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teps, 1890 - Vincent Van Gogh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Words by John Howard Payne Music by Henry R. Bishop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 Which, seek through the world, is ne'er met with elsewhere.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An exile from home splendor dazzles in vain,
Oh, give me my lowly thatch'd cottage again! The birds singing gaily that came at my call; Give me them with the peace of mind clearer than all.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 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내 벗 내 집 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해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데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소프라노
합창곡
세계인의 애창곡 Home, sweet Home, 이곡은 1823년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 헨리 비숍이 작곡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미국의 극작가이며 기자, 문인으로 활동했던 존 하워드 패인이 노랫말을 붙였는데 영국에서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더 유명해진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부 연합군 1만2천명, 남부동맹군 5천명의 사상자를 낸 1862년 버지니아의 레파하녹크 리버 전투는 남북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유명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양쪽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양쪽의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 날 밤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북군의 군악대는 아주 특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 멜로디는 바람결의 새털처럼 전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그리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군인들은 사무친 그리움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이 멜로디는 강 건너 편에 있던 남부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습니다. 남부군 군악대도 덩달아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남부군도 다함께 합창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 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며 환호했습니다.
이 장면을 취재했던 프랭크 막심은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들 미쳤다'라고 말입니다. 노래 한곡 때문에 전쟁은 사라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즐거운 나의 집>의 멜로디는 서로의적대감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1823년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페인(1771∼1852)의 가사에 맞추어 작곡된 것으로 그의 오페라 《Clari, The Maid of Milan》에서 불린 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비숍 [Bishop, Henry Rowley ,1786.11.18~1855.4.30 ]
영국의 작곡가·지휘자. 런던 출생. 1810년에 코번트가든 극장의 작곡가·지휘자, 1813년에 필하모니협회(로열필하모니관현악단)의 지휘자 등, 여러 극장의 지휘자와 음악감독을 역임하였다. 또 옥스퍼드·에든버러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842년에 나이트가 되었다.
100곡이 넘는 무곡을 남겼으며, 작풍은 시대를 반영하여 중후(重厚)한 맛이 덜한 반면,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가 없다.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과 W.셰익스피어의 시에서 딴 《보라 정다운 종달새를》 등이 유명하다.
‘즐거운 나의 집’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익히 부르고 듣는 노래이다. 우리에게도 음악교과서에는 빠질 수 없는 곡으로 만인이 알고 있는 이 곡은 작곡가 비숍의 ‘밀라노의 아가씨 클라리’라는 오페라에서 선율이 나온 곡이기도 하며 또한 이 선율에 가사를 붙인 사람은 미국의 극작가이며 기자였던 존 하워드였다.
조용히 선율을 감상하여 본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음악의 구슬픔을 잘 느낄수 있을 것이다. 또 지금 이야기할 내용에 대해서도 특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잔인하게 많은 인구에게서 평화를 빼앗아갔던 남북전쟁은 북부 연합군 1만2천명과 남부 동맹군 5천명의 사상자를 낸 버지니아 주의 레파하녹크 리버 전투를 잊을 수 없다.
이 전투에서 각 양쪽의 군사들은 강하나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위하여 대치하고 있었다.
낮에는 서로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들을 다치고 죽었으나 밤이 되면 군인들을 위로하며 힘을 북돋워주기 위한 음악회가 매일 열렸다.
하지만 어느 날 밤의 북부 연합군의 연주회.. 연주회에서 흐르던 음악 소리에 고향을 그리워하던 군인들은 텐트에서 머무를 수가 없었다. 모두 밖으로 나와 선율에 귀를 귀울이게 된 것이다.
이 선율은 강 건너의 남부 동맹군에게까지 전해져 갔다.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를 그리워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던 군인들은 강을 헤쳐 서로가 적이라는 사실을 잊은채 서로를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안고 손잡으며 ‘즐거운 나의 집’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찔러 죽이며 대적하였던 이 곳은 조국과 동포애로 남아 고향의 평화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준 것이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31년이 지났을 때,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이송해왔다
유해를 실은 군함이 입항하는 순간,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환영 퍼레이드를 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은 환영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을까
그가 작사한 단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 가사가 미국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작사한 존 하워드 페인이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근본이 되는 '가정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 금, 은, 보화, 보물, 물질, 권력이 많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가정의 행복만이 진정한 최고의 행복이다.
숲속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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