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내세에 대하여
1. 죽음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잇는 기(氣)가 점차 위로 상승한 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 에는 다리에 있어서 장난치고 노는 것,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청년기에는 단전 아래에 기가 모여 이성 관계를 좋아하며, 중 년이 되어서는 위장에 기가 모여 식도락가가 되며, 노년이 되면 입에 기운이 집중되어 남의 말을 자주하고 다투곤 한다는 것이다 . 그 다음에는 머리 위롤 기가 지나가면 결국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인생이란 위를 향해 나아가는 존 재이다. 그리스어로 사람은 "위를 향한 존재"(ANDROPOS)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을 향해 다가오는 하 나의 우주적 과정이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사랑하고, 나누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일만 존재하지 않는다. 괴롭고 슬프거나 기가 막 힌 일들이 늘 벌어지기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죽음은 영원을 믿지 않는 자에게 불행이고 고통이다. 반면 죽음은 불멸을 믿고 새로운 생활을 기다리고 있는 자에게는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만일 죽음에 고통이 수반되 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하여 앞다투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가지 않도록 우리들에게 보내 어진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고뇌를 통하지 않고는 죽음으로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라 하였다.
죽음이 과연 저주인가 축복인가? 최근 병든 노모(老母)를 모시다가 어쩔 수 없이 살해했다는 칠순 노인의 신문 기사를 읽으며 죽음 의 의미를 심각하게 재고하게 된다.
인생에게 경외감을 주는 두 순간은 바로 출생을 바라보는 순간과 임종을 지켜보는 순간이다. 우리가 금방 태어난 생명을 안아 보거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의 손을 붙잡아 볼 때 느끼는 근본적인 경각심 곧 생명의 귀중함이다. 그러나 인간이 출생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여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인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인간은 예로부터 생명 에 강한 집착을 가진 존재로써, 불로 장수를 꿈꾸어 왔으나 인간에게 이 생로병사( 生老病死 ) 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다 .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의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명의 연장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점차 노년 사회로 바뀌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인생의 연장은 또 하나의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죽음을 다음의 몇 가지로 말했다. ① 죽음은 확실한 것이다. (이 땅에서 죽음을 이긴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분명히 죽으니까),② 죽음은 불확실한 것이다.(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정한 이치에 따라 시간대에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이 죽은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③ 죽음은 절대로 혼자 맞는 것이다. (죽음은 어떤 동료와 더불어 맞이 하는 게임이 아니다. 간혹 징기스칸과 같이 부부가 같은 날 동시에 잠자리에서 사망한 경우도 있다.) ④ 죽음은 대신할 수가 없 다. (죽음은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으며, 잠시간의 연장은 오히려 인생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인간은 그러므로 죽음과 끝을 향한 존재(Being towards death and the end)라고 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핵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남들보다 많기에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고령과 죽음은 항상 동일한 것이 아니다.( 1985년 전체 사망자의 통계에서 보면, 60세 이상의 노년층은 5 5.9% 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사회적인 과정 속에서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사회에서 활약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생의 의미가 단지 살며, 사랑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고 성공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 가 다른 것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이는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또 다른 이는 혁명적인 과격한 태도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상황을 성찰할 줄 아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 바로 신비 속에서 사는 것이며, 늘 자신을 개발하고 새롭게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혁명적인 삶이다.
2.. 생명에 대한 네 가지 전제
죽음에 대한 성서적 이해는 생명에 관한 네 가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심리학적 전제(心理學的 前提)이다. 인격은 모든 부분과 요소를 포함하는 생명력(히브리어로 네페쉬)의 중심이다. 반 면에 죽음은 그러한 생명력의 중심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력의 붕괴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는 것 같이 않게 사 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인 죽음은 신약성서의 삭개오 이야 기에서 잘 드러난다. 삭개오는 그 시대에 유대인의 세금을 거두는 악덕 인사였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인을 위한 세금수거자로써 민족적 반역자로 취급당하였을 것이다. 그런 사회적 매장 속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그는 유대인들에게서 사 람으로 취급받기보다는 로마인의 개요, 돼지 정도로 욕을 들으며 살았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올바른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그 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의 부르심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이야기이다. "너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을 사람 대접하 는 그는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둘째 사회학적 전제(社會學的 前提)이다. 인간의 생명은 공동체의 구성 요원이다. 반면에 죽음은 공동체 내에서 구성 요원의 자 격과 역할이 완전히 상실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죽음은 성서의 나병환자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참으로 유대 사회에서 소외당한 자들이며 성안으로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폭력에 의한 상해에도 법적인 권한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나병환자를 치유하 여 사회로 환원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바로 사회복지의 실현이다.
