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유래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날로 음력으로는 대개 2월이 되고 간혹 3월 드는 수도 있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 〔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개자추 전설
중국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으나, 개자추는 그를 마다하고 면산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 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 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한식날 풍습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조선의 역대 왕 및 비)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식목을 하는 것도 이 날이다. 그러나 한식이 3월에 들면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날 성묘하는 습관은 당나라 때 중국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농가에서는 청명날부터 비로소 춘경이 시작되고, 이날부터 채마전에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숭상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 형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그 민속적 권위가 중시되어 조정에서는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으나 근세 에 들어와서는 성묘 이외의 행사는 폐지되었다.
또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한식의 풍속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 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 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을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 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 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한식날 음식
한식을 청명절이라 하고 동지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성묘는 일 년에 네 번으로 정초, 한 식, 단오, 중추에 한다.
제물은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이다.
중국에서는 한식을 냉절(冷節)이라 하는데 그 유래로 인하여 우리도 이 날은 미리 장만해 놓은 찬 음식을 먹고 닭싸움, 그네 등의 유희를 즐기며 불을 쓰지 않는다.
중국의 춘추시대 때 개자추(介子推)라는 진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문공(文公)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충성을 다하여 망명 19년까지도 모셨지만 그에게 오해를 받아 산속에 숨어 살았는데, 나중에 문공이 잘못 을 뉘우치고 산에서 나오기를 권했지만 나오지 않아 불을 질렀는데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그래서 이 날은 버드나무를 대문에 꽂기도 하고, 개자추의 죽음 을 아파하여 불을 쓰지 않고 찬밥을 먹으니 냉절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양력 4월 5, 6일경이다.
이 날은 조상의 무덤에 떼를 다시 입히고 민간에서는 이 날을 전후하여 쑥탕, 쑥떡을 해먹었다.
한식날 먹는 메밀국수를 한식면(寒食麵), 한식날 무렵 잡은 조기를 한식사리라 한다.
●쑥떡
찹쌀가루에 어린 쑥을 절구에 부드럽게 찧어서 함께 섞어 버무린 다음 시루에 안쳐서 푹 쪄 낸다.
켜켜로 안칠 때는 사이에 팥소를 얹어 찐다.
●쑥단자
찹쌀가루를 찜통에 쪄서 뜨거을 때, 데쳐서 다진 쑥을 넣고 절구에 비취색이 나도록 찧어 서 판판하게 펴고, 그 위에 꿀로 반죽한 팥소를 넣고 돌돌 말아, 꿀을 바른 양손으로 늘여 가며 밤톨만하게 끊어 흰 팥고물을 묻혀 낸다.
●쑥탕
펄펄 끓는 물에 된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조개를 씻어 넣고 펄펄 끓인다.
어린 쑥을 깨끗이 씻어 넣고 마지막에 실파를 넣고 한소큼 끓인다.
●개사초
자손들이 저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높고 큰 은덕을 추모하며 제사지낸다.
조상묘 앞에 과(果-과실), 적(炙-구운 고기), 병(餠-떡)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를 지낸다.
조상 묘의 풀을 베는 사초를 하거나 새잔디를 다시 입히기도 한다.
이를 개사초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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