현실 조작이다. 이 조작은 때로 지나치게 과장될 수도 있고, 정확할 수도 있으며, 진실일 수도 있다. 진정한 칭찬이 최고의 아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저자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개진한 아부에 대한 개념 확장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아부를 유인원 시절부터 존재해온 유전적 행위로 보고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부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고대, 중세에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정의됐다. 그러나 개인적 활동이 활발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상당히 완화돼 ‘애교 섞인 결점’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대에 이르러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허영심이나 자긍심을 높여주는 행위, 자기 만족을 주는 행위, 명예가 높거나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만드는 행위’로 크게 비판적이지 않다. 최근 옥스퍼드사전은 ‘일종의 도덕적 이완, 굼뜬 무심함’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라고까지 말하며 아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피라미드를 죽은 후까지도 아부하는 강자에게 바치는 고대의 아부로 봤다. 우상화 역시 고대의 아부형태다. 종교의 독점적 아부를 분석하고, 대중에게 아부하는 그리스문화, 아부하지 않는 듯 아부하는 플루타르크식 로마의 아부문화 등 다양한 유형을 분석했다.

가장 강렬한 아부는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눈에 ‘콩깍지’가 씌기도 한다. 저자는 고대 음유시인에서부터 셰익스피어, 현대의 영화 ‘타이타닉’ 등을 통해 그것을 보여줬다.

권력과 아부는 통한다. 유인원 시절부터 구약시대, 고대 이집트를 거쳐 현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르기까지 왕, 족장, 두목, 최고경영자 등 힘을 지닌 우두머리가 있는 ‘궁정’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 궁정에는 아부가 있게 마련이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을 마음대로 주무른 아부꾼이고, 몽테뉴는 역설적인 아부의 대가이며, 베이컨은 아부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인 실용주의자이고, 영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체스터필더 경은 아들에게 아부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

신대륙 미국에서 아부는 투명하고 직설적이어서 아부고 뭐고 할 게 없었다. 그러나 노예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워싱턴은 미국식 아부의 원형을 제공했고, 독립전쟁 당시 소박한 모습으로 화려한 외교전을 펼친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식 아부의 전형을 만들었다. 해밀턴과 에머슨, 휘트먼은 미국식 아부를 확실히 발전시켰다.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모든 이에게 아부하는 미국식 아부’를 세계에 소개했다.

진실하고 성실한 20세기형 아부는 친구를 얻고 사람을 얻는 기술임을 강철왕 카네기는 몸으로 보여줬다. 현대에 이르러 아부는 학문적 영역에 올라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다양한 모색이 진행되고 있고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일반에게 꽤 알려진 학문적 성과도 내놨다. 21세기의 아부는 이제 능력과 자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연스럽고 세련된 것’을 아부 기술의 요체로 보고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아부의 기술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애써 찾아라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너무 멀리 나가지 않도록 체크해라

▲특별한 점을 칭찬하라

▲충분히 칭찬 받은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를 치켜세워라

▲‘최고야’ ‘엄청나군’ 등의 칭찬은 절대 하지 말라

▲비교는 결코 나쁘지 않다

▲‘생각보다 좋군요’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말라

▲근거 없는 칭찬은 금물

▲여러 사람에게 같은 칭찬을 되풀이하지 말라

▲칭찬할 때 좋지 않은 면도 살짝 언급하라

▲상대방이 솔직함을 요구하더라도 절대 솔직하게 답하지 말라

▲의견을 따르되 모든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지 말라

▲미소를 지으며 칭찬하라

▲처음에는 약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게 칭찬하라

▲비밀을 말하라

▲조언을 구하라

▲놀려 먹고 약을 올려라

▲가벼운 부탁을 하라

▲약점을 파악하고 전혀 반대되는 자질을 칭찬하라

▲평소 칭찬과 친절을 저축하라

▲사장이나 이사에게 ‘대단히 뛰어나다’고 칭찬하지 말라

▲아랫사람에게 ‘대단히 뛰어나다’고 칭찬하라고 권했다.

저자는 또 적절하게 아부를 받는 기술도 잊지 않았다. ‘아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나, 완전히 감동 먹었어’ ‘내 장례식장에서 그런 소리 들으면 여한이 없겠다’ 등으로 감사표현을 하거나 ‘말도 안돼’ ‘쓸데없이 뭔소리야’라고 시치미를 떼든지, 웃음으로 침묵하든지, 아니면 무시하되 아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라고 지적했다.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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