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 관한 스포일러(핵심적 내용을 미리 밝히는 것)가 있습니다.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아, 한국영화사상 이렇게 느끼해 토할 것 같은 대사가 또 있던가? 이장호 감독의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신성일이 던진 이 대사는 같은 영화 속 여배우 안인숙의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와 더불어 닭살 제대로 돋는 명대사로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의 알랭 들롱’ 신성일. 그가 20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7일 개봉)을 최근 보았다. 토요일 아침 8시에 파란색 아디다스 삼선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차림으로 가 보았는데, 180석짜리 극장에는 나처럼 혼자 온 아저씨 4명과 뭣도 모르고 온 듯한 20대로 보이는 젊은 연인 두 쌍 등 딱 8명이 띄엄띄엄 앉았다. 이들 8명은 ‘저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남들 다 자는 이른 시각에 이런 영화를 보러 온 거지?’ 하는 의심의 눈빛으로 서로를 머쓱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올해로 76세인 신성일 때문이 아니라, 신성일의 상대역으로 나온 가수 출신 여배우 배슬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배슬기가 이 영화로 인터뷰한 기사의 제목이 ‘파격노출, 악플로 저 상처 받았어요’였는데, 이 제목을 보니 영화를 보지 아니할 재간이 없었다. 파격노출에다 상처까지 받았다지 않는가 말이다.
헉, 일단 제목부터 흥분되었다. 야관문.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야한 문’이 아닐까. 게다가 부제는 ‘욕망의 꽃’이 아닌가 말이다. 불끈 달아오른 나는 27세 여배우가 거의 50세 연상의 할아버지뻘 배우와 과연 어떤 파격적인 정사를 보여줄 것인가에 온통 기대가 쏠린 채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도 이런 실망이 없었다. 두 배우의 정사가 하나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에로무비’가 아니라 기승전결의 완결된 스토리에다 반전까지 갖춘 한 여인의 복수극이었던 것이다. 술집여자(배슬기)가 순진한 청년을 죽도록 사랑해 결혼하려 하였는데, 청년의 아버지인 교장선생님(신성일)의 무지막지한 반대에 부딪힌다는 매우 전형적인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는 끝으로 갈수록 의의로 삼삼해진다. 청년이 고통 끝에 죽자 사랑하는 남자의 복수를 위해 여자가 떨치고 일어선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교장선생님의 간병인으로 위장해 접근하는 것. 여자는 ‘야관문’이라는, 정력에 무지하게 좋은 풀을 매일 다려 ‘암 치료에 좋아요’ 하면서 교장선생님에게 연신 먹인다. 뭣도 모르고 받아먹은 교장선생님은 죽는 순간까지 끓어오르는 육욕에 고통스러워하며 여자에게 ‘제발 섹스해달라’고 통사정하고, 여자는 이를 매몰차게 거절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매우 창의적인 스토리였던 것이다.
사실 스토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나 같은 욕구불만 아저씨 입장에선 영화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뒤를 캐는 잡지사 기자와 제법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살짝 야한 샤워장면도 보여주지만, 더욱 저질스럽고 노골적이며 21세기적 상상력이 넘치는 장면을 고대한 나로서는 기대치의 반의 반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풀이 죽어 극장을 나서던 나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신성일, 멋지긴 멋지구나.’
사실, 이건 신성일도 모르는 얘기지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6년 봄, 나는 당시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그를 면회 간 적이 있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잘못된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당시 1년 넘게 복역 중이던 그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신성일과 일면식도 없던 나는 영화 ‘초우’(1966년)로 유명한 한국 영화계의 원로 정진우 감독이 마침 신성일을 면회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따라 나섰다. 면회실에서 만난 신성일은 “이 청년은 누구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영화 스태프인데 선생님을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세상을 다 가졌던 최고의 스타가 지금은 아쉽게도 이런 곳에 계시네요. 심정이 어떠세요?” 하고 다소 싸가지 없게 물었다. 그러자 신성일이 대답했다.
