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성격 차이로 티격태격하던 부부…별거 직전까지 갔다가
의견 충돌할 때마다 무조건 맞장구치며 화목 찾아
그걸 가훈으로 정했다는 얘기에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써주신
가훈 ‘初志一貫’ 생각나 나는 왜 아버지를 닮지 못했을까
아침밥을 먹는데 작은아들이 물었다. "아빠, 맹세가 무슨 뜻이에요?" "맹세? 한자어 맹서(盟誓)에서 온 맹세 말야? 무엇을 꼭 이루거나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이지" "그런데 결혼식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해놓고 왜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아요?" "그때는 그랬지만, 살다 보면 사랑이 식거나 성격이 너무 안 맞아 그러지, 뭐." "나는 한번 맹세하면 악착같이 지킬 텐데." "그래, 그래서 맹세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야."
아들과의 대화 끝에 최근 들은 어느 부부의 얘기가 생각났다. 사반세기 동안 우리와 가깝게 지내 어지간한 가정사도 아는 사이다. 우리 부부도 그렇지만, 그 집도 처음부터 둘의 성격이 워낙 맞지 않아 늘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지만, 아이들이 스물이 넘게 장성하여 둘만의 시간이 많아지자 걸핏하면 말다툼하는 일이 많아졌다. 남들은 '제2의 신혼' 어쩌고 하는데, 그 집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아내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남편은 아내의 잔소리와 유별나게 따지는 성격에 죽을 맛이었다.
취미도 너무 달랐다. 남편은 술과 담배, 커피 아니면 잠자기 등 아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다. 아내는 학교 선생님답게 지성이 풍기기를 원했건만, 어깃장만 놓는 남편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한번 밉게 보이니, 연애할 때에는 마음에 들던 넓은 이마나 잘생긴 코까지 보기 싫다고 했다. 아이들과 주변의 눈이 있어 갈라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그저 속앓이만 하면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한동안 산 적도 있다. 주변에서도 '혹시 저러다 진짜로 찢어지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했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런 부부가 언제부터인가 확연히 달라졌다. 백두대간을 같이 다니는가 하면, 서로의 취미도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비결'을 물었다. "앞으로는 여자들 말만 잘 듣기로 했다"는 답이었다. 여자들이라니? 아내와 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길을 안내하는 '내비 걸(Navi girl)'이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니까, 가훈(家訓)을 아예 "당신 말이 맞소"로 정했다고 한다. 뭔가 비위에 맞지 않아 화가 날 때에도 얼른 "당신 말이 맞소"라고 하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되더라는 그의 얘기를 듣고 살포시 감동했다.
아내 역시 남편의 눈부신 변화에 동참, 남편의 언행이나 주장이 마음에 안 들어도 곧잘 "당신 말이 맞소"라며 맞장구를 친다는 것이다. 그 말만 하면 둘이 얼굴을 맞대고 웃어버린다고 한다. "정 상대방 말이 옳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경우엔 "그건 당신 말이 틀린 것 같소"라고 말하며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는다고 한다. 무릎을 쳤다. 우리보다 더 불안해 보이던 그들에게서 기가 막히게 좋은 가훈을 선물 받은 것 같아 기뻤다.
가훈을 생각하면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24년 전 초여름, 고향집 잔디마당에서 잔치가 열렸다. 4남3녀를 낳아 기르고 가르쳐주신 위대한 아버지이자 이 나라 일등 농사꾼인 아버지의 회갑연이었다. 7남매가 쌍쌍이 큰절을 올리고 '부모님 은혜' 노래를 합창하며 훌쩍거린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아버지는 가훈을 직접 써서 만든 액자 4개를 우리 형제들에게 선물로 줬다.
아버지가 써주신 가훈은 '육친가화(六親家和)·근검절약(勤儉節約)·초지일관(初志一貫)' 세 가지였다.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처음 품은 뜻을 평생 노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불과 여덟 살에 일가친척 한 분 없이 홀어머니, 두 살 남동생과 함께 세상에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그때 결심한 것이 "어떻게든지 어머니 모시고 효도하며 동생을 가르쳐 집안을 일으켜 세우리라"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생은 그때 마음먹은 뜻(初志)을 일관(一貫)하여 자수성가(自手成家)한 것이었다. 스무살에 결혼하여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고 고등교육까지 다 가르쳤다. 아버지께 편지를 쓸 때 무심코 쓰는 '불초 소생'은 '아버지를 닮지(肖) 못한(不) 못난 자식(小生)'이라는 뜻이다. 나는 초지일관하지 못한 자책(自責)과 자괴(自愧)에 늘 시달린다. 왜 아버지를 닮지 못했을까.
"당신 말이 맞소"라는 가훈으로 '인간승리'가 아니라 '가정승리'(家庭勝利)를 한 부부의 실례(實例)를 들으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이라도 던지고 싶어질 때, 한번쯤 아내(또는 남편)의 입장으로 돌아가 "당신 말이 맞다"고 해보면 어떨까. 나는 잘 쓰지 못하는 붓글씨지만 "당신 말이 맞소"를 한지(韓紙)에 큼지막하게 써 액자로 만들어 그 부부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좋은 것을 배웠으면 사례(謝禮)를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문득, 어느 여자고등학교 교실에 걸린 급훈(級訓)이 생각나 피식 웃어 본다. "대학의 문은 좁다. 그러나 우리는 날씬하다"
장재봉의 러브사운드중 [포지션 - I LOV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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