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 번(Bun) 열풍 | |||||||||||||||||||||||||||
말레이시아산 빵이라 카더라! | |||||||||||||||||||||||||||
요즘 경상도 지역은 번(Bun) 열풍에 빠졌다. 번 하면 아직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이 많다. 번은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빵의 일종이다. 국내에 소개된 지 1년에 불과하다. 지난해 3월 로티보이가 서울 이대에 직영점을 낸 데 이어 파파로티가 4월 분당 수내동에 1호점을 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안테나숍으로 운영되다가 본격 가맹사업을 시작한 게 지난 여름부터다. 이제 막 6개월이 지났지만 국내 어느 신생 프랜차이즈보다 인기가 높다.
그런데, 그 창업 열풍이 서울이 아닌 경상도 지역에서 불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 본사까지 올라와 직접 가맹을 부탁하기가 예사다. 벌써 지방 점포만도 100여개에 이른다. 도대체 번이 뭐기에 경상도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걸까. 한국 상륙 1년 새 매장 150여개 성업 중 번은 영국 사람들이 즐겨 먹던 둥근 빵을 말한다. 우유와 버터를 기본으로 건포도와 호두 등을 넣어 만든다. 달고 부드러운 모닝빵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햄버거 빵도 알고 보면 번에 속한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번은 이와는 좀 다르다. 국적이 영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와 홍콩이다. 이 두 나라는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다. 번의 맛과 제조법이 크게 다를 리 없다. 버터가 들어간 반죽을 발효시킨 후 즉석에서 굽는 게 기본이다. 다만 그 위에 커피 크림을 토핑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 번 가게 근처에만 가면 구수한 커피향과 고소한 버터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따로 멕시칸번 또는 커피번이라고 부른다.
멕시칸번이 현재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것은 98년 말레이시아에서다. 말레이시아인인 히로 탄(Hiro Tan)씨가 로티보이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로티(Roti)는 현지어로 빵을 뜻한다. 번의 담백하면서도 달콤 짭조름한 맛이 인기를 타면서 일약 국민 빵으로 떠올랐다.
조준환 로티보이코리아 과장은 “매장 한 곳에서 하루 2만개 이상 팔리고 1인당 10개 이상 못 사게 할 만큼 인기”라고 전했다.
로티보이는 자국 인기에 힘입어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확산됐다. 해외 사업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회사 측에선 그동안 5억개 이상의 번을 팔았다고 밝힌다. 자연히 유사 브랜드도 생겨났다. 파파로티가 대표적이다. 이 두 브랜드는 현재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한국 시장에서 주도권 싸움을 펼치고 있다.
로티보이와 파파로티 양강 체제 번이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프랜차이즈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다.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번을 판매하는 곳은 다 합해도 3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국내에는 불과 1년 새 150여곳 이상의 번 점포가 출점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로티보이, 파파로티를 비롯해 로티번, 로티맘, 빵뜰리에 등 6개의 번 전문 브랜드가 등장했다. 에스프레소 전문점인 티하임에서도 번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시장은 로티보이와 파파로티가 양분하고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각각 56, 53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본사는 둘 다 서울에 있다. 수도권만 따져보면 로티보이는 직영으로 운영하는 이대 1호점을 필두로 16개 점포를 갖고 있고 파파로티는 최근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성하면서 매장 수를 12개로 늘렸다. 비율로 보면 지방 점포가 전체 매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지방 점포가 모두 경상도에만 집중됐다는 점이다. 로티보이, 파파로티 모두 부산, 대구를 중심으로 20개 이상의 점포를 냈다. 왜 그럴까. 회사 측은 두 가지로 설명한다. 경상도 지역이 물류공급이 쉽다는 것과 몇 년간 이 지역에서 성공한 프랜차이즈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소영 파파로티코리아 사장은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먹을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색적인 아이템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높다”고 말했다.
