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산업부 기자 ducky@chosun.com
입력 : 2007.05.18 14:57 / 수정 : 2007.05.20 10:11
- 올해부터 정년을 맞는 일본 단카이 세대가 향후 소비와 투자를 이끌며 고령사회를 주도할 것으로 예측된 다. 도쿄 신주쿠의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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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본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2005년 9월부터 15개월에 걸쳐 대규모 기획프로젝트를 벌인 끝에 얻은 결론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구조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動力)이 바뀌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노무라의 보고서는 왜 2010년을 분수령으로 잡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201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인구 구조가 크게 변한다는 데 있다. 전후(戰後) 베이비 붐을 이뤘던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단카이세대(團塊世代)’가 올해부터 60세 정년을 맞기 시작한다. 일본은 이를 ‘2007년의 문제’라고 부르며 긴장하고 있고, 2010년이 되면 단카이세대 전원이 환갑을 맞아 생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1995년부터 이미 생산가능인구(15~ 64세)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작년부터는 전체 인구마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경제활동의 주축이었던 단카이세대의 은퇴가 일본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매우 크다. 이들의 은퇴가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새로운 창업에 대거 나서면서 경제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혁기에 일본 경제는 극심한 글로벌 경쟁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핵심은 아직까지 제조업이지만 한국·중국의 추격이 거세고, 중국은 경제 규모 면에서도 일본을 턱 밑까지 추격했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고, 러시아 경제도 용틀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일본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은 인구 감소를 겪으며, 공공투자를 줄이고 사회자본도 축소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1970~1990년동안 일본은 사회자본, GDP(국내총생산), 인구 증가가 균형을 이루며 성장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구와 경제규모는 정체된 반면, 사회자본만 급속히 늘어났다. 즉 불균형 상태로 늘어난 사회자본은 2027년쯤 되면 관리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활동이나 인구에 비해 사회자본만 늘어나면 어떤 상황이 오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에는 국력의 쇠퇴와 함께 수도·도로 등 기반구조가 황폐화되면서 도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2010년부터 사회자본의 확대가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시작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2010년은 또, 일본이 명실상부한 유비쿼터스(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 사회로 진입, 일상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이 확 바뀌는 시점이다. 2010년엔 정부 창구 행정 업무의 절반이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일본 전역이 광(光)섬유로 연결된 단일한 광대역 통신 권역으로 묶인다. 커뮤니케이션과 소비 형태의 격변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라의 보고서는 인구는 줄고, 사회자본은 과도해지고, 사업환경은 격변하게 되는 2010년 일본은 고용사회(雇用社會)에서 기업사회(起業社會), 즉 ‘기업에 묶인 개인들의 사회’가 아니라 ‘기업을 일으키는 개인들이 할거하는 사회’로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증유의 지각변동의 시기에 개인과 기업은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가? 노무라가 제시하는 해법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극심한 글로벌 경쟁시대로 진입할 시기에
戰後 베이비 붐 세대 ‘단카이’ 완전 은퇴
세계2위 경제대국 위상·정체성 흔들릴 수도
■ 획일적 ‘노후’의 종말
단카이 세대는 줄잡아 680만 명. 아래 위 한 살씩 범위를 넓혀 광의(廣義)로 계산하면 1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계층이다. 이들은 2007년부터 ‘직장인’에서 ‘자유인’이 된다. 납세계층에서 연금 수혜계층으로 바뀌면서 국가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무라는 역발상을 요구한다. 뒤집어 보면 이들이 갖게 될 자유시간은 새로운 국부(國富)의 창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대가 하루 10시간을 자유시간으로 보내고, 또 이들이 80세까지 산다고 보면 1인당 총 7만 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긴다. 자아 실현 욕구로 충만한 ‘단카이 자유인’은 창업 등 기업 출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노무라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단카이세대의 12%가 창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들이 실제 창업하게 되면 산술적으로 70만~100만 개에 달하는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게 된다. 일본경제의 엄청난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서비스시장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예를 들어 여행산업을 보자. 시니어(senior) 여행시장은 단순 ‘관광’이 아닌 ‘인간 관계 디자인 산업’이다. ‘어디 가서 무엇을 볼까’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어떤 활동, 어떤 체험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시니어가 대거 참여하게 되면 교육시장도 변할 것이고, 단기 구직시장, 개인 투자시장, 중고순환·재생시장, 리스크 매니지먼트 시장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고용사회’에서 ‘기업(起業)사회’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60년은 일본 사회의 샐러리맨화가 진행된 시대, 즉 ‘고용사회’가 심화된 시기다. 하지만 인구 감소에 속도가 붙는 2010년부터 고용 확대가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유발하는 ‘기업(起業)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사회란 ‘스스로 보스(boss)가 된다’는 표현처럼 회사에 근무하면서 새 사업을 시작하거나, 조직의 변혁을 추진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를 뜻한다. 과거에는 ‘조직이 사람을 활용’했지만, 앞으로는 ‘사람이 조직을 활용’하는 시대가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까지 국가의 부가가치는 제조업이 맡았지만 앞으로는 지식·아이디어·기술 분야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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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 시간제 일자리만 전전하는 프리터(freeter)족, 구직 혹은 교육받을 의사조차 없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같은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일본의 문제다. 2010년 프리터는 600만, 니트는 100만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이 늘어나면 미혼, 만혼(晩婚), 저(低)출산 경향이 늘어나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늘어나는 데다 산업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 동기부여(motivation)를 재생시켜라
일본 젊은이들의 일에 대한 동기(動機)가 사라지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성숙해감으로써 일을 해서 돈을 벌려는 야성(野性)의 상실, ‘샐러리맨 모델’에 대한 회의, 인재육성 소홀로 인한 도전정신·성장기회·동료의식의 상실, 미디어에 의해 ‘나는 무언가 될 수 있고, 이곳에서는 능력을 살릴 수 없다’류의 과대망상 확산 등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야성을 유도하는 경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성공 사례로 홋카이도 중소도시인 아사히카와(旭川) 시에 있는 아사히야마(旭山) 동물원을 들었다. 1996년 한 해 방문객이 고작 26만 명에 불과해, 문 닫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이 동물원이 10년 후인 2006년에는 무려 270만 명이 방문, 일본 최대인 도쿄 우에노 동물원을 제치고 제1의 동물원으로 등극했다. 그 비결은 수동적인 ‘형태 전시’에서 능동적인 ‘능력 전시’로 바꾸고, 혼합사육을 통한 야생상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유리터널로 지어진 수조 안에서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헤엄치는 펭귄, 10㎝ 거리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바다사자, 짚 속에 감춰진 먹이를 찾으려 야생의 능력을 발휘하는 원숭이…. 동물들의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동물의 행동과 능력을 전시하는 개념이다.
