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10억 만들기’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풍요로운 노후를 영위하기 위해서 10억원 정도가 타당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칫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준비 차원에서 10억원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외환위기 전만하더라도 20, 30대에게 노후준비를 하라고 권유할 필요가 없었다. 50대 중반까지 근무한 후 은퇴를 하면 누진제(오래 근무할수록 퇴직금 지급비율이 높아지는 제도)로 계산된 거액의 퇴직금과 국민연금이 지급돼 별도의 수입없이도 노후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신입사원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재테크와 노후준비로 바뀌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강좌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강좌가 바로 재테크 강좌이고, 서점가에는 관련 책만해도 수십권이 나와 있다. 책 제목에 ‘10억’이라는 문구를 넣어야만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라고 하니 그 열풍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사회에 10억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76.5세이다. 2002년 현재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전체의 7.9%로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의 노령화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지만 20대는 취업난으로, 30·40대는 고용불안으로 한시름조차 놓을 수 없는 현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2~3년 동안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가격 폭등도 젊었을 때 노력해서 10억원을 모아 놓지 않으면 영원히 재테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중압감이 바로 10억원 열풍의 원인이다.
10억원은 평생 만져보기조차도 쉽지 않을 거액이지만 객관적인 근거는 명확하다. 지난해 하반기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만 60세 부부가 80세까지 약 20년 동안 살 경우 60세 이상 2인 가구의 평균 소비지출액(월 96만원)을 기초생활비로 쓰고 월 1백만원의 여유생활비를 추가로 사용하면 총 4억7천만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초생활비는 동일하게 하고 월 여유생활비를 2백만원 수준으로 높이면 60세부터 80세까지 필요한 자금은 7억1천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만약 자녀교육 또는 결혼자금, 상속자금까지 고려한다면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 다.
7억1천만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매월 얼마씩 저축해야 할까? 연 5% 복리로 계산할 경우 25세부터 60세까지 저축한다면 매월 65만원을 저축하면 된다. 하지만 10년 늦은 35세부터 저축한다면 1백25만원으로 늘어나고, 40세부터 저축한다면 1백80여만원으로 증가한다. 늦게 준비할수록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풍요로운 노후준비의 첫걸음은 ’빨리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우리 나라 직장인 10명 중 3명만이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지난해 발표된 적이 있다. 결혼해서 ‘짠돌이’ 생활로 내집을 마련했지만 이후부터는 자녀 교육과 결혼을 위해서, 마침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하는 게 우리의 보통인생이다.
자식들이 떠나고 둘만 남은 50, 60대 부부는 그때야 정신없이 살아왔던 자신들을 뒤돌아 보지만 남는 것은 쓸쓸함 뿐이다. 은퇴후 2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데, 게다가 노후준비조차 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글쎄다. 지금은 60세부터 국민연금을 지급받지만, 2013년부터는 61세가 돼야 국민연금을 지급받고, 2018년부터는 62세, 2023년부터는 63세, 2028년부터는 64세, 그리고 2033년부터는 65세가 돼야 지급받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1969년 이후 출생자라면 65세가 돼야 국민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럼 국민연금 지급액은 얼마나 될까? 필자의 경우 1988년 입사 직후부터 국민연금을 불입해 입사후 10년이 지난 97년부터 지금까지 최고 등급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개인의 소득에 따라 1∼45등급까지 나뉘며, 등급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높아짐).
이렇게 40년을 불입하고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매월 1백30여만원(현재 불변가치)에 이르지 못한다.
게다가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매월 부담하는 보험료는 현재의 월 소득 9%에서 2030년까지 15.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되지만, 지급받는 연금액은 현재의 월평균소득 60%에서 2008년부터는 평균소득의 50%로 떨어지기 때문에 연금지급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제도가 좋은 제도임에는 틀림없지만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어떤 분들은 ‘퇴직금도 있는데 뭘’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대부분의 직장에서 퇴직금 제도가 ‘누진제(평균임금×근로연수×누진율)’에서 ‘단수제(평균임금×근로연수)’로 바뀌어 퇴직금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지난해 상반기 전국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기관의 여론조사에서 부모가 노인성치매에 걸리면 국가 요양시설에 맡길 것이라는 응답이 47%를 차지했다고 한다.
노후에 자식에게 의지할 생각을 했다면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풍요로운 노후를 바란다면 국민연금과 퇴직금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연금을 통한 노후준비가 그래서 필요하다.
풍요로운 노후를 위해 1994년 하반기부터 개인연금신탁에 매월 20만원씩 납입해 오고 있는 회사원 최규돈씨(39)는 최근 거래은행을 다녀온 이후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개인연금신탁 수익률이 4%대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연평균수익률이 10%를 넘었는데….” 국민연금 지급액도 줄어든다는데, 사적연금까지 수익률이 반토막이 된 것이다. 개인연금신탁이 유일한 노후대책인 최씨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개인연금신탁을 가입해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저금리 추세에 맞춰 새로운 노후설계를 해야 한다.
