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6.01 18:54
- 송희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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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들의 경제관련 토론회를 보면서 한마디로 답답했다. 질문-답변시간이 너무 짧았다거나 운하(運河)와 열차 페리 공방전에서 맴돌았기 때문이 아니다. -
지루한 토론 방식은 좀 더 흥미롭게 바꾸면 되고, 빠뜨렸던 경제 이슈는 앞으로 다시 토론해보면 된다.
그러나 정말 답답했던 이유는 한국 경제가 마주쳐 있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랄까, 글로벌 경쟁 시대의 경제관(觀)이 전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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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중 세 후보만이 ‘글로벌 경제’ ‘세계 무한경쟁시대’ ‘글로벌 시대’라는 단어를 고작 한 번씩 사용했을 뿐이고, 그들이 내놓은 대안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잡동사니 아이디어였다. 마치 30년 전 초고속 성장했던 ‘그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면 청년 실업 등 골치 아픈 경제 현안들이 해결될 듯이 둘러대는 분위기를 느꼈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착각 증상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70년대, 80년대의 성공 법칙(法則)을 2000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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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통치자가 깃발을 흔들면 기업인들이 다퉈서 공장을 짓고, 세금 좀 낮춰주면 소비가 살아나고, 토목 공사를 벌이면 내수 경기가 돌아갈 것이라는 전제로 많은 공약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나라당 후보들은 변해버린 세월을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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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IT) 혁명이 어떤 파장을 몰고 왔는지 모른 채, 인터넷에서 싸이질할 줄 알면 첨단 감각이 있는 양 착각한다. 또 영어 좀 통하고 해외 공사판 언저리를 다녀왔다고 스스로 글로벌 경제의 물결에 올라탄 세계인이 된 듯한 망상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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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했듯이 90년대 이후 세상은 변했다. 불과 10여년 전 세계 경제의 새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어느 나라 상품이든 어느 나라 돈이든 특정 국가의 좁은 시장을 벗어나 넓고도 깊은 글로벌 시장에서 뒤엉켜 경쟁하고 있다. 뉴욕이 아침에 기침 하면 며칠 뒤 도쿄와 홍콩이 몸살 앓던 시대는 가고, 어느 사이 런던과 상하이, 서울이 시차 없이 웃다가 동시에 훌쩍거리는 시대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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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건만 한나라당 후보들은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신세기가 시작된 줄 아예 모르거나, 얼핏 귀동냥 했더라도 과거 성공의 길로 직통했던 파이프 라인이 무너져 버린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꼴이다.
예를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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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안팎 경기가 하락하고 나면 2~3년은 팽창하던 경기순환 패턴은 깨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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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주기로 변덕스럽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이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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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회복되어도 기업은 사원 채용을 그다지 늘리지 않고 임금도 별로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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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기가 오면 양극화, 빈부(貧富)격차 현상이 누그러졌던 공식도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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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기에도 중산층은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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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법칙을 5년 호황, 10년 호황을 누리는 일본, 영국, 미국에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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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씩 세율을 내리면 가전제품 판매가 늘고 설비 투자가 상승하던 시대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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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 찔끔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나라들 중에는 아예 전통적인 세금을 폐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속세를 없앤 나라들을 보라. 이미 중남미 등지의 국적(國籍)이 맨해튼 뒷골목에서 거래되면서 상속세 없는 나라로 이민 갔다가, 상속 절차가 끝나면 다시 귀국하는 세금 유랑민들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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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정보통신 혁명과 글로벌 시장 통합의 큰 물결을 거부하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올라타지도 않은 어정쩡한 입장에 서있다. 금융이야말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제왕적인 산업으로 이미 등장했건만, 아직도 토목-건설 공사나 항만-운송업, 물류업을 기반으로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구식(舊式)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에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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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외환위기란 어떻게 보면 ‘얼간이들아, 정신 차려! 세계 경제 역사가 새로 시작됐으니…’라고 경고성 천둥벼락을 내리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는 박정희나 정주영, 이병철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하고 과거 지향의 추억에 젖어 드는 계층이 두텁게 남아있다.
한나라당에 ‘아름답지만 되돌아 가보면 실망할’ 첫사랑 같은 향수병에 빠진 후보들만 있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다음 5년 사이 한국 경제에 희망의 횃불을 치켜 올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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