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박이가 안내하는 '제주 소울 푸드'
- ▲ 제주 사람들이 외지에 가서도 생각나는 제주만의 음식 '소울푸드'를 바구니에 담 으니 그럴싸한 피크닉 상차림이 만들어졌다. 속을 꽉 채운 '오는정 김밥' 뒤로 왼쪽은 돼지 족발에서 발만 뗀 '아강발', 오른쪽은 상어의 일종인 '존다니' 생선회다. 벤치에 앉아 서귀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롯데호 텔제주 올인전망대에서 찍었다.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존다니: 제주시 동문시장 생선가게들 앞을 지나다 '흉측한' 생선을 발견했다. 남자 어른 한 뼘 조금 안 되는 길이에 외계 생명체를 연상케 하는 머리가 달렸고 껍데기는 벗겨져 있다. 김진억씨가 "존다니네"라고 했다. 존다니는 상어의 일종. 생선가게 여자 주인은 "먹으려고 해도 잘 안 나오는데, 손님이 먹을 복이 있네"라고 했다. "잘 안 잡히거든요. 어떤 생선보다 맛있어요. 쫄깃하고 깊은 맛이 있어요." 그 맛이 궁금해 서너 마리 회를 떠달라고 부탁했다. 광어 비슷한 담백한 맛이나 단단하다고 할 정도로 차지다. "깻잎에 된장과 싸 먹어야 맛있어요. 된장 풀고 마늘·무·양파 넣고 된장찌개 끓여도 좋고." 1마리 1000원. 김진억씨는 "존다니를 따로 파는 식당은 거의 없고 다른 음식을 주문하면 식사로 존다니 된장찌개를 내는 식당이 몇 있다"고 알려줬다.
●각재기국·멜국: 김진억씨는 "다른 지역 분들은 생선으로 국을 끓였다고 하면 힘들어하지 않느냐"면서 약간 불안해했다. 각재기는 전갱이, 멜은 남자 어른 손가락만큼 큰 멸치. 제주시 일도2동 '돌하르방식당'(064-752-7580)은 이 두 생선으로 끓이는 각재기국과 멜국을 잘하기로 이름난 집이다. 끓는 물에 손질한 전갱이나 멸치를 넣고 배추와 풋고추를 더해 다시 끓인다. 이 식당에선 각재기국에 된장을 살짝 푼다. 비린내 없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각재기국·멜국 6000원. 고등어회(1접시 1만5000원)도 특별하다. 고등어회는 일반적으로 얇게 써나, 이 집은 두부처럼 두툼하다.
●오메기떡: '흐린 좁쌀'이라고도 하는 차조가 주 재료인 제주 향토떡. 차조가루를 익반죽해 도넛 모양으로 빚어 삶아 콩가루와 팥고물에 묻힌 것이 전통 오메기떡이다. 오메기떡집 '몰랑몰랑'(064-752-2231 www.jeda food.co.kr) 문재필씨는 "요즘은 차조와 찹쌀을 섞어 떡을 만들고 팥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은 다음 팥고물을 묻히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구수한 팥고물과 달콤한 팥소, 차진 떡쌀이 다른 떡보다 강렬한 인상을 입안에 남긴다. 흔히 떡은 차와 어울리지만 워낙 강렬한 맛인지라 커피, 그중에서도 에스프레소와 썩 어울린다. 전국 웬만한 지역은 택배로 주문 가능하다. 36개 1상자 3만5000원. 택배비 별도. 얼려 보관하다가 실온에서 살짝 녹았을 때 먹으면 더 맛나다고 문씨가 귀띔했다.
●미풍해장국: 30년 동안 제주사람들의 속을 달래준 해장국집. 소 사골 국물에 배추와 콩나물을 넣어 특별하게 시원하다. 여기에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양념(다대기)을 얼큰하게 풀고 싱싱한 선지, 쇠고기, 송송 썬 파, 후춧가루, 당면을 푸짐하게 넣는다. 국물을 제대로 맛보려면 고추양념을 빼달라고 주문할 것. 종지에 따로 내준다. 해장국백반 6000원. 오전 5시에 열고 오후 3시에 닫는다. 둘째·넷째 월요일 휴무. 제주시 연동11길15, (064)749-6776
- ▲ '오는정김밥', 서귀포시장 흑설탕 국화빵 (왼쪽부터)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모닥치기: 김진억씨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구분해 얘기하는 걸 듣다 의문이 들었다.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섬인데 그렇게 다를까? "달라요. 제주사람들은 한라산을 기준으로 '산남산북(山南山北)'이라고 하는데, 사투리는 산남이 세죠. 예를 들면 우리 제주시 쪽에선 '맛있어?' 하는데 서귀포 쪽에선 '마신?' 이래요." 김씨는 "모닥치기도 호텔에 취직해 서귀포에 와서 처음 봤다"고 했다. 모닥치기는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일종의 세트메뉴다. 모닥치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서귀포시장 '새로나분식'(064-762-3657) 주인은 "모닥치기는 '여럿이' '다 함께'란 제주 방언입니다. 이걸 음식에 접목시켰죠." 떡볶이와 김밥, 김치전, 군만두, 달걀, 어묵이 떡볶이 국물 안에 행복하게 공존한다. 대 7000원, 소 5000원. 서울과 비교하면 훨씬 푸짐하다.
