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지진
- 일시 2011.03.11(금) 오후 2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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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사람들에게 지진은 일상이다.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지만 규모 4~6을 넘나드는 지진을 숱하게 겪어 넘겨온 탓이다. 이 지역에 지진이 잦은 이유는 인접한 태평양 근해에 지질학자들이 붙인 별칭을 보면 알 수 있다. 연안이 유라시아와 태평양, 필리핀해 지각판들이 맞물리는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인접해 있어서다.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장은 11일 "진앙지인 일본 북동부 해안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 침투해 들어가는 판경계(interplate) 지역이라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혼슈 동북부에 위치한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아키타 야마가타 후쿠시마현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지진이 이 불의 고리에서 발생했다. 2008년 6월 14일 이와테 미야기현에서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도 이번 지진의 진앙에서 가깝다.
환태평양 지진대를 뜻하는 불의 고리는 대륙판들의 경계지역으로 지각이 매우 불안정하다. 지각판이 서로 맞물려 있다가 마찰력만으로 지탱하지 못할 경우 바로 미끄러지면서 지표면이 갈라지는 지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 '불의 고리'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 그동안 잠잠했던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서 화산 폭발과 지진 활동이 점차 증가하면서 이번 일본 강진 규모에 맞먹거나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번 강진을 앞두고 문제의 혼슈 북동쪽 해역에서 지난 9일 이후 규모 3~5 안팎의 소규모 지진이 17차례나 관측됐다는 것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지난 6일 이바라키현에 고래 50여 마리가 밀려와 강진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설이 인터넷으로 확산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도 향후 30년 내 수도 도쿄를 포함한 간토(關東)지역에서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에 달한다고 경고해 일본 내 대형 지진 발생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대지진의 근원 '판구조운동'… 지구 체온 유지시켜주고 석유 만들어
우주에서 본 지구는 5대양 6대주지만 이들 대륙과 바다는 사실 17개의 움직이는 판(板) 위에 떠 있는 존재다.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발생하며 산과 산맥이 솟아오르고 해저 바닥이 갈라지는 현상이 모두 움직이는 17개 판의 경계를 따라서 일어난다. 판구조운동이 만들어낸 거대한 산맥과 해령(海嶺·해저 계곡)은 태양계 행성 중에서 오직 지구만이 가진 독특한 지형이다.
일본 동북부를 초토화시킨 이번 대지진을 촉발한 것도 판구조운동이었다. 일본 아래에서 움직이는 4개의 지각판 가운데 북미판과 태평양판이 충돌, 히로시마 원폭의 5만배나 되는 격렬한 파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판구조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온 일본은 2003년 해저 12㎞까지 시추할 수 있는 해저 탐사선 지큐호(地球號)를 바다에 띄웠다. 지금은 일본 남해에서 임무 중인 지큐호의 역할은 판과 판이 아래위로 엇갈리며 무수한 지진을 만들어내는 지점, 이른바 섭입대(攝入帶)를 시추하는 것이다. 그 성분을 모조리 분석해 지진 발생 전후의 판구조운동이 어떻게 다른가 알아내 궁극적으론 지진을 예측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본이 매년 지큐호에 투자하는 돈은 8000만달러에 달한다.
◆판(板) 때문에 지진·화산 발생
역사 이래 일본 사람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인 판구조운동은 도대체 언제 왜 생기게 된 것일까? 지구과학·지질학의 전통적 이론은 '자연발생론'이다. 뜨거운 지구가 식어가는 과정에서 지구는 중심엔 뜨거운 핵, 표면에는 차가운 지각으로 분화됐다. 그 중간에 놓인 것이 물컹한 플라스틱 같은 맨틀이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 속 물이 아래에서 위로 뱅글뱅글 순환하듯 핵과 지각 사이의 맨틀도 대류현상에 의해 순환한다. 판(맨틀 상부와 그 위의 지각)은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고, 밀도가 낮은 대륙판 밑으로 밀도가 높은 해양판이 빠져드는 섭입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연발생론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학자들은 판구조운동을 촉발시킨 '방아쇠'를 찾으려 시도하고 있다. 자연발생론으로는 처음엔 분명히 한 덩어리였을 판이 아래위로 서로 엇갈리는 식으로 운동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비키 한센 교수 같은 이는 운석 혹은 소행성의 충돌 때문에 섭입운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혜성이나 운석이 지각의 약한 부분(맨틀의 상승 흐름에 의해 느슨하게 벌어진 부분)에 떨어진다. 그 충격에 의해 지각에 구멍이 나고 마그마가 솟아오른다. 용출하는 마그마는 두 지각 사이에 경계를 만든다. 그중 밀도가 낮은 지각이 마그마가 만든 경계를 따라 밀도가 높은 지각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판(板) 때문에 지구 대기운동 가능
판구조는 인류에게 지진과 화산 폭발 등 파괴적인 재앙만을 안기는 것일까? 지질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판구조운동이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지금 같은 인류 문명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구조운동은 우선 지구의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준다. 그 시초는 화산활동이 만든 다량의 이산화탄소. 화산활동은 지구 깊숙이 있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뿜어 올린다. 이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복사열이 우주로 나가는 것을 막아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온실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데워진 바다에서는 기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이는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린다.