셋째 신학적 전제이다. 생명은 관계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갖는 공동체 속에 있는 구성 요원에 관심을 갖는다. 생명 은 그 언약을 존중하며 즐거워한다. 반면에 죽음은 그러한 관계의 상실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돈과 관 련시켜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돈없는자는 교회에 가기 힘든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예 외면하기까지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 은 신앙적인 실천이 아직 사회를 안아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줌으로써 이 세계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들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신학적 케노시스이다.
넷째 역사적 전제이다. 생명은 사회적.세속적.정치적.공공적인 용어로 이해된다. 그러나 죽음은 이러한 결단을 요구하는 관계에 참여할 수 없다. 최근 싱가포르의 전총통이였던 李光耀씨는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성인들에게 2개의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여당 에 촉구하였다. 이는 싱가포르의 미래인 어린이를 포함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회인들은 그들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투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경실련 주최 사회복지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평가는 세계 122위로,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복지 정책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있어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이룩하기 위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생명 존재인 것이다.
3. 노년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성찰
(1) 분주함의 상실
일상 생활의 특징 중에 하나는 대단히 바쁘다는 것이다. 성서연구의 시간, 각종 세미나 참석, 학회모임, 예배의 참석, 컴퓨터 강좌 등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그 활용을 논하기에 앞서 정신없이 지나가는 현실 앞에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질문하면서 신약 성서의 마르다란 여인과 같이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눅
(2) 공허함
뿐만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어!" 하는 자신에 대한 권태가 자신을 무기력감으로 이끌게하고, 고독함과 공허 감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고독에 바지게 될 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사람은 없습니까? 나와 함께 편안하게 지낼수 있 는 사람은 없습니까? 나의 내면의 고립감을 없애줄 사람은 없습니까? 나에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하고 자신과 타인들에게 묻게 된다. 이러한 공허함에 바지게 되면 친구나 연인 혹은 종교적 공동체를 찾게 되는 경향이 강해지거나 이 것이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공허함은 자아에 대한 단절감을 나타내는 데 이러한 것들은 바로 권태와 고독, 분노와, 우울함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앙으로 이러한 내면의 공허를 극복하고 자신을 새롭게 정립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 리는 성서에서 그러한 내적인 공허함에 빠진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요한복음 4장)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예수께서는 생수가 되어주시지 않는가! 그럴 때에 사람은 살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자 청년은 에수에게 영생의 도리를 물어왔으나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그 명령에 걸려 근심하며 돌아가지ㅏ 세리장 삭개오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부정하게 빼앗은 것을 다 돌려주고 그 4배로 되돌려주지 않는가! 공허감의 상실을 채워주는 이가 누구인가!
(3) 사별과 슬픔
특히 노년에 있어서 배우자의 상실은 충격적인 슬픔을 동반하게 된다. 사회 심리학자 홈스 박사(Dr. Thomas Homes)에 의하면 스 트레스 평가기준이 있는데 각 스트레스 원인의 점수를 더하여 50이하면 별문제가 없지만, 150점 이상이면 51%가 병에 걸릴 가능 성이 높으며, 300점이 넘으면 80%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배우자의 죽음이 100점으로 가장 높 은 것이며 별거 63점,부상 53점, 은퇴 45점, 경제 사정변경 38점,가정불화 35점, 자녀의 가출 29점, 개인 습관의 변경 24점 등이 다. 특히 배우자와의 사별에서 나타나는 무제는 신체적, 정서적, 지적인 슬픔이 나타난다.
① 신체적: 숨가쁨, 한숨, 가슴조임, 공허감, 기력의 상실, 근육의 무력감.
② 정서적: 분노, 죄책감, 우울함, 불안 및 죽은 자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힘.
③ 지적 : 죽은 자의 추억을 정화(淨化)하고, 좋은 것만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사별이후에는 게속적인 충격과 사회 활동의 축소를 포함한 신체적 변화(수면, 식욕, 체중의 감소)를 동반한 슬픔의 과정 이후 삶에 대한 전환이 다시 일어나는 것으로 정상적인 생활에로 복귀된다. 노년기는 삶을 정화시키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가 능성이 높은 시기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 사이 분만 아니라 그 가족과 사회에서 신뢰, 의지, 확신,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4.