이 설명으론 부족하다. 번이 빵 종류인 것을 감안하면 이와 유사업종인 베이커리 전문점도 늘어나야겠지만 이 숫자나 증가율은 서울이 지방보다 높다. 대구 동성로에 1호점을 낸 파파로티 점장은 번 특유의 모카향을 이유로 든다. “기존 베이커리전문점은 매장 안에서라야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번은 즉석에서 굽기 때문에 냄새가 매장 밖에서도 난다. 더욱이 지방은 중심상권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한번 입소문이 나면 빠르게 유행을 탄다”고 말했다. 지방의 싼 임대료도 가맹 확산에 기여했다. 본사가 전략적으로 지방 출점을 확대했다. 신생 브랜드로 서울 수도권의 비싼 상권에 들어가는 것보다 지방의 목 좋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조준환 과장은 “서울은 66㎡(20평) 규모의 가게라고 해도 임대료까지 하면 3억원이 더 들지만 지방은 2억원 내로 충분히 창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진출 등 성공여부는 아직 확신 못해 번의 인기가 얼마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올해까지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로티보이와 파파로티는 올 가맹점 수를 160개, 100개로 각각 잡았다. 점포가 경상도에만 있는 것을 감안하면 물류센터만 확보되면 가맹은 시간문제다. 문제는 유사 브랜드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과 품질 저하다. 비슷한 경우가 이미 해외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최소영 사장은 “싱가포르나 홍콩의 경우 번이 크게 인기를 끌다가 유사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시장이 죽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로티보이가 원조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로티보이와 파파로티는 각각 싱가포르와 홍콩에 법인을 두고 있으며 두 회사의 공장은 모두 말레이시아에 있다. 이 두 브랜드를 제외하곤 모두 국내 브랜드다. 번에 대한 맛이 주관적이다 보니 맛에 대한 평가도 각각 다르다. 원조인 로티보이보다 후발 브랜드의 맛이 더 낫다는 평가도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다.
번이라는 단품의 한계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로티보이에선 토핑과 크림에 따라 4가지 종류의 번을 내놓았지만 맛이나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파파로티에선 한 종류의 번만 판다. 기존 베이커리 업체에서도 번과 유사한 제품이 이미 나왔다. 파리바게트는 지난해 말 번과 형태가 유사한 유에프오(UFO)빵을 내놓았다. 번 회사들은 “매장에서 직접 구운 번과 맛에 있어서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대형 베이커리 업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만은 없다. 마지막으로 재료를 모두 수입한다는 것도 문제다. 두 브랜드 모두 생지와 버터 등 맛을 좌우하는 주요 식자재를 말레이시아 현지 공장에서 직수입한다. 밀가루 가격 상승은 말레이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로티보이는 기존 1500원 제품을 1800원으로 올렸다. 【 카페 번 창업 비용은 】
◆ 임대료 제외 1억2000만원 안팎
= 번 프랜차이즈를 하려면 임대료를 제외하고 순수 창업 비용만 1억원이 넘는다. 49㎡(15평) 기준으로 로티보이와 파파로티는 각각 1억1000만원, 1억2000만원(가맹비 포함)이 든다. 소자본 창업은 아닌 셈이다. 로티보이가 원조를 주장하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파파로티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두 브랜드의 매장 콘셉트와 운영방식은 사뭇 다르다. 로티보이는 번(4종류)과 음료(40여개),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메뉴가 특징이고 파파로티는 번(1개), 음료(3개)로 메뉴가 단출하다. 가격도 로티보이가 1800원, 파파로티가 2000원으로 로티보이가 더 저렴하다. 로티보이는 세트로 먹을 경우 3300원(번과 커피)이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매장 분위기와 인테리어 콘셉트는 파파로티가 다소 앞선다는 평가다. 향후 메뉴와 매장을 프리미엄 카페 형태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최소영 사장은 “주요 식자재와 인테리어를 독일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국내 어느 곳에서도 카피할 수 없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
[김충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51호(08.04.16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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