개인연금신탁을 판매하기 시작한 94년 이후 IMF 외환위기 직후까지 거의 모든 신탁상품의 배당률은 연 10% 이상이었다. 개인연금신탁도 마찬가지였다. 만기까지 연 10%의 배당률을 가정할 경우, 매월 20만원씩 25년 동안 개인연금을 납입하고 55세부터 80세까지 연금을 받는다면 매월 지급받는 연금액은 2백30만원이나 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노후대비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저금리가 시작된 3~4년 전부터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은행별로 4~6%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수익률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현재의 연 4~6%대의 수익률이 만기까지 지속된다면 매월 받는 연금액은 70만~90여만원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납입하고 있는 연금신탁 가입액을 늘리는 것이다. 당초 계획했던 대로 매월 2백30만원씩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납입하고 있는 20만원과는 별도로 매월 80만원씩 추가로 납입해야 한다. 배당률은 반으로 떨어졌지만 저축해야 할 금액은 4배로 크게 늘어나는 셈이다. 개인연금신탁은 최소 10년의 가입기간과 5년 이상의 지급기간을 거쳐야 하는 장기상품이기 때문에 배당률이 조금만 하락해도 연금수령액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개인연금신탁 수익률이 연 4%대까지 떨어졌지만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와 연말정산시 소득공제 효과로 적게는 4%에서 많게는 16%까지 수익률이 추가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저금리시대에 짭짤한 금융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연간소득이 4천만원 이상인 급여소득자나 자영업자는 현재 가입한 개인연금신탁 외에 연금신탁을 신규로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더구나 연금신탁은 자영업자의 유일한 소득공제 상품이다. 연금신탁은 개인연금신탁 소득공제(연간 납입액의 40%, 최고 72만원)와는 별도로 연간 납입액의 100%(최고 240만원)를 추가로 소득공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신탁은 연금을 지급받을 때 연금소득세(5.5%)가 부과되며, 5년 이내 중도해지시에는 가산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공기업에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한 김정식씨(60) 부부는 힘든 ‘자린고비’ 생활을 하고 있다. 한 때는 부인이 옷가게를 운영하며 적지 않은 재산을 모으기도 했지만 세 자녀에 대한 교육비와 결혼비용에 모은 재산을 쏟아붓느라 지금은 아파트 한 채와 정기예금 3억원이 전재산이다.
김씨 부부는 자식들의 형편도 넉넉한 편이 아니라서 정기예금에서 나오는 매월 이자(약 1백만원)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생활이 힘들 때는 정기예금 ‘원금을 쪼개서’ 생활비로 사용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최대한 버틸 작정이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시가 5억원)는 자식들에게 남겨 줄 생각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상속해줘야 한다며 늙어서까지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부모가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남긴 재산을 두고 날새워가며 재산싸움을 하는 자식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도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겠다는 생각을 떨쳐야 한다. 몇 푼 안되는 은행 정기예금 이자만으로 힘들게 생활할 것이 아니라 원금을 생활비로 활용해야 한다. 목돈을 맡기고 다음달부터 연금식으로 찾아 쓸 수 있는 실버상품이 있다. 바로 은행의 ’즉시연금신탁’이다.
연금 수령 기간은 5년 이상 연단위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며, 매월 또는 3개월, 6개월, 연단위로 연금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김씨 부부가 즉시연금신탁에 3억원을 예치하고, 15년 동안 매월 연금을 받기로 했다면(배당률 연 6% 가정), 첫달에 약 1백70여만원을 지급받고 점차 연금액이 늘어나 마지막 달에는 약 4백만원을 수령하게 된다. 연금액이 기간이 경과할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물가상승에 대비해 체증식으로 상품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즉시연금신탁은 실적에 따라 배당하는 신탁상품이지만 은행이 원금을 보장해 준다. 따라서 은행이 투자를 잘못해 손실이 발생해도 투자자는 최소한 원금을 보장받는 것이다. 또한 거래 은행이 파산을 해도 예금자보호법에 의해서 보장을 받는 ‘예금자보호대상’이라서 안심하고 맡겨도 된다.
65세 이상 경로자는 1인당 2천만원까지 비과세되는 생계형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세금우대(55세 이상 여자와 60세 이상 남자는 6천만원까지)로 추가 가입도 가능하다. 자식들이 나이드신 부모님을 위해 가입할 수도 있다. 즉시연금신탁을 가입해서 매월 부모님께 효도비를 드리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해 준다고 해서 자식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생해서 번 돈, 건강할 때 다 쓰고 간다고 생각하자. 정 서운하면 살고 있는 집만 유산으로 남겨줘도 충분하다.
서춘수/조흥은행 재테크 팀장 seosoo@chb.co.kr〉
음악 : Gypsy Violin / 영화 '밀애 Darling Lili' Soundtrack