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김일영(57·경기도 이천시)씨는 "마치 양복 입은 노신사가 꽃마차를 타고 봄나들이 여행이라도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3~25일 아버지가 생전 작성한 사전(事前) 장례의향서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고인이 작성한 사전 장례의향서에 따라 장례를 치른 첫 케이스였다. 김씨는 장례를 치른 소감을 담은 편지를 본지와 사전 장례의향서 작성 캠페인을 벌이는 한국골든에이지포럼에 보내왔다. 편지 제목은 '아버지의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김씨의 아버지(86세)는 타계하기 보름 전쯤 병상에서 문서 하나를 김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별생각 없이 받아두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타계하자 형제들과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치르는 장례인 데다 아버지가 타계한 충격과 슬픔 속에서 준비하느라 더욱 경황이 없었다.
이때 아버지가 남긴 사전 장례의향서가 생각났다. 문서는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항목별로 상세하게 체크해 놓고 있었다.
"수의(壽衣)는 평소 내가 입던 옷으로 대신하고, 저렴한 나무 관을 사용하라. 화장(火葬)한 다음 수목장(樹木葬)으로 하라. 부고(訃告)는 꼭 알려야 할 사람에게만 알려라. 대신 찾아오신 분들은 잘 대접하라."
김씨는 "가장 마음에 든 건 입관 과정이었다"며 "아버님이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옷을 입으신 것 하나만으로도, 슬픈 장례 문화가 '아름다운 작별' 의식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자식·친지들이 가시는 아버님과 사랑스러운 눈으로 이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 가족은 3일장을 지내고 화장한 다음 유해를 납골당에 모셨다. 김씨는 "나중에 어머님과 함께 수목장으로 모실 생각"이라며 "장례 비용도 평소 생각해온 금액의 절반 정도인 250여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허례허식이 많은 고비용 구조이면서도 정작 고인에 대한 추모는 뒷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씨는 "아버님이 한 장의 문서로 장례문화 개선의 첫 발걸음을 디디신 것 같다"며 "아버님의 선택에 감사드릴 따름"이라고 말했다. 골든에이지포럼 변성식 전문위원은 "자식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장례를 기존에 해오던 대로 치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사전 장례의향서는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지 않으면 불효라고 압박하는 '불효 마케팅'에서 자식들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골든에이지포럼은 지난해부터 '사전 장례의향서' 작성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골든에이지포럼 관계자는 "벌써 1만6000여명이 동참해 의향서를 작성했다"며 "강연 등으로 차분히 알리고 있는데도 노인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는 아직 57세지만 아버님 뜻을 따라 저도 사전 장례의향서를 작성하고 주변 분들께도 널리 알리겠다"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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