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熟年人生

well-dying”은 "well-Being"이라 한다

bthong 2010. 1. 15. 23:51

 

 

“well-dying”은 "well-Being"이라 한다.   이제는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우리는 대부분 가보지 않고는 믿지 않으려 한다.

병원에 가보지 않고는 병든이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한다.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 앞에 엎드려 명복을 비는 자리가 아니면, 대부분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산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허상에 끄달려 앞뒤도 보지 않고 망상을 쫓는다. 그렇게 허둥지둥 살다가 뒤늦게서야 그 허망함을 알게 되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주검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잘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잘 죽을 수도 없다.

 

Well Dying "잘 죽는 것“ ”아름답게 죽는 것”이를 좀 더 빨리 젊어서 접하는 것이 “잘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보지 않은 주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 한다.

 

우리는 생활가운데에 죄 짖기 때문에, 그저 막연한 고정관념에 묶여 자신이 배워온 삶에 안주하고 산다. 물론 죄 짖지 않으면 어떻게 죄의 무게를 알 수 있겠는가?

이율배반적이게도 신은 죄까지도 창조 한 것이다. 선함이 고귀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

 

비온 뒤 뒤범벅이 된 흙탕물이 침전된 뒤라야, 고요한 달빛이 호수에 동그랗게 비춰 질 것

이다.

 

우리의 생각을 이렇듯 평온하고 고요하게 만들어야 바른 생각을, 그리고 본성을, 마음의 거울 속에 비춰 볼 수 있는 것이다.

 

<입관체험, 죽음체험, 임종체험, 유언장쓰기, 템플스테이, 호스피스, 명상, 화두... >

 

이런 것들을 통한 직,간접체험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되물음과 삶에 대한 성찰과 통찰로 올바른 죽음과 삶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책에 "삶은 선물이고 죽음은 선택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선택해야하는 수많은 문제들 중 죽음도 선택이라니...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가 아닌가?

 

"죽음 이후를 모르는 것은, 무심코 리모컨 버튼을 누를 때 화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죽음 이후는 꺼진 TV처럼 더 이상 우리의 의식이 남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고 다른 채널의 화면처럼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 수도 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도, 그렇다고 즐길 수도 없는 문제지만, 일찍이 준비해야 할 문제이다.”라고 저자는 말했다.

 

나는 매일을 벽 앞에 선다.

그냥 걸어 나가면 반드시 벽은 내가 걸어 나간만큼 물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벽 앞에 선 나는 저 벽이 무너질까? 혹 저 벽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면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돌아갈까?라는 물음에 직면한다. 안타깝고 답답함에 이내 마음의 평점심을 잃는다.

또한 평정심을 잃는 순간 불행한 일들이 시작된다.

 

어떤 선인이 말하길 “종교는 두려움을 파는 집단”이라 했다.

벽 뒤를 보고픈 사람들을 위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겹겹이 쌓아온 지식과 굴절된 경험을 마치 진실인양 착각하고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묶어 가둬 버리고 만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들을 잊고 그저 내 몸이 편한 즐거움만을 쫓으며 살아가려한다.

 

내 몸은 아담을 유혹하는 이브처럼 영혼을 좀먹는 사악한 뱀과도 같다.

우리는 이브의 유혹에 빠져 그 달콤함으로 인해 방황한다.

 

이제 내 몸이 불편한 유혹에서 마음을 다잡고,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벽 뒤의 세상을 깊은 통찰로 유추해보자!

 

온 곳을 잘 모르니 간곳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 모든 이치가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오르면 내려오고, 기운이 순환하면 다시 물이 되듯 순환하는 것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죽으면 또 다시 잉태하고를 반복하여 수많은 굴레 속에 진화하지 않았던가?

지구가 생긴 이후 360억만개의 생물이 생성되어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600억만개의 생물로 진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 많은 개체 중에서 “나는 오직 나하나 뿐”인 것이다.

 

어떤 일화에 환자를 뇌수술을 하던 의사가 어느 부분을 잘 못 건드렸는지, 수술실 천정에서 자신의 수술 장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많은 수련을 통한 도인은 스스로 <유체이탈>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가 전자제품에서 겉과 속을 연결하는 부분을 열면 겉과 속이 분해되듯이, 인간도 육체라는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신이 아닌 모든 인간들은 그 벗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그 방법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삶의 목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 육체를 통해 그 숙제를 풀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삶만이 그 숙제를 풀 수 있다.

 

탁한 물속에선 한치 앞도 볼 수 없듯이, 탁한 찌꺼기를 침전시켜 맑은 물속을 비치는 달을 가슴속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온 곳을 알고, 가는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면 두려움도 사라지고 밝은 미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보고 아는데 어찌 바르게 살지 않겠는가?

그저 경이롭고 감사함으로 충만 할 것이며, 모든 이웃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보일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내 마음속에 있음을, 죽음도 삶도 내 마음 속에 있음을 알 것이다.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어, 잘 죽는 방법을 5분 명상을 통해 매일 반복하면, 우리는 잘 죽는 방법도 잘 사는 방법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명상이란 알아차림”이다.

“명상이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느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쉬운 일마저도 안하는 게으름이, 우리를 불행하게하며 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잘 죽을 수 있음을 알면,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well-dying” "well-Be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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