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먹자고 했다.
단, 밤 12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만난 시각은 오후 5시. 그날이 마지막 날이던 어떤 전시를 보러 갔다 만났다. 무려 일곱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날의 일행은 일박 이일 동안 복을 먹었다고 한다. 이년 동안 먹은 셈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난 날은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아마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복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복을 시킨다. → 바라본다. → 시계를 본다. → 종소리를 기다린다. → 종이 친다. → 먹는다. 이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설마.
이것만은 확실하다. 서로의 복을 기원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복어다. "복어 먹자"라기보다 "복 먹자"라고들 한다. 민어, 청어, 병어, 잉어, 장어 등등의 다른 '어'자 돌림 생선들은 그런 식으로 안 부른다. "민 먹자"라거나 "청 먹자"라거나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묘하다. 복어의 '복'을 福으로 약칭하는 걸까. 그러면서 기대하는 걸까. 복을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애석하게도 복어의 '복'은 그 복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복이 그 복은 아니랍니다"라고 말하지는 말자. 같이 밥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같이 먹은 음식이 맛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그것이 진실이라도―과 마찬가지 효과를 줄 것이다.
전복(全鰒)의 그 복이라고 한다. 이 복은 떡조개 복이라는 뜻인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복어의 어디가 조개 같다는 걸까? 그리고 하돈(河豚)이라고도 불렀다. 강의 돼지. 배가 볼록하니 돼지라는 걸까? 돼지도 귀엽고, 복어도 귀엽지만 이건 좀 억지 같다. 강의 조개라거나 돼지라거나 다 와 닿지 않는다.
복사꽃 얘기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해줬다. 복사꽃이 채 지기 전에 복을 먹는 거라고. 그러니까 요즘이다. 음력 삼월에서 사월. 복사꽃은 벚꽃과 배꽃의 사이에 핀다.(고 한다.) 어디선가 읽었다. 실제로 그런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복은 원래 봄에만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복사꽃이 피었다가 지는 동안만. 복사꽃이 진 뒤에는 독이 강해진다고 피했다. 궁금하다. 지금 같은 독 처리 기술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복사꽃이 필 동안만 독성이 없어지거나(그럴 리가) 약해지거나 하는지.
남산의 풍광 좋은 정자에서 복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복사꽃을 보면서. 바람이 불면 복사꽃잎이 무릎에 내려앉기도 하였을 것이다. 아무나에게 허락된 도락은 아니었다. 글깨나 읽은 사대부 남자들이 그랬다. 아는 남자 중에 자신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장원급제는 맡아놓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언적이나 김굉필이 이미 된 듯한 기세였다.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하면 어쩔 거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시대에 '선택된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복이란 음식의 맛은 몰랐을 것이다. 알더라도 음미할 자격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음풍농월, 바람을 노래하고 달을 희롱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복어에 대해 쓸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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