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탐사보도팀 문영기 선임기자
"낙선재에 계시던 순종 왕후께서 어머니와 나를 부르셨다. 내 손을 붙잡고는 “나라가 망하더니 왕손이 광대가 됐구나..”하시며 통곡을 하셨다. TV에 나온 내 모습을 보신 모양이다.."
왕손으로 태어나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가수 이석씨가 42년만에 새 앨범을 내놨다. ‘아! 숭례문’이라는 제목의 탄식같은 새 노래는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7순이 가까운 나이에 발표한 이 노래로, 그는 ‘앙코르’를 받는 인생의 화려한 피날레를 연출할 수 있을까. 문영기의 독(獨)한 인터뷰에서 이석씨를 만났다.
왕손으로 태어나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가수 이석씨가 42년만에 새 앨범을 내놨다. ‘아! 숭례문’이라는 제목의 탄식같은 새 노래는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7순이 가까운 나이에 발표한 이 노래로, 그는 ‘앙코르’를 받는 인생의 화려한 피날레를 연출할 수 있을까. 문영기의 독(獨)한 인터뷰에서 이석씨를 만났다.

◈ 왕위계승 1순위의 왕자 이석
그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를 부르는 호칭은 ‘할아버지’였다. 그는 줄곧 “이성계 할아버지께서..”라며 가문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석씨는 현재 왕위계승 1순위의 직계 왕자다.
그의 아버지는 의친왕,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둘째 동생이다. 순종은 후사가 없었고, 큰 동생 영친왕의 이진, 이구 왕자는 모두 세상을 떴다. 그리고 둘째 동생 의친왕은 12명의 아들을 뒀는데, 이들 가운데 현재 4명이 생존해 있고, 이석씨를 제외한 3명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왕실이 복원된다면, 그는 엄연한 ‘임금님’이시다.

◈ MB와의 인연, “뱀이 용이 됩시다”
그는 전주 승광재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자살 시도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전주시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했다. 이제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현재 그의 직함은 황실문화재단 총재다. 황실복원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홍보, 강연활동을 하고 있고, 대학에도 출강한다. 황실복원은 이제 그의 마지막 인생의 목표다.
이석씨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석씨와 이대통령은 41년생 뱀띠 동갑이다. “이대통령은 재작년 대통령 되기 전에 만났다. 대권 꿈을 가지고 있던 MB에게 대통령이 되시면 뱀띠가 용(龍)이 됩니다. 그리고 나라 잘 다스리시고 직계 왕손이 있으니까, 품위를 좀 유지시켜 주십시오 했어요.. 그랬더니, 알겠습니다. 그러셨는데..”
이석씨는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는데, 한 차례 연락이 와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만남이 성사돼도 그의 바람대로 황실복원작업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석씨는 스페인을 예로 들었다. 스페인은 프랑코 총통의 철권통치시절 없어졌던 왕실을 민주화이후 다시 복원했다. 이석씨는 41년만에 복위된 스페인의 까를로스 국왕처럼 한국에도 황실이 복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석씨는 이번 음반을 계기로 황실복원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할 계획이다. 전국적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만조백관을 거느린 위엄있는 ‘임금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을까.
그는 전주 승광재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자살 시도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전주시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했다. 이제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현재 그의 직함은 황실문화재단 총재다. 황실복원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홍보, 강연활동을 하고 있고, 대학에도 출강한다. 황실복원은 이제 그의 마지막 인생의 목표다.
이석씨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석씨와 이대통령은 41년생 뱀띠 동갑이다. “이대통령은 재작년 대통령 되기 전에 만났다. 대권 꿈을 가지고 있던 MB에게 대통령이 되시면 뱀띠가 용(龍)이 됩니다. 그리고 나라 잘 다스리시고 직계 왕손이 있으니까, 품위를 좀 유지시켜 주십시오 했어요.. 그랬더니, 알겠습니다. 그러셨는데..”
이석씨는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는데, 한 차례 연락이 와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만남이 성사돼도 그의 바람대로 황실복원작업이 쉽사리 이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석씨는 스페인을 예로 들었다. 스페인은 프랑코 총통의 철권통치시절 없어졌던 왕실을 민주화이후 다시 복원했다. 이석씨는 41년만에 복위된 스페인의 까를로스 국왕처럼 한국에도 황실이 복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석씨는 이번 음반을 계기로 황실복원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할 계획이다. 전국적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만조백관을 거느린 위엄있는 ‘임금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을까.
돌아가시고 두 시간 뒤에 벌떡 일어나신 아버지 의친왕 |
일제의 교활한 탄압으로 조선 황족들은 하루 하루를 비장한 각오로 살아야했다. 이석씨의 증언에 따르면, 커피를 즐겨했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커피에 타 놓은 아편 때문에 생식기능이 마비됐고, 결국 후사를 얻지 못했다. 순종의 첫째 동생 영친왕은 수태를 못할 것이라는 일본 여인 이방자와 결혼시켰다. 하지만, 이방자 여사는 두 아들을 생산했다. 이석씨의 아버지인 의친왕은 왕비만 열분, 낳은 자손만 21명에 이를 정도로 왕손으로서는 가장 많은 자손을 거느린 분이다. 이석씨는 의친왕이 나이 예순둘에 얻은 아들이다. 사실상 손자 나이에 가깝다. 이석씨가 기억하는 의친왕은 힘이 대단히 좋았다. 7순이 넘은 나이에도 동전을 한손으로 구부리기도 했다. 일제의 암살에 대비해 길러놓은 차력 덕분이라고 했다. 의친왕은 그의 나이 16살에 돌아가셨는데,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이불을 덮어 놓은 지 두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장례 준비를 위해 모여 있던 2백명 가까운 문중식구들이 시체가 일어났다며, 혼비백산해 도망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석씨는 이 사건에 대해 일제의 독살에 대비해 의친왕이 매일 조금씩 복용했던 비상(砒霜)의 약 기운 때문이 아니었는지 추측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영세를 받은 일도 극적이다. 의친왕이 돌아가시기 직전 오른쪽에는 조계사에서 온 승려들이 있었고, 왼쪽에는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가 와 있었다는 것. 왕실은 사실 불교에 가까운 편인데, 의친왕은 눈을 크게 뜨면서 노기남 대주교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했다. 결국 의친왕은 영세를 받았고, 장례는 명동성당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의친왕의 대부는 장면박사가 맡았다. 이석씨는 "대원군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학살했던 잘못때문에 그랬던 것 아닌가 한다" 며, 천주교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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