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한창 급등하던 며칠 전 한 은행 간부가 도대체 주가가 언제쯤 떨어질 것이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는 은행의 운용담당자들이 주가가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해 물량을 상당히 줄였는데 주가가 계속 치고 올라가자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해 체면이말이 아니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최근 증시 주변에선 적지 않은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는 누가 대박을 냈다는 등 기분 좋은 얘기가 많다.
그렇지만 그 중에는 상당히 전문가라고 인정받던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경우도 들려온다.
대부분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는 새로운 세계를 가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2월 사상 최고치를 넘어선 뒤 일시 조정을 거치나 했더니 이내 수직상승해 1700대에 안착했다.
지난주 말 일시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시장의 힘은 매우 강하다.
외국인들이 무더기로 내던지는 상황에서도 일반인들이굳건히 지키내는 모습에 전문가들조차 겁이 난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발 악재, 중국발 악재가 쏟아져도 순식간에 극복된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개인투자자들이 조정론을 무색케 하고 있다.
'수급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증시 격언이 딱 맞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적립식 펀드에 매일 같이 들어오는 자금을 감안할 때 지금 투자자들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양호한 수급구조를 바라보는 심정이 마냥 느긋하지만은 않다.
과거 유사한 상황에서 나왔던 당국의 대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증시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유동성 과잉상태에 접어들었다.
며칠 전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월가에서 며칠 전까지 만연했던 금리인하 전망이 쑥 들어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부동산으로 가는 자금을 꽁꽁 묶어 놓은 상태에서 통화량이 급격히 늘었다.
2004년 1월 4.54%에 불과했던 광의유동성 증가율은 지난 2월엔 11.32%로 증가했다.
금융기관 유동성 증가율도 같은 기간 4.19%에서 10%로 높아졌다.
걱정이 되는 것은 과거 통화증가율 그래프가 우연인지는 몰라도 정권의 임기와 맞물려 돌아갔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 급격히 줄던 통화증가율은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말기로 갈수록 급격히 높아졌다.
이후 대선이 끝나면서 급감했던 통화증가율은 탄핵공방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참여정부 말기로 갈수록 급격히 늘어났다.
금융을 잘 모르더라도 이 정도 경험이라면 통화당국이 다음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우려는 이 같은 통화증가율이 경제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다.
통화증가율은 전경련의 기업실사지수 흐름과 대부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기관은 경기순응(procycli cal)인 속성을 갖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 돈을 더 풀고, 반대로 경기가 나쁠 땐 돈줄을 당겨 경제를 더욱 엉망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것을 막는 게 통화당국의 일이다.
과거 돈이 많이 풀렸을 때 통화당국의 대응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
카드사태는 그 중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한국은행이 밝혔듯이 최근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다.
그런데도 통화증가율은 아직 높은 수준이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돈이 풀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셈이다.
최근 증시를 지켜보면서 통화당국의 다음 대응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디 당국이 과거와는 다른 통화정책을 보여주길 고대한다.
물 흐르는 듯한 자금흐름을….
투자자들이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는 증시 격언을 되새기게 되더라도 통화정책을 탓하지는 않게 되기를 바란다.
[증권부 = 정진건 차장 boran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