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템플턴에게 배우는 급등락 증시 투자철학
주가가 2000 고지를 정복하더니 변동성이 심해졌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개인투자자들은 정신이 없다.
이럴 때 부화뇌동하는 건 금물이다. 전문가들은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 월가의 전설, 존 템플턴을 만나 투자 마인드를 다스려 보자.
“삶이 당신에게 어떤 걸 주느냐보단 당신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은 결정된다.
당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당신의 삶에 색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색깔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건 온전히 당신의 마음이다.”
‘영적인 투자가’로 불리는 존 템플턴의 말이다. 그는 당대최고의 베테랑 투자가다.
‘월가의 살아있는 전설·투자계의 콜럼버스’란 별칭이 따를 만큼 탁월한 투자결과를 내놓았다.
금융시장을 꿰뚫어보는 특유의 식견과 여기에 영혼이 담긴 실천적 통찰력을 겸비했다.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그가 설립한 ‘템플턴그로스(Templeton Growth)펀드’는 단연 글로벌
‘No.1’으로 손꼽히는 뮤추얼펀드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활발한 종교활동은 그를 수식하는 또 다른 상징단어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와 학장까지 역임했다. 저서 곳곳은 투자를 둘러싼 구체적 방법론보단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인생철학에 대해 더 많이 할애돼있다.
1973년 ‘템플턴상’을 제정했고, 1987년엔 아예 ‘존 템플턴 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인 사회 봉사활동에
나섰다. 템플턴상은 노벨상과 동등한 수준의 명예를 자랑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충만한 영혼과 박애정신을 실천해서일까. 그는 본업(주식투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실적을 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알려진 건 별로 없다.
주식매매와 관련된 그의 세세한 투자원칙·기법은 사실상 베일에 가려있다. 저서에서조차 세부전략과
노하우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1992년 공식적으로 은퇴한 뒤 강연회를 통해 (금과옥조)같은
투자관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그의 투자전략은 가치 있는 주식을 가장 싼값에 사는 게 핵심이다. 매입 후 내재가치가 가격에 반영될
때까지 갖고 있다 파는 게 전부다. 그러자면 선견지명과 인내심, 그리고 역발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가격이 싼 담뱃값 주식만 매입하진 않는다. 단순히 싼 주식보단 가장 싼(the best bargain)
주식을 매입하는 식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진정한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이다.
물론 향후의 주가상승 잠재력도 고려대상이다. 우수한 경영진, 시장선도 능력, 기술적 우위 등이
세부지표다.
이를 위해 그는 세계 1만5000개 기업을 조사해 저평가 종목을 발굴했다. 평균 보유기간은 5년.
주식을 팔 땐 ‘주가가 많이 올라 더 이상 싸지 않을 때’와 ‘현재 보유 주식보다 50% 이상 싼 다른 주식을
발견했을 때’뿐이다. 사는 건 비관론이 극도에 달했을 때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인간의 연약한 본성’
때문에 이런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래서 역발상이 필요하다. 투자에 성공하자면 정신적인
성숙을 통해 이런 종류의 연약한 본성을 극복해야한다.
그는 늘 최종수익률로 투자성과를 따져볼 것을 조언한다. 세금·인플레이션을 감안해야 최초의 구매력
변화를 정확히 체크할 수 있어서다. 공매도·옵션처럼 투기행위는 절대 ‘No’다. 또 투자대상을 대할 땐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좋다. 하나의 투자대상이 늘 최고실적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관적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는 게 원칙이다. 최악일 때 군중을 좇아 패닉에 빠져선 곤란
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좋은 주식이어야 한다. 성장산업이면서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 그렇다. 시장흐름이나 경제
예측보단 개별종목의 가치에 주목해야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위험분산은 기본이다. 제아무리 철저히 분석한 후 샀어도 결코 앞날을 예견할 수는 없다.
보유종목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다. 연구·계획·분석은 물론 필수다. 긴장감도 필요하다.
사놓고 잊어버릴 수 있는 주식이란 없다. 닥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늘 깨어있어야 한다.
위기상황 땐 패닉에 빠지기보다 심호흡 후 두려움을 떨칠 것을 권한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자세도
괜찮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투자하지 않는 것뿐이다. 실수했다고 낙담해선 곤란하다.
자만보단 겸손이 우선이다. 투자세계란 늘 변한다. 과신은 위험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부자 정보는 솔깃해 보여도 큰돈으로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란 게
그의 경험이다.
그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2등으로 졸업했다. 로즈장학생을 받아 옥스퍼드로 유학을 갔고, 당시 35개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는 세계를 무대로 한 향후의 포트폴리오 구성에 큰 도움이 됐다.
25세의 나이에 월스트리트로 진출, 탁월한 투자능력을 보이며 저성장주 발굴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1954년 템플턴그로스사를 설립, 투자범위를 세계로 확대하며 글로벌펀드라는 신규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낙관론의 대표주자다. 85세였던 1997년 사무실 임대기간을 10년 더 연장할 만큼 장래를 밝게
봤다. 그는 92년 자신의 뮤추얼펀드를 매각하면서 공식 은퇴했다.
아시아 쪽에도 조예가 깊다. 1956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일본증시를 주목했다. 1949년 개장한
도쿄증시는 1970년대 초만 해도 상장사 시가총액이 IBM 1개사 시가총액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였다.
월가의 지배적인 의견도 ‘일본투자는 위험하다’로 모아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일본기업의 수익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1968년부터 일본주식을 본격 사들였다.
한때는 펀드자산의 50%를 일본에 넣기도 했다. 도쿄시장은 이후 1980년대까지 붐을 탔다. 1986년
PER(주가수익비율)가 30배를 넘어서자 보유주식을 대부분 처분했고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IMF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한국, 싱가포르 등에 과감히 투자했었다.
템플턴은 워크홀릭이었다. 하루 15시간씩 1주일에 6일을 꼬박 일했다. 60여 년간 매일 아침 4시면
일어났다. 약속한 것보다 더 이뤄내기 위한 그만의 생활습관이었다. 운보단 실력을 믿었다.
그는 “이번에는 달라(This time is different)라고 말하는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며 “실수를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향후의 성공을 장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혔다.
“ 이번에는 달라(This time is different)라고 말하는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연은 열심히 일하고 성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전영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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