죽음에 대한 과정적 성찰죽음이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죽음의 문제나 사후의 문제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에게 죽 음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나타나는 데 어떤 경우에는 동시적으로 혹은 두,세단계가 혼합되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죽음에 직면한 다음 단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① 첫 단계는 죽음에 자신을 내어 맡기기를 거부하고 부정하여 스스로 고립 상태에 빠지는 부정의 단계이다.( denial and isola tion)
② 둘째 단계는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여 더이상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분개하고 절망에 바지는 단계이다. (anger a nd resentment)
③ 세째 단계는 절박하게 다가온 죽음을 초인적 능력이나 의학, 또는 신과의 타협을 통해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는 단계이다.(ba rgianing and attempt and to postphone)
④ 네째 단계는 체념과 절망이 뒤섞여 우울증이 나타나는 상실감을 느끼는 단게이다. (depression and sense of lose)
⑤ 마지막 단계는 수용의 단계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순응하게 되는 단계이다. (acceptance)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향으로 갖는다. 즉 인간에게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또 죽음은 인간의 자연 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있지 않기 때 문이다. 키에르케고르(SÖren Kierkegaard)는 "죽지않는 것은 심판이다." 라고 말하는데 바로 죽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 있어서 천국과 지옥은 영적인 현실(reality)이다. 또한 그것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의 마음의 상 태이기도 하다.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노년의 시기를 어떻게 아름답게 보내고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의 답례를 할 정도로 용기있는, 그리고 성숙한 죽음을 만날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여 장례식 참석자에게 인사장 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의 과정을 준비하는 삶은 참으로 지혜로운 다섯처녀와 같다. 이러한 예비는 부유층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자녀가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 꼭필요한 것이다. 가족간의 유산쟁탈전이나 소외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으며 사후에 법적인 효력을 발생한다. 언제 끝 날지 모르는 삶을 아름답게 마치기 위하여 미리 유언장을 써두는 것도 죽음을 대비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유언장 방식에는 ① 자필증서,② 녹음, ③ 공증증서,④ 비밀증서,⑤ 구수(口授)증서-대필 가 있으며, 법적인 효력을 갖추기 위 해서는 유언자 본인의 이름, 주소, 날짜가 명기되고 인감도장이 찍혀 있어야 한다.
4.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영원한 생명에의 신앙은 죽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말해주고 있다. 죽음은 두려운 무엇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위한 첫발일 뿐이다. 현실에 주어진 고통이 너무 심하여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삶은 현실이며, 죽음 또한 미래의 현실 이다. 노년이란 시기는 인생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이다. 많은 지혜와 노련함,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해줄수 있으며, 과거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그러한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인생은 축하하고 경하 받아야 할 귀한 것이다. 자신의 생을 자신이 가진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생 각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나 음악이나 운동을 즐기는데에만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년의 현재를 긍정하며, 과거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여,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기대를 하게 될 수 있는 완성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 에 순응해야한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그 생의 고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프란시스 같은 성인에 게는 새가, 인디언들에게는 나무가, 싯다르타에게는 강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명과 더 불어 삶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인간이 타인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경축하려면 자신이 자연에 순응하듯 인간의 소리에 순응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마 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더불어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년의시기에 읽기 좋은 책들은 아마도 성경의 잠언이나 채근담과 같은 저서들이다. 물론 그러한 것이 자신에게 심각한 장애가 되거나 부정적인 사건으로 비화 되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경축하려면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소리에 순응하여야 한다. 그것은 내면의 양심으로부터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는 생명의 축제에 참석하려는 시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생을 만물의 질서에로 다시 복귀시킬 때 죽음이란 단지 하나님의 품 속에서 인생들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안식이지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후에 안식 을 취하신 것과 같이 노년에 속한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와 유산을 아름답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참 된 평화가 될 것이며, 영원한 미래에 대한 예비가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장인협,
2.
3. 토마스 C. 오덴, 목회신학, 한국신학연구소,1986.
4. 다니엘 D.윌리암즈,사목자와 사목적 배려, 분도출판사,1983.
5. 헨리 J.M. 나웬,상처입은 치유자, 분도출판사,1985.
6. 성서대백과 사전, 성서교재 간행사,1981.
7. 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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