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정식의 숨은 보석
- 오태진 기자 tjoh@chosun.com
입력시간 : 2008.01.23 22:39
- ::: 전주 다가동 '만성한정식'
식도락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지만, 대개 여행지 먼저 정하고 음식점을 수소문하는 게 순서다. 거꾸로 음식을 즐기기 위해 행선지를 잡고 일정을 짜는 여행도 있다. 그런 음식여행, 특히 당일 맛기행에 맞춤한 고장이 전주다.
서울서 전주까지는 200㎞,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휴일 아침 일찍 나서면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풀 수 있다. 한옥마을 같은 곳을 끼니 사이에 둘러보며 점심엔 비빔밥, 저녁엔 한정식이나 백반으로 하루 혀가 호사한다. 민물고기뚝배기 오모가리탕, 막걸리 한 주전자 시킬 때마다 공짜 안주가 이어지는 막걸리골목, 가게나 수퍼에서 독특한 안주에 맥주를 파는 '가맥', 돌솥밥, 국수…. 싸고 맛난 전주 음식들을 순례하려면 사실 2박3일도 짧다.
전주 음식 명소 중엔 외지에는 덜 알려졌어도 전주 사람들이 더 높게 치는 곳들이 있다. '만성한정식'은 '전주 3대 한정식집'에 들진 않지만 지역 인사들이 으뜸으로 꼽는다. 구색만 맞추는 접시 하나 없이 정말 맛깔진 것들로만 딱 한 상을 차린다. 그래서 덜 화려해 보여도 하나하나 맛볼 때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 ▲ 전주 만성회관 한정식
- 4인상 12만원짜리를 시켰더니 요리와 탕 15개, 반찬 15개쯤이 올랐다. 동치미 국물부터 한 숟가락 뜨니 입에 찰싹 붙는다. 간이 딱 맞다.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키거나 탄산음료를 넣어 급조한 게 아니라 장독대에서 자연스레 익은 듯 맛이 깊다. 육회는 생고기를 버무려 부드럽고 양념이 잘 배 있다. 뚝배기 가득 푸짐한 갈비찜은 달착지근하지 않고 집에서 해먹듯 절제된 맛이다. 신선로도 국물이 탁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깨끗하다.
다진 산 낙지, 전복회, 새조개회, 생굴, 소라무침, 낙지볶음, 간장게장, 마른 굴비, 홍어찜, 더덕구이도 건성 아니다. 다슬기탕은 초록빛이 진하다. 국산 중에서도 좋은 다슬기를 써야 그렇단다. 흙냄새 물씬한 민물새우 토하탕에 생대구 맑은탕, 소금 간만 한 콩나물 냉국도 깔끔하다.
반찬에선 진석화젓이 돋보인다. 굴을 독에 염장해 서늘한 곳에 3~4년 두면 잘 녹아 검은 빛을 띤다. 굴은 삭아서 보이지 않고 굴 향기만 남아 입맛을 돋운다. 생조기도 2년쯤 소금에 절여 두면 곰삭아 불그스레해진다. 이날 상에 오른 것은 1년 돼 덜 삭은 조기젓갈이라 조기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짭짤고소한 게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밥과 함께 청국장, 시래기된장국에 시래기지짐이 나왔다. 시래기를 된장에 주물러 멸치 넣고 은근한 불에 오래 지져 부드럽고 구수하다. 상을 받는 순간부터 물릴 때까지 줄곧 '바로 이런 게 먹는 행복이구나' 싶다.
정갑순(59)씨는 한정식 명가 '백번집'에서 20년 일하다 이 집을 사들여 꾸린 지 13년 됐다. 매일 아침 남부시장에서 장봐 온 물좋은 재료들로 가족 밥상 보듯 차린다. 그러니 늦어도 하루 전 예약하는 게 좋다. 4인 기준 12만·14만·16만원 상. 점심에 두어 사람이 오면 양을 조금 줄여 10만원 상도 낸다. 상 여덟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큰방을 비롯해 방 5개. 한복차림 종업원이 상머리 시중을 드는 게 조금 거북할 사람도 있겠다.
전주IC에서 팔달로를 따라 도심으로 오다 고속버스터미널쪽으로 우회전한 뒤 서쪽 천변길을 15분쯤 남하, 다가교에서 좌회전해 오른쪽 '전주 차이나거리' 문 들어서면 오른쪽 첫골목. 15대분 주차장. 설·추석에만 사흘씩 쉰다. (063)232-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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