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 온 글들

힘센 수컷보다 돌볼 줄 아는 수컷이 이긴다

bthong 2008. 9. 27. 09:59

 

                                                힘센 수컷보다 돌볼 줄 아는 수컷이 이긴다 

 
 

원제는 '보살핌 본능(The Tending Instinct)'. 여기 이 책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인간은 좋은 먹이와 멋진 배필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과 각축한다. 동시에 인간은 자기를 희생하며 타인을 보살핀다. 투쟁이 본능이라면, 보살핌도 본능이다.

저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심리학과 교수다. 그녀는 "보살핌은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 막대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가령 2차대전 직후 어느 영국 학자가 독일에서 한 고아원에는 음식을 많이 배급하고, 다른 고아원에는 음식을 적게 배급했다. 영양 상태에 따라 아이들 발육에 얼마나 차이가 벌어지는지 측정하려는 실험이었는데, 결과가 예상과 정반대였다. 덜 먹은 아이들이 더 먹은 아이들보다 몸이 튼실했던 것이다. 조사 결과, 예상이 뒤집힌 원인은 고아원 원장에게 있었다. 후덕한 원장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덜 먹고도 더 자랐다. 박정한 원장에게 구박 받은 아이들은 더 먹고도 덜 자랐다.

이 책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은 사실 그 다음이다. 저자는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한 미국 심리학자가 각종 범죄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피해자를 도운 시민 32명을 심층 면접했다. 심리학자의 예상과 달리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위험을 무릅썼다"고 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의인'(義人)들은 대부분이 "나도 모르게 불쑥 한 행동"이라고 답했다.

희생 본능은 성별(性別)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 남자는 남을 대신해서 적과 싸우는 행동을, 여자는 남을 돌봐주는 행동을 주로 한다.

이처럼 본능의 발현이다 보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간혹 있다. 한 남성 운전자가 보행자를 치고 달아나는 트럭을 추격한 사건이 있다. 그는 뺑소니 트럭을 길가에 몰아붙여 멈추게 한 뒤, 엽총을 꺼내 트럭 운전사에게 겨누고 경찰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붙들어뒀다. 그러나 와중에 피해자는 숨졌다. 범인을 쫓느라 피해자는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보살핌 본능'은 왜 생긴 걸까? "타인을 돌보는 행동은 자신의 생존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것이 저자의 대답이다. 원숭이 사회에서는 가장 힘센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는 게 아니라, 힘이 그만 못해도 무리를 돌볼 줄 아는 수컷이 궁극의 승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기술을 가진 수컷은 암컷들에게 자신이 지배자가 돼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주석(註釋)과 참고문헌 목록이 113쪽 분량이다. 저자는 진화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연구 결과를 종횡무진 오간다. 학문에 별 관심 없는 독자에게도 재미나게 읽힐 것 같다. "관대한 행동은 높은 지위를 강화시켜준다" "적대감을 표출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적대감의 대상이 된다" 등 회사 생활에 도움 되는 문장과 실례가 속속 나온다.

 

                                                                                                       너와 나를 묶어주는 힘, 보살핌 셸리 테일러 지음|임지원 옮김


    (배경음악: Sylvie Vartan - La Reine De S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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