그러자 신성일이 대답했다. “여기(교도소)에 있는 나의 심정이라…. 나는 지금 꽃을 키웁니다. 매일 햇볕에도 내놓고 물도 주고 하면서 말이지. 꽃을 키워요.”
솔직히 말해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무지하게 멋져 보이는 말 같았다. 꽃을 키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 이후 이렇게 있어 보이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신성일은 신성일인 것이다. 신성일은 감방에서도 꽃을 키운다!
면회를 마치자 나와 동행했던 정진우 감독이 돌아서는 신성일의 등에 대고 “건강해야 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신성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려 인사를 대신하며 마치 영화에서 페이드아웃(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장면이 바뀌는 것)이라도 되듯 스르르 사라져갔다.
순간 나는 감명도 받고 화도 치미는 매우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복역 중이면서 저렇게 멋진 체해도 되는 거야? 감방에서도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아는가 보지?’
하긴, 그럴 만도 했다.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120명에 가까운 여배우를 파트너로 ‘갈아 치운’ 그로서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자신을 왕자인 양 착각하는 과대망상을 충분히 가질 법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그가 출소 후 늘어놓은 망언에 가까운 다음 발언들을 나는 애써 이해하려 했다.
“왜 한 여자에게만 사랑을 줘야 해? 아내는 엄앵란 한 명뿐이다. 하지만 애인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으며 바뀔 수도 있다.”
“나처럼 자유롭고 잘 생기고 건강한 남자에게 왜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뉴욕에 애인이 있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고(故) 김영애(아나운서이자 연극배우)다. 엄앵란과 결혼한 후에 만난 김영애가 내 아이를 임신해 낙태했다.”
많은 사람들은 “실성을 했다” “주접이다”면서 신성일을 비난했지만, 의정부교도소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그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는 나는 ‘주접도 일관되면 철학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임금은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음)란 말이 있듯 신성일도 무치가 아닐까’라는 매우 창의적인 생각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성일이 주연한 ‘야관문: 욕망의 꽃’을 보면서 그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신성일보다 49세 어린 농염한 여배우가 입에 물을 한껏 머금은 채 신성일의 입에 쭉 밀어 넣어도 주고, 신성일이 “마사지!” 하고 짧게 소리치면 즉각 전신 마사지도 해주고, 신성일의 발톱도 마치 네일 아트 대회에라도 나간 듯 최선을 다해 깎아주고 손질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태리타월로 쓱쓱 등까지 밀어주는 이 젊은 여자의 면전에 대고 “음음. 갈 ‘지(之)’자 말고 위에서 아래로 밀란 말이야!” 하고 노예 부리듯 소리치는 이 할아버지 배우는 도대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여자가 발톱을 깎아주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신성일의 맨발은 무지외반증에 가까울 만큼 앞코가 기형적으로 뾰족했는데, 맨날 그런 구두만 신고 다녔던 그의 화려했던 과거를 증명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야관문’이 흥행에 참패한 이유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신성일의 섹스장면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할아버지 배우와 손녀뻘 여배우의 정사는 젊은 관객을 역겹게 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모르나, 어차피 젊은이들은 신성일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더라면? 훨씬 더럽고 추잡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진부하게 썼을 것이다. 신성일로 하여금 “네가 지금 내게 마늘을 먹여서 아랫도리 뜨뜻하게 만들어 나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같은 굴욕적인 대사를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성일이 배슬기에게 섹스를 구걸하는 시추에이션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작가였다면 배슬기가 신성일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일단 섹스를 하도록 했을 것이다. 하루 네 번 섹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슬기는 야생마처럼 달려드는 신성일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복수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진 업(業)에 종지부를 찍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다.
왜냐고? 이유를 묻지 마라. 신성일이지 않은가. 신성일은 섹스를 구걸하지 않는다. 신성일은 섹스를 부탁하지도 않는다. 신성일은 다만 섹스할 뿐이다. 충무로여, 76세 신성일에게 섹스를 허하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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