●흑설탕 국화빵: 새로나분식 맞은편, 서귀포시장 한복판 사거리 한 모퉁이에서 20년 넘게 국화빵을 만들어온 아주머니. 언제부턴가 팥 대신 흑설탕을 넣었다. "제대로 국산 팥을 쓰는 데가 요즘 어딨어. 다 방부제 들어간 수입산이지. 그럴 바에야 흑설탕을 넣어보자 했지." 그 결과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서귀포만의 국화빵이 탄생했다. 팥소보다 경쾌한 단맛인 흑설탕에 맞춰 빵 반죽도 더 묽게 조절하는 듯하다. 일반 국화빵보다 얇고 가볍다. 한 자리에서 부담 없이 네댓 개는 먹겠다. 4개 1000원인데 1개 200원이다. 셈법이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다. 아주머니는 "손해면 얼마나 손해냐"며 계속 그렇게 팔겠단다.
●튀김떡볶이: 서귀포시장 뒷골목에 있는 '짱구분식'(064-762-6389)은 '튀김떡볶이'가 독특하다. 떡볶이 떡에 전분가루를 묻혀 튀겨낸 다음 떡볶이 국물에 버무린다. 얇은 바삭한 튀김옷에 매콤달콤한 국물이 배어들어 훨씬 더 맛있다. '이거 먹으면 살찔 거야'란 생각이 들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튀김떡볶이(3000원)와 모닥치기(6000·8000원)가 따로 있으나 튀김떡볶이를 시켜도 모닥치기처럼 나온다.
●오는정김밥: 까칠하고 도도한 김밥집이다. 1시간 전 예약해야 하고 요금 선불에다 두 줄 이상 주문해야만 판다. 그럴 만했다. 소시지, 게맛살, 시금치, 단무지, 지단 따위 속재료가 아주 푸짐한 데다 국산쌀만 써서 짓는다는 밥맛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 김밥집만의 비법은 속재료 하나에 있다. 김밥 단면을 보면 짙은 갈색 정사각형이 하나 박혀 있다. 유부를 튀겨서 간장과 설탕 따위 양념에 조린 듯하다. 김밥을 먹을 때마다 기름지고 달착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양념이 배어 나오면서 밥과 섞인다. 바삭하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맛도 그만이다. 오는정김밥 2000원, 참치김밥·치즈김밥·깻잎김밥 1줄 2500원. 다 맛있지만 역시 '원조 오리지널(오는정김밥)'이 최고였다. (064)762-8927
●아강발: 제주 말로 '작은 발'이라는 뜻. 제주시에서 제일 번화한 동문시장에서 족발과 돼지고기를 파는 '맞춤형 식육식당' 주인은 "흔히 먹는 돼지족발에서 발만 떼어놓은 것"이고 했다. 서울 등 '뭍'에서처럼 캐러멜이나 한약재를 많이 쓰지 않아 돼지고기 자체의 맛이 더 살아 있다. 이 가게를 포함 시장 안에서 아강발 3500원, 아강발과 그 윗부분 다릿살까지 합쳐 1만7000원, 뒷다리는 1만5000원 정도에 판다.
- ▲ '삼대국수회관' 고기국수, '흑돼지가 있는 풍 경' 생고기 구이.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유명해도 또 소개하고 싶은 제주 소울 푸드
●흑돼지: 김진억씨는 "나가 사는 친구들이 고향 오면 꼭 먹는 게 돼지 생고기"라고 했다. "(다른 지역의 돼지고기는)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고 하더라고요. 뭐랄까, 신선도가 떨어진달까?" 그가 제주산 토종 흑돼지고기만을 낸다며 데려간 곳은 제주시 노형동 '흑돼지가 있는 풍경'(064-742-1108). 돼지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던 우리의 에이스가 "고기가 듬삭하네이~"라고 했다. '듬삭하다'? "두툼하다, 실하다, 먹음직스럽다는 뜻의 제주 사투리예요." 고기와 비계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삼겹살, 한쪽에는 얇고 쫄깃한 껍데기가 붙어 있다.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김진억씨가 "이런 맛을 제주 말로 '배지근하다'고 한다"고 알려줬다. "'배지근하다', 기름기 있으면서 든든하고 따뜻하다는 말입니다." 소금과 함께 '멜젓(멸치젓)'이 나오는 게 다른 지역과 다르다. 흑돼지 생구이 1인분(200g) 1만5000원, 양념구이 1인분(350g) 1만4000원. 양념구이는 육질이 생구이만 못하다.
- ▲ 서귀포시장 '새로나분식' 모닥치기, 제주시 동문시장 '한마음빙떡'의 빙떡.(왼쪽부터)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빙떡: 제주도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라고 한다. 김진억씨는 "빙빙 말았다 해서 빙떡, 멍석처럼 만다고 멍석떡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그가 동문시장 뒤 '한마음빙떡'(064-752-0803)으로 데려갔다. 메밀을 동그랗고 얇게 부치고 소금·참기름·참깨로 양념한 무나물을 넣고 도르륵 만다. 간이 거의 없어 심심하다. 가게 주인은 "절대 짜면 안 된다"고 했다. "잔치나 회식 때 수백 개씩 주문해 가요. 서울 제주 향우회 모임 땐 몇 천 개씩 시키기도 한다니까요." 500원 받고 1개씩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