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세기때 두차례 대형 폭발… 남·북 공동연구 나서야
입력 : 2007.09.02 22:46
- ▲ 이윤수 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 지난 몇 년 동안 백두산 천지 아래에서 지진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 중국 지질학자들은 이를 백두산 화산 활동의 전조(前兆)로 보고 향후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지진의 발생 위치가 지하 약 5㎞ 하부이며, 거대한 마그마가 천지 아래 9~15㎞까지 올라와 있다고 보고했다.
백두산 지질 조사 결과는 9세기와 10세기 2번에 걸쳐 초대형 화산 폭발 이벤트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유문암질에서 조면암질의 고온의 부석-화쇄류로 이루어진 이들 화산층은 두껍게는 수십 m에 이르며, 2차례 이벤트의 분출량이 최소 약 120㎦에 달한다.
이는 지난 1만년 동안 전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 분출 규모 중에서 4위 안에 속한다. 기원후 79년 로마의 휴양지 폼페이-헤르쿨라네움 일대에 적어도 2만 명의 사람을 통째로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 규모가 약 8㎦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백두산의 분출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컸는지 알 수 있다. 10세기 백두산 화산 폭발 시, 일부 화산재가 편서풍을 타고 일본 홋카이도-혼슈 북부까지 날려가 915년에 분출한 도와다 화산재층 위에 무려 5㎝ 두께로 덮여 있을 정도이다.
백두산의 9세기 화산 폭발(820~920년)은 당시 발해의 민심 혼란과 국론 분열을 야기하여 해동성국 발해의 국력 쇠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발해 멸망 이후 재개된 10세기 화산 폭발(930~960년)로 함경도 일대는 한때 생태 환경의 공황 상태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귀중한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백두산 화산 지층은 중국측보다는 북한측에 훨씬 잘 발달되어 있어서, 동북공정에 의한 발해 역사의 훼손을 막고 그 진실 규명을 위한 차원뿐만 아니라 당시 화산 재해로 인한 극한 환경 연구의 차원에서도 남북한 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백두산 화산 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만일 10세기 화산 분출 규모의 20% 정도의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특히 백두산의 동쪽에 위치한 함경도 지역은 유독한 화산가스와 뜨거운 불덩이의 화산재와 산불로 천지가 뒤덮일 것이며, 도로, 철도, 전기, 수도 등 기간시설 등이 무용화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수년간 대기 위로 떠도는 화산재로 인한 일사량 감소는 전 세계 곡물 수확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많은 에너지 자원을 함경도에 의존하고 있는 현 북한의 실정을 감안하여 볼 때, 이와 같은 상황은 북한사회체제 유지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서독(당시 경제 규모 세계 3위)의 경우, 1989년 갑자기 베를린 벽이 붕괴되고 이듬해 전혀 예기치 못하던 상황에서 통일을 맞이했다.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한 시장경제 정책은 실패로 이어졌고, 그 결과 동·서독인들 간의 사회적 갈등과 반목은 아직까지 뿌리 깊다. 독일통일의 교훈으로, 우리나라의 평화적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는 통일과 관련된 모든 요소와 상황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지구과학은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관측 연구와 모니터링을 통해 예측함으로써 그 피해를 훨씬 완화시킬 수 있다. 남북한이 협력하여 백두산 화산 연구를 진지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ch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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