이 능력전시를 경영에 적용하면, ‘승진 아니면 퇴출’ 식의 성과주의 경영은 인간이 본래 가진 능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인재 활성화를 꾀하지 못하는 경영방식이 된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 자체가 각자의 야성에 근거해, 동기를 되살리는 것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도 동기부여를 재생할 수 있는 산업으로 제시됐다. 와타미농장은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5개의 농장에서 같은 작물을 시차를 두고 재배하면서, 농장 근무를 희망하는 신입사원들이 이 농장들을 순회하면서 경력을 쌓게 했다. ‘유기 농작물을 기존 농작물 수준의 가격으로 만든다’는 도전적 미션을 설정하고, ‘농업이 새롭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주식회사에 대한 농지 임대 불가, 토지 임대자에 대한 보조금·융자 제한, 농협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 농업사회 등은 모티베이션(motivation)을 살리지 못하고 자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또 모티베이션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수의 총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제안한다. 즉, 돈과 지위에는 제약이 있지만 감사, 자랑, 자극, 학습, 성장, 재미, 도전 등으로 얻어지는 성취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조직이 시간을 들여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것들은 사용할수록 풍요로워져 결국에는 강한 조직을 만들고, 보수의 총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기 중심적이고 부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트집잡기, 업무 강요, 공적 훔치기, 보신주의, 사내(社內) 정치 몰두 등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모티베이션 킬러’로서의 부작용만 양산하게 된다. -
단카이 세대들, 창업 나서면 새 國富 창출
젊은이들에게 돈 벌려는 野性 키워주고
축적된 사회자본 ‘창조적 파괴’로 재정비해야
■ 사회자본의 ‘창조적 파괴’
일본의 1인당 사회자본 자산은 3만 2000달러에 달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인구 증가를 전제로 구축해 왔던 각종 사회자본들을 완전히 재정비해야 한다. 즉, 이전까지 경제성장 속에서 축적된 사회자본을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소규모 공원은 폐쇄하고 대규모 공원에 투자하거나 인프라 산업의 민영화에 따른 자본 제휴·매수·분리 현상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이런 사업을 정부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주민, 민간 기업이 새로운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주체로 등장해야 한다.
사회자본을 장기간 유지 관리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시대의 요청에 따라 사회자본을 병합, 전용, 복합시키는 관점도 중요하다. 또, 특히 도시관리 분야에서는 마이너스 관리, 즉 ‘감축’이라는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예컨대 독일의 라이네페르데 시는 슬럼화된 고층 단지의 상층부를 잘라내 중층 건물로 만들거나 동(棟) 수를 줄여 개방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질 높은 거주 환경으로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향후 구조물이나 건물을 솎아내는 개념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회자본을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바뀌는 마케팅 패러다임―롱테일 마케팅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책’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치면 놀랍게도 잘 팔리는 책의 매출을 추월한다는 온라인 판매의 특성을 이르는 개념이 롱테일 마케팅이다. 20%의 핵심 고객으로부터 80%의 매출이 나온다는 유명한 파레토 법칙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역(逆) 파레토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보고서는 2010년 일본에서는 틈새(niche)시장이 메이저가 되는 시대가 온다고 지적했다.
예전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많은 종류 서적을 팔려면 그 많은 서적의 재고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는 아마존닷컴은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재고는 데이터베이스 상에 리스트업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롱테일을 잡을 수 있을까. 보고서는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술을 제시한다. 텍스트 마이닝이란, 일반적으로 쓰인 문장을 단어 단위로 분해, 분석함으로써 단어의 출현 빈도나 전후 관계 등으로부터 문맥을 해석해, 문장에 내포된 숨은 정보나 특징, 경향 등을 일정한 지식이나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설문조사의 자유 응답이나 콜센터에 모이는 의견 등을 표면적으로 살필 게 아니라,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소비자의 생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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