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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bthong 2012. 9. 24. 20:33

 
 
▲ 7일 오전 7시30분경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성읍민속마을 팽나무(수령 600년) 한그루가 태풍에 꺾이면서  ‘일관헌’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제주의소리

 

태풍이 몰아치는 거리를 걸었다. 상반신을 잔뜩 구부린 채 태풍 속을 걸으며 간간이 거리의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나무들은 온몸을 뒤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계속 기울어지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태풍을 견뎌내는 자세가 의연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수백 년 된 왕소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진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나무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수없이 많았다. 왜 어떤 나무는 태풍을 견뎌내고 어떤 나무는 태풍에 쓰러지고 말았을까.

태풍이 지나간 거리를 걷다 보면 지상으로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는 왕벚나무나 플라타너스들은 대부분 키가 큰 나무들이다. 바로 그 옆에 있는 키 작은 쥐똥나무나 풀잎들은 언제 태풍이 불어왔느냐는 듯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아름드리 거목들이 태풍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꼿꼿하게 태풍과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태풍에 대한 그들의 당당한 태도는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죽음의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다. 만약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자신을 낮출 수 있었다면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약함보다는 거목으로서의 강인함을 먼저 생각하고 태풍과 싸워 이기려고 노력했다.



태풍에는 자신을 낮추고 굽힐 줄 아는 나무만이 살아남는다. 보란 듯이 자신을 과시하는 나무는 쓰러진다. 그것은 겸손하지 못한 거목의 오만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 그루 거목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들면서 스스로 태풍이 되었다고 여길 수는 있지만 태풍처럼 강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꼿꼿하게 맞선 거목들 쓰러져

풀잎을 보라. 풀잎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풀잎은 태풍이 불어오면 일단 몸을 굽히고 삶의 자세를 겸손의 자세로 바꾼다. 풀잎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태풍과 맞서는 경우는 없다. 행여 쓰러진 풀잎이 있다 하더라도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대부분 스스로 일어나 하늘을 본다. 그러나 나무는 한번 쓰러지면 누가 일으켜 세우지 않는 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남 앞에 군림하는 자세로 서 있던 이들은 결국 부정과 부패의 태풍 앞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여기는 이들도 국민 앞에 육체의 고개는 숙이지만 마음의 고개는 제대로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의 선택이라는 태풍이 불어오면 자신을 굽히지 않고 태풍과 맞섰던 나무처럼 쓰러지고 만다.

사람이든 나무든 직선보다 곡선의 삶의 자세나 형태가 더 아름답다. 새들은 곧은 직선의 나무보다 굽은 곡선의 나무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함박눈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만들어져, 굽은 나무의 그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편히 쉰다. 사람도 직선의 사람보다 곡선의 사람의 품 안에 더 많이 안긴다. 직선보다 곡선의 나무나 사람이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넉넉하고 따뜻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태풍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태풍이 지나간 마을과 들녘엔 파괴의 망연함만 고요하다. 그렇지만 태풍을 미워하고 증오할 수는 없다. 태풍은 자연계의 한 현상으로 오직 자기 본연의 삶을 살 뿐이다. 태풍이 몰아치지 않으면 고여 있던 생태계는 새로운 활력의 숨을 쉬지 못한다. 태풍의 본성은 인간과 자연의 삶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회복하고 순환시켜 다시 회생시키는 데 있다.

중국 명나라 철학자 왕간의 드렁허리(미꾸라지나 뱀장어처럼 가늘고 긴 물고기) 이야기다. 물이 바짝 마른 생선가게 큰 대야에 드렁허리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서로 얽히고 눌려 있었다. 그런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갑자기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아래로 위로,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자 죽은 것 같았던 드렁허리들도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렁허리들이 다시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된 것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기운을 주고 소통을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꾸라지는 왜 갑자기 그렇게 움직인 것일까. 그것은 드렁허리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본성에 따라 생기 있게 움직인 것일 뿐이다.

인간도 자신을 낮춰야 살아남아

태풍도 마찬가지다. 자기 본성에 따라 본연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인간을 파괴하겠다든가 회생시키겠다든가 하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인간이 태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태풍은 현재의 자기를 바로 보고 겸손하라고 불어온다. 고통과 절망이라는 인생의 태풍이 불어올 때 삶의 자세를 더욱 낮추라고 불어온다. 나는 남들과 달리 작고 연약한 인간으로 만들어진 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절대자를 원망하고 등을 돌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풀잎처럼 자기를 더욱 낮춤으로써 인생의 태풍을 견뎌내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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