지구가 더워지면 증발이 활발해져 비가 더 자주 내린다.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을 줄여 지구를 식힌다. 반면 지구가 추워지면 비가 잦아들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온실이 작동하는 것이다. 사람이 신진대사를 통해 36도 안팎의 체온을 유지하듯 판구조운동도 지구의 신진대사를 돕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혈액'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를 인류에게 안겨준 것도 판구조운동이다. 바다에 살고 있는 플랑크톤과 유기물이 죽어 가라앉으면 지층에 묻힌다. 판운동은 이들 퇴적 유기물을 땅속으로 밀어 넣는다. 특히 그중엔 위쪽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사구조가 형성되는 때가 있다. 이윤수 박사는 "배사구조는 다른 지층보다 압력이 낮아 그 속의 유기물들이 석유로 숙성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는 판구조운동이 인류 문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지진 가능성은
대륙판 엇갈리는 곳 없어… 규모 7 이상 확률 낮아일본 지진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이번 지진의 여파는 한국에서도 감지됐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공장 가동이 11일 일시 중단된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진동이 일어나면 오작동을 막기 위해 스스로 멈추도록 돼 있는 정밀장비들이기 때문.
지난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때에도 삼성전자·하이닉스 공장에서 반도체 일부 장비가 미세 진동을 감지해 멈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피해액은 집계할 수 없을 만큼 적다는 것이 해당 업체들의 설명.
- ▲ 쓰나미가 만든 '거대 소용돌이'… 일본 동북부 지진 이후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가 이바라키현 오아라이 마을로 소용돌이치며 덮치고 있다. 이날 태평양 연안 20개국에 쓰나미 경고가 발령됐다. 일본 경찰은“100명이 탑승한 배가 쓰나미에 휩쓸렸다”고 밝혔다. /교도통신 연합뉴스
이 정도 사례를 빼면 이번 일본 지진으로 인한 한반도 쪽 피해는 거의 없을 전망이다. 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해안이 1000㎞ 넘게 떨어진 데다 일본 열도가 쓰나미를 막아주는 일종의 방파제로 역할을 한 것이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공학과 홍태경 교수는 "서쪽으로 가는 쓰나미는 일단 일본 열도에 막히고 열도를 벗어난다 해도 우리나라까지 오면서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지진이 일본 열도의 서쪽, 즉 우리의 동해안과 마주 보는 곳에서 일어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동해안에 지진해일이 밀려와 인명·재산상 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1940년대 이후 지금까지 모두 4차례 있었다.
기상청 이현 지진관리관은 "지진관측 이래 지금까지 일본 열도 서쪽에서 규모 7.5 이상의 지진은 1940년·1964년·1983년·1993년 등 4차례 발생해 우리나라에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특히 1983년 일본 혼슈 아키타현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7.7) 때는 강원도 묵호 등에 1~2m 안팎의 지진해일이 들이닥쳤다. 이 때문에 사망·실종자 3명과 4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건물 44동이 무너지거나 일부 파손됐다.
1993년 일본 홋카이도 우쿠시리섬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8 지진도 우리 동해에 2.7m가 넘는 지진해일을 몰고 와 당시 삼척항 등지에 정박한 선박 35척이 전파됐다.
물론 이번에 발생한 쓰나미가 "대만으로 갔다가 서해안으로 튕겨오는 경우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서해안에 이유 없이 갑자기 바닷물이 밀어닥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윤수 박사는 "자연재해는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이번 지진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 여파를 다양한 각도로 시뮬레이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보다 정부가 오히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방사선이다. 지진으로 일본 원전이 파괴될 경우 여기서 누출된 방사선이 바다 건너 확산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이번 지진 발생 직후부터 비상상황실 가동에 들어갔다. 안전기술원 방사선안전본부 노병환 본부장은 "우리나라 전역에 설치된 70개 환경방사선자동감지망에는 아직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1986년 구소련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에도 바람과 제트기류를 타고 방사선이 한국까지 다다른 적이 있다. 노 본부장은 그러나 "지금이 겨울철이어서 일본에서 한국 쪽으로 기류가 흐를 가능성은 낮아 설사 일본에서 방사선이 누출된다 해도 한국까지 올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만일 방사선이 한국까지 확산된다면 외출을 삼가고 외부에서 재배한 채소 등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지진에 의한 쓰나미나 방사선 누출이 아닌 한반도나 그 연안에서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어떨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준기 교수는 "한반도 주변엔 대륙판이 서로 엇갈리는 지역이 없어 규모 7 이상의 강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처럼 외부의 큰 지진은 한반도 지역 대륙판에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럴 경우도 대규모 단층대가 있다면 규모가 큰 지진이 우려되지만 한반도에 그 정도로 위험한 단층대가 없어 그럴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진 관측 이래 규모 5 이상의 지진은 총 5차례 있었다. 특히 지난 1978년 충남 홍성에서 발생한 규모 5의 지진 때는 2명이 부상하고, 건물 118채가 파괴돼 2억원의 